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Mar 16. 2022

박완서 에세이『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북리뷰

중년 여성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

 젊은 날엔 박완서의 글을 읽지 않았다. 가끔 학원 교재에 실린 짧은 글을 읽는 것으로 족했다. 가슴이 쉽게 달아오르고 마음이 수시로 변하던 그때의 나에게 차분하게 과거의 시간을 곱씹듯 이야기하는 박완서의 글은 활활 타오르는 모닥불에 찬물을 끼얹는 듯 맥빠지는 행위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중년이 되어서야 박완서의 글을 하나 둘 찾아 읽기 시작했다. 이제 함께 인생을 이야기할 만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거겠지. 특히 35편의 에세이를 모아 놓은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는 온가족이 코로나 확진이 되어 일주일 격리되어 있던 기간에 나의 눈물샘까지 자극했다. 



오늘 살 줄만 알고 내일 죽을 줄 모르는 인간의 한계성이야말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
-프롤로그 중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코로나 사태가 벌써 3년 째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금방 끝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으로 하루하루 버텼는데 최근 일일 확진자가 35만 명을 넘고 있다. 요양 병원에 홀로 있는 울엄마를 못 본 지 몇 달 째인지 모른다. 작은아들은 고등학교 입학하고 학교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고3이 되어 입시를 앞두고 있다. 코로나는 엄마의 인생 마지막을 극한의 외로움으로 몰고 갔고, 아이의 학창 시절 추억마저 앗아갔다.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오늘 아침에는 TV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0일 째 뉴스를 봤다. 길게 늘어선 전쟁 난민들 틈에서 너무나 맑은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어젯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다가 잠든 탓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기성 세대로서 아이들에 대한 어른의 죄책감으로 고개가 숙여졌다. '인간의 한계성'을 실감한다. 내일 어떻게 될 지 모르니 누군가는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하겠지만 요즘 나는 너무 아등바등 애쓰지 말고 살아야지 싶다. 



인생이란 과정의 연속일 뿐, 이만하면 됐다 싶은 목적지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게 곧 성공한 인생입니다. 
-「행복하게 사는 법」 중에서 -


 한때는 내 꿈이 확실해진 것 같아 든든했고, 촘촘하게 계획을 세워가며 단단한 일상을 꾸려가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처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할  때가 있다. 급하게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쫓아버린다. 성실한 남편과 몸 건강하고 표정 밝은 두 아들이 있는데 현모양처는 못 될 망정 가족에게 아무 득이 될 것 없는 몹쓸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자책하지만 시시때때로 휘청거리고 이유모를 슬픔에 몸을 떤다. 박완서 작가가 말하는 중년 여인의 허기증일까.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계획들로 좀 지친 것 같다. 올해는 24시간을 더 길게, 알차게 쓰겠다며 호기롭게 덤볐는데 한 살 더 먹은 내 몸은 이제 그만 좀 괴롭히라고 짜증을 내고, 50이 넘은 여자의 가슴은 성공을 향해 달려가기엔 열정의 온도가 한참 모자라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악다구니를 쓰며 나 자신을 채찍질해 보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타협했다. 이제는 어디를 꼭 가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평온한 일상을 살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독서 기록장



오래 행복하고 싶다.
오래 너무 수다스럽지 않은, 너무 과묵하지 않은 이야기꾼이고 싶다.
p.221


 박완서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를 읽으며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은 더 간절해졌다. 내가 가장 행복할 때가 언제인가 생각해보면 좋은 책을 읽으며 나도 무언가 쓰고 싶어 끄적거릴 때이다. 돈 안 되는 일이라 지금 당장 그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만 큰 욕심 내려놓는다면 평생 좋아하는 것을 놓지 않고 살 수는 있다. 큰 행복을 좇기보다는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다. 나에게는 책과 글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친구이자 마지막까지 나를 웃게 할 행복이 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온가족 코로나 확진, 7일 격리 후 일상으로의 복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