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됐지만 이어져 내려오는 길
낙산공원엔 조선시대 냄새가 난다. 단절의 향기다.
도성안과 밖은 특권층과 일반 백성들을 가른다. 지금은 여기저기 자유롭게 통로가 생겼고 서울시민이 사랑하는 걷기 좋은 산책로가 되었다.
낙성공원에서 출발하여 동대문까지 이어진 옛길을 가다 보면 이어짐을 느끼게 되지만, 흥인지문이라 일컫는 동대문 바로 앞에서 도로로 말미암아 단절이 된다.
'순성(巡省)'의 원래 의미는 '기원'이나 '희망'을 뜻하기도 했다고 하는데, 보통은 성곽을 도는 것을 의미한다..
낙산공원을 지나 혜화문 방면으로 두 손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가 색다르다. 가뿐해 보이는 남편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들어 보이는 부인은 남편과 지팡이를 의지한 채 천천히 걸음을 띤다. 각자의 사연을 담아 순성을 한다.
수많은 도성의 사각형 구멍 중의 하나에 손을 대어 본다. 비가 와서 촉촉하지만 따뜻함이 서려있다. 길게는 600여 년, 짧게는 100여 년을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기에 스며든 촉감은 남다르다. 그 사이로 보이는 동쪽의 풍경은 성곽의 모습과 대비되는 아파트, 빌딩 등은 현대인의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이렇게 600여 년 전 사각형으로 보이는 현재의 사각형은 사뭇 다름으로 다가온다.
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도봉산은 서울을 부드럽게 안아주고 있다. 다행히도 고층빌딩이 보이지 않아 한옥도 더러 보였다. 성곽 둘레길 계단은 불규칙한 돌의 향연이지만 주요 길은 흙으로 되어있어 예스럽다.
그와 대조적으로 규칙적 사분원 행태의 조명은 밤에 찾아오는 이들에게 불빛의 아름다운 성곽의 모습을 선사한다.
벽에 기대에 아래로 보면 지형을 살린 채 미려하게 하향하는 성곽의 형상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만리장성같이 건조한 장대함을 주지는 않지만 수풀의 초록색과 어울렁더울렁 춤을 춘다. 성곽의 돌냄새와 풀냄새가 어우러지는 상쾌함이 있다.
한양도성의 각자성석은 새길 각(刻), 글자 자(字) 성채 성(城), 돌 석(石), 성채의 돌에 글자를 새겼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성벽을 쌓는 돌에 성벽 축조 관련 사항들을 글자나 기호로 새긴 것이다.
고구려 평양성에서 발견된 각자성석이 가장 오래되었고, 한양 도성의 각자성석은 무려 297개 이상이 발견됐는데, 성벽의 상태가 양호한 남산 구간에 많이 남아 있다.
한양 도성의 각자성석에는 공사 구간 및 거리, 축성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출신 지역, 공사 감독관의 이름 등이 새겨졌다.
지금도 농산품에 특히 새겨있는 출처나 품질책임자의 이름이 새겨진 것과 유사하다.
한양도성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시대별로 14세기엔 축성구간, 15세기엔 축성 담당 지방의 이름, 18세기엔 축성 책임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표기하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
점점 순성의 종점이 다가오면서 소박한 골목길 카페 골목이 눈에 띈다. 이화동 벽화마을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감각적이고 특색 넘치는 여러 조형물에 끌려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좁은 생활공간에 이렇게 다채로운 카페골목이 형성되었는지 놀랍다. 건물자체는 다소 노후화되었지만 바닥은 깔끔하게 포장되어 성곽길과는 대조된다.
어느덧 동대문이 흐릿하게 보일 시점에 가을의 향연이라는 별명이 붙은 억새가 우리를 멈추게 한다. 억새 사이 노랑꽃도 이채롭다. 이 억새꽃은 처음 꽃이 필 때는 연한 자줏빛이나 붉은색을 띠다가 점점 익어가면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은백색이나 흰색을 띠게 된다. 가을이 깊어지고 시들면 갈색이나 황금빛을 띠기도 하여, 이 시기에 노란색과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하니 내가 체감하기에 이제 가을이 시작인데, 억새에게 이미 가을은 무르익었나 보다.
잠시 멈춰 가을바람을 느끼며 동대문을 바라보며 순성 마지막의 아쉬움을 달래 본다.
단절된 동대문은 주위를 쉼 없이 지나는 자동차를 무심히 쳐다본다. 한양도성의 동쪽 관문의 역할을 빼앗긴 지는 이미 오래. 섬처럼 우두커니 서서 지난 세월을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