자유공원은 자유스러운가
한미수교백주년기념탑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자유공원 광장이 화장실 안내와 함께 나타난다. 또한 자유공원 조형물 위에서 연안부두가 보인다. 멀리 화물선이 유유히 지나가는 모습이 보이지만 큰 감흥은 없다. 산업 항 삭막함만 보일 뿐.
조금 안쪽 위로 맥아더 장군 동상이 서서히 다가온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봐야지 하는 의무 사항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도중 입구 쪽에 서있는 사진가를 만났다. 사진 촬영한다는 큰 글자와 더불어 그간 찍어온 샘플사진이 세로방향으로 펼쳐져 있다. 보호용 비닐 커버는 시간이 많이 지났는지 빛이 바랬다. 사진 속 사람들 모습은 모두 맥아더 동상을 배경으로 한 사진들이다. 여기가 자유공원 사진 핫 플레이스라고 웅변하고 있다. 하지만 이 노사진가는 그 흔한 사진 찍으라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만 물끄러미 쳐다본다. 알아서 나에게 사진 찍어 달라고 말하라고 한다. '내가 찍어야 잘 나오는 데 쯔쯔쯔' 하는 것 같다. 허리는 굽었지만 눈은 살아있다. 비교적 큰 덩어리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내가 미안하다. 이 거리 예술가에게 내 카메라는 영업 최대 적인 것이다. 아무도 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의뢰하는 사람은 없었다. 무심히 지나갈 뿐이다.
나도 그 앞을 휙 지나쳐 동상 근처에서 영양가 없는 몇 컷을 찍었다. 1957년에 세웠졌으니 68년이 된 동상이다. 바로 가기엔 동상의 모습이 외로워 보인다. 문득 그와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안녕하세요? 장군님"
"Hi"
그가 대답했다. 아차, 그가 미국인임을 잊었다. 짧지만 영어로 다시 물었다.
"How are these days? sir"
우선 어른에게 안부를 묻듯 요즘 근황을 물었다.
"It's boring just looking at the Incheon sea every day."
매일 인천바다만 쳐다보니 지겹다고 무심히 대답한다.
"The General said it would be difficult to rebuild this country even after 100 years. What is your opinion now?"
장군께서는 이 나라는 100년이 지나도 재건하기 힘들다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은 어떠신가요? 하고 공손하지만 건방지게 평소에 궁금하게 생각했던 그의 견해를 물어봤다.
"Old soldiers never die they simply fade away."
"아~~ 예"
근엄하게 다문 입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그의 말이 맥락 없이 흘러나와 더 이상 대화는 힘들었다. 아쉬웠지만 서둘러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려니 똑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서 있는 그 사진가가 보인다. 그냥 가던 길 가려니 난처한 맘이 든다. 두 번 미안해진다. 그래서 일부러 옆 길로 돌아서 내려갔다. 그에게도 전성기는 있었다. 여기저기서 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던 호시절이 있어 손님 없는 오늘을 위로하리라. 굽어진 그의 허리에서 세월의 고단함만 보이지 않았다. 생의 찌든 고행보다는 무심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보는 관조가 느껴진다.
맥아더와 사진가가 겹친다. 각각 장군 지휘봉과 카메라를 들었을 뿐 각자 전성기가 있었던 것은 다 같지 않았을까? 노병은 죽지 않고 사라지고, 거리 예술가는 오늘도 자기를 알아주는 손님이 없을 뿐 나름 작품을 남기고 석양을 뒤로한 채 퇴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