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엔 나의 강아지 또또가 있다
충남 서산에서 25년의 시간을 보냈다.
거기가 첫 직장이었고,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았다. 마지막 직장 생활도 거기서 마무리지었다.
도농 복합도시로 천명되었지만, 천주교입장에서는 많은 순교자를 낳은 성지이다.
석유화학단지와 자동차 관련 업체가 많은 곳이고 그래서 일자리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의외로 외지인들이 직장때문에 터전을 많이 잡고 사는 곳이기도 하다.
이건 눈에 보이는 현재의 모습이라면, 과거에는 유행가가 있듯 '갯마을'이었다. 지금은 간척사업으로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내가 서산에 처음 내려와 처음 온 곳은 충남 대산의 바다 앞 사택이었다. 정말 베란다를 열면 바다가 바로 보였다. 낭만이 있었다. 추억이 있었다.
그렇지만 하고많은 추억 중에 유일한 강아지와의 추억을 새삼 기억의 창고에서
꺼내본다.
아픈 강아지 또또 간호가 나를 밤새게 했다. 벌써 10년이 훨씬 지났다.
걱정이 돼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낑낑거리는 내 팔뚝 크기의 이 족보 없는 생명체의 아련한 눈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웃 개에게 배를 물려 폐가 손상되었다_복수를 하려했으나 계획에 그쳤다. 마당에 힘없이 누워있는 또또를 안고서 동물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상처를 밴딩 했다. 상처가 아물 때까지 나의 집에 있기로 했다.
또또는 힘없는 눈으로 자기를 간호해 주는 인간에 무조건적인 의탁을 했다. 똑바로 누울 수 없어 베개를 받쳐주면 거의 서서 통증을 견디어냈다. 눈치가 좋아서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대소변도 가리고 정말 똑똑했다. 처음 사람 아닌 동물에게 정을 주었다. 어릴 땐 거주여건이 그리 좋지 않아 개나 고양이 같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했다.
같이 밤을 새운 정이 깊어 다시 자기의 집_처갓집_으로 돌아갈 운명의 강아지에게 우리 부부는 지극한 정성을 주었고 이를 본 장인어른과 장모님은 신기한 듯 쳐다봤다.
가끔 보는 우리를 보면 자기 키의 두 배이상의 도약 능력을 보여주며 그렇게 반가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집에서는 아프지만 자유롭게 다니던 또또는 본 거처에 돌아와서는 행동반경에 제약이 가해졌다.
그렇게 시간이 1년여 시간이 지난 후, 또또의 죽음을 듣게 되었다. 그 소식을 접했을 때 안타까움이 일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됐다. 아직도 사진과 동영상을 가끔 보는데, 그의 사망원인을 알지 못한다.
보통 10여 년간 반려견을 키우다가 아픈 기간을 거쳐 보내면서 많이 힘들어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곤 한다. 나는 그런 과정은 없었다. 치명적이게 귀여웠던 강아지 시절에 간호해서 정이 좀 생겼다가, 일상의 시골 개로 가끔 접했던 모습을 뒤로하고 벼락처럼 사라져 간 거다. 요란 떨듯 슬퍼하지는 않았지만 서서히 다가오는 강물처럼 애잔하게 다가오는 그리움이다.
시골 개의 삶이란 게 쉽게 잊히고 쉽게 대체되지만 내 강아지 또또는 그리 쉽게 잊히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