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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2. 2022

온가족 코로나 확진, 7일 격리 후 일상으로의 복귀

잠시 멈춤의 시간, 함께 한 책과 영화 


우리가 넘어지는 건 일어나는 걸 배우기 위함이다

드라마 <런온> 명대사


 오랜만에 노트북을 켰다. 자판을 두드리는 손이 어색하다. 쓰지 않던 근육을 쓰는 것처럼 글을 쓰는 뇌가 삐그덕삐그덕 힘들게 돌아간다. 일주일 넘게 읽는 사람, 보는 사람으로 살았다. 쓰는 사람까지는 자신이 없었다. 책을 읽으며 감동하고 영화와 드라마를 보며 공감하는 일은 아프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흐트러져 있는 나를 글로 주워담아 정돈하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고 싶은 일이었다. 

 작은아들을 시작으로 우리 네 가족 모두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7일 격리 생활을 했다. 월요일 아침 일찍 확진 문자를 받았을 때는 덜컥 겁이 났다. 1등으로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것처럼 당황스럽고 뒤늦게 아팠다. 상처를 치료하는 것보다 내가 다시 달릴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살면서 많이 넘어져봤으니 일어나는 것도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예상치 못한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니 처음 넘어진 아이처럼 엉엉 울고만 싶었다. 

  토요일 퇴근 후 우리 식구 모두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했다. 체대입시 학원에 다니는 작은아들을 위한 형식적인 절차였는데 작은아들이 양성이 나오는 바람에 가족 모두 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가족 모두 아무런 증상도 없었다. 다행히 나와 남편, 큰아들은 키트 검사 결과 음성이었다. 작은아들은 PCR 검사를 받았지만 별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키트 검사는 70% 정도만 맞는다는 말도 들었고 나머지 가족이 음성이니 작은아들도 음성이 나올 거라고, 정말 그럴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다음 날 작은아들은 양성 판정 문자를 받았고 세 식구는 서둘러 PCR 검사를 받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은아들의 격리만 걱정하고 있었는데 검사를 받은 그날 저녁부터 세 식구의 컨디션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큰아들의 기침 소리를 들으며 불안한 밤을 보내고 결국 다음 날 아침 세 식구 모두 양성 문자를 받고말았다.  

 학원에서 수업을 하는 논술쌤이라 가장 먼저 토요일에  수업한 아이들이 걱정되었다. 학원 원장님께 양성 판정 소식을 전했다. 원장님은 먼저 나의 몸상태를 걱정하셨고, 금요일과 토요일 수업한 학생들에게 알리고 코로나 검사를 받도록 조치하겠다고 하셨다. 이틀 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학생들의 무탈과 학원의 무사를 간절히 바랐다. 몸이 아픈 것보다 마음 불편한 것이 더한 고통이라는 걸 몸소 체험했다.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있는데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자꾸만 안에서 찬바람이 불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했고 진심을 다해 수습할 것을 다짐했고 다시 시작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3일 후 아이들과 학원에 별일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마음이 놓이고 그때부터 마음 편히 앓았다. 나에게 가장 좋은 약은 언제나 그랬듯이 책이었다. 이부자리 머리맡에 읽고 싶은 책들을 쌓아놓고 하루 종일 읽고 또 읽었다. 읽다 말았던 김동식 소설집 『회색인간』을 마저 다 읽었고,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한 진실이라도』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감정이 복받쳐 철철 눈물을 흘리다 가족들을 당황하게도 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드라마 작가 지망생을 위한 책 『나는 왠지 대박날 것만 같아!』를 읽다가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 세트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책장에 꽂아놓았다. 어떤 상황에도 꿈을 놓지는 말자고 나를 토닥이며 그래도 급한 건 돈벌이라 함께 주문한 『네이버 블로그로 돈벌기』를 읽으며 현실 감각을 깨웠다. 출근도 못 하고 일주일 이상 집에 있게 되었으니 이참에 평소 읽지 못했던 책에 도전하고 싶어 800페이지에 달하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기 시작했고, 매일 아침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음미하듯 읽어가고 있다. 


코로나 격리 기간 동안 나와 함께 한 책들


 가족이 하루 종일 집안에 붙어 있으니 남편과 TV 프로그램을 챙겨 보기도 하고 큰아들과 함께 영화도 세 편이나 봤다. <차이나는 클라스> 김누리 교수의 강의 3편을 보면서 독일 문화를 부러워했고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한숨쉬며 내가 하는 논술 교육에 큰 책임과 사명감을 느꼈다. <꼬꼬무>의 '나혜석' 편을 보며 여성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이 시대에, 이 나라에서, 내가 처한 이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는지 나에게 물었다. 아들의 권유로 독특한 독립 영화 <메기>를 함께 봤다. 이야기 전달 방식의 다양성을 생각하며 나는 어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  경제 영화 <빅쇼트>를 보며 그 감독의 영화 <돈룩업>과 함께 다시 한 번 보면 좋겠다 싶었다. 유아인 주연의 영화 <소리도 없이>는 기대 이상이었다.

 3년 동안의 휴식이 내게 '읽고 쓰는 삶'이라는 설레는 꿈을 꾸게 했듯이 일주일 동안의 멈춤은 나를 돌아보고 삶에 대한 자세를 점검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한 고마움, 일희일비하지 않는 의연한 태도,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삶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온가족 코로나 확진으로 일주일 자가 격리를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남편은 어제부터 출근을 했고, 큰아들은 혼자 영화를 보러갔고, 작은아들은 오늘부터 체대입시 학원에 다시 나간다. 그리고 나는 이번 주부터 논술쌤으로 복귀하기 위해 학부모님들과 학생들에게 안부 문자를 하고 수업 준비를 하고 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내 일상을 더욱 귀하게 여기며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갈 것을 다짐한다. 아프지 않고, 별일 없는 오늘 하루가 참으로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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