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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퍼퓸힐러 이주용 May 23. 2020

퍼퓸힐러 향료를 말하다.

내가 쓰는 향료를 정리하면서

탄제린 tangerine _ 탑 노트

지난겨울에 귤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높지 않았던 거 같아요, 늘 피곤함이 앞에 있었고 조급함이 더 앞에 있었고 잠깐이 필요한 순간이었지만, 그러하지 못했던 거 같아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귤을 평소처럼 많이 직접 사 먹지 못한 거 같네요. 왠지 영화의 재미있는 장면을 놓친 것처럼.


만다린과 탄제린은 우리에게 매우 가까운 과일이었지만 늘 스친 무덤덤한 향기로 기억되는 거 같네요, 한 입이면 먹는 귤 상큼한 것도 달콤한 것도 마냥 익숙한 그래서 좋은 귤.


탄제린의 향기는 차갑지 않아요, 오히려 따스하고 포근함이 더 어울리는 향기며 향료인 거 같아요, 향기의 첫인상은 매우 활동적이에요 선명한 인상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정도니까요, 그 향기는 저에게 하얀색을 떠올리게 해요, 귤의 흰 섬유질같이 상큼하지 않지만 매우 귤과 같은 향기 그리고 기름진 느낌은 흡사 주방 세제 향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느껴왔던 귤의 향기와 매우 거리가 있는 탄제린은 가을과 겨울의 향수에 많이 쓰고 특히나 남자의 향기를 만들고 싶을 때 차분하고 고혹적인 여인의 향기를 만들고 싶을 때 많이 생각나고 또 손이 가는 향료네요.


탄제린의 향기는 풍성하고 가벼운 꼭 가볍지는 않아도 되는 화이트 플로럴 향수에 들어가는 모든 하얀 꽃들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는 각기 개성 강한 우디 노트 향료들과도 매우 잘 어울리는 것이죠, 부드럽게 때론 선명하게 그리고 은은하게 내가 상상하는 조화로운 아름다운 향기의 한 축을 손쉽게 만들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는 그런 향료, 무더운 여름에도 살짝 아주 조금만 넣어서 또 다른 끌림을 만들어 주는 향료.


향수를 만들 때 중요한 게 있다면 역시 조화로움인 것 같아요, 어떤 노트의 향료를 어떻게 전달하고 싶은 건지 뿌릴 때 바로 느껴지도록 하고 싶은지 아니면 시간이 조금 지난 후 화려하게 또는 잔잔하게 여리게 느껴지도록 이것도 아니면 잔향으로 느껴지도록 하고 싶은지 물론 바로 쉽게 만들지는 못하지만, 시간과 노력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그 무엇인가를 만들 때 향료의 향기뿐만 아니라 기능적인 특성을 이용하여 더 효과적으로 원하는 향수를 만들 수 있어요, 탄제린의 기능적인 특정 중 하나가 상대적으로 무거운 향료 그래서 발향이 비교적 천천히 되는 향료를 조금 더 가볍게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도 하고 있어요.


머스크의 부드러운 이미지를 조금 더 빨리 즐기고 싶을 때 살짝 더 자극적인 인상을 만들고 싶어서 사용한 시벳  또는 비버의 향기를 앞당겨줘서 같은 향료를 가지고 다양한 분위기의 향수를 만들 수 있으니 여유롭게 생각하고 천천히 연습하면서 하나씩 하나씩 찾아가면 좋을 거 같아요.


보통의 시트러스 향료와는 조금은 다른 모습을 가진 탄제린 나와 많이 닮은 사람이어서 좋아했는데 많은 시간을 가까이 지내면서 알게 된 새로운 모습처럼 향료들도 급하지 않게 천천히 하나씩 실수도 하면서 자주 가까지 하면 좋을 거 같아요, 어느 순간 더 잘 쓸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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