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검정~수성동 계곡_현재와 과거의 조화로운 만남
1. 홍제천과 지척 세검정
바위에 기반을 둔 예사롭지 않은 정자가 세검정이다.
전날 많은 비로 풍부해진 천의 시원한 물소리와 더불어 조선 영조 시대부터 그 후 인조반정 때까지
내려오는 역사이야기를 품고 의연히 서있다.
좁고 오래된 냇가 길을 따라 올라가면 정말 여기가 글로벌 시티 서울이 맞나 싶을 정도의 풍광이 나타난다.
백사실 계곡이다.
2. 백사실 계곡_한양의 비밀정원
백사실 계곡으로 가는 오르막 길은 거주와 힐링이 병존한다.
지은 지 좀 된 단층집과 자연이 만들어진 냇가 물흐름과 시원한 물소리에 잠시 걸음을 멈춰본다.
집 현관문 바로 앞에 이런 현장을 목도하고 사는 삶은 흔한 서울의 모습은 아니다.
백사 이항복의 별장터가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전해지는 백사실 계곡은 시원하게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계곡은 아니다. 조선시대 500여 년의 역사가 돌계단 하나하나에 느껴진다
백사라는 이름은 흰 뱀이 아니라 조선의 유명한 문인 이항복의 '호'다.
지금은 십여 개의 초석과 주춧돌만 남아 형태를 짐작할 뿐이다.
여기서 양반들은 풍류를 즐기며 자연과 벗 삼아 시조를 읊고 유유자적한 여유를 즐겼다.
물론 밑에 하인들의 고단한 모습도 대비되어 그려진다.
왜 이곳을 한양의 비밀정원이라는 별칭을 주었는지 알만했다.
지금도 원래 모습이 훼손되지 않은 형태가 인상이 깊었다. 요즘은 인공미 물씬 나는 데크길이 깔리는 게 대세라면 대세인데 그렇지 않고 자연 그대로 길이 보존되어 있었다.
3. 윤동주문학관
청운동에 물을 공급하는 수도가압장으로 쓰던 공간을 젊은 시절의 윤동주와 짧은 인연을 모티브로
문학관을 만든 아이디어는 참신하다.
생각보다 협소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시인을 만나게 돼서 반가웠다.
평생 순수하고자 했던 영원한 청년이 써 내려간 시는 시대는 냉혹했으나 영혼은 너무나 맑았음을 보여준다.
그와 관련된 영상이 상영되는 제3전시실은 그가 갇힌 감옥이 아닐까.
손에 닿지 못하는 높은 천장의 일부분에만 비치는 빛은 희망이요, 곧 다가올 죽음을 의미하지 않았을까.
숙연한 맘에 내가 여행 중임을 잠시 잊었다.
4. 수성동계곡
수성동계곡을 지나 마을버스가 보이는 인간계로 돌아왔다.
수성동(水聲洞)이라는 이름 또한 ‘물소리가 유명한 계곡’이라는 뜻이다.
전날 온 비로 그 명성을 실감하게 되어 다행이다. 평소엔 물이 없는 건천이다.
그리 길지 않은 내리막길의 풍경은 지나가는 개도 물에 몸을 담길정도로 시원하다.
왜 옛 성현이 조선 도읍지로 한양을 정했는지 이해가 된다.
서울이란 곳이 고개 들면 고층빌딩의 연속인 화려함이 있고 아래엔 흙길 구경하기 힘든 삭막함이 있다.
익숙한 자신의 길을 이어폰 친구 삼아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은 도시의 전형이다.
그러나 여기는 초록 물결과 사이사이 보이는 푸른 하늘이 도시 아스팔트 냄새에 찌든 서울인을 정화시킨다.
생색내기 쉬운 인공냄새 풍기는 공원과는 달리 수묵화 그러데이션처럼 서서히 스며드는 인간계에서 자연계로 갔다가 다시 일상사 복잡한 인간계로 변함에 스스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