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어린이상"을 받은 아이는

어린이날 기념 독서 《어린이라는 세계》

by 유쾌한 주용씨


논술쌤이니까, 어린이날 기념 독서를 해야지 싶어 도서관에서 《어린이라는 세계》를 빌려왔다. 재미있다. 나와 논술 수업을 하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나도 언젠가 우리 아이들 얘기로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다가 그래, 꼭 쓰자 싶었다. 나와 논술 수업을 하는 아이들은 초등 4학년부터 중1까지. 어린 아이들과 수업하다 보면 아이들이 너무 귀엽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깜짝깜짝 놀라기도 한다. 중고등 학생들과 국어 수업할 때는 못 느꼈던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나쁜 어른을 응징하는 착한 어른이 되겠다. 머리에 불이 붙고 속이 시커메질지라도 포기하지 않겠다. 이상한 일이다. 책은 내가 어린이보다 많이 읽었을 텐데, 어떻게 된 게 매번 어린이한테 배운다.
《어린이라는 세계》 p.37


이래봬도 나는 국민학교 6학년 어린이날에 '착한 어린이상'을 받은 몸이다. 전국 33명의 어린이에게 주는 상으로 3·1운동 당시 애국지사 33인을 기념하며 탑골 공원(파고다 공원)에서 수상했다. 서울로 상 타러 간다고 엄마는 내게 눈부시게 하얀 타이즈에 하늘하늘 원피스를 입히셨다. 충청남도 촌닭의 까만 피부에는 그리 안 어울렸을 것 같지만 생애 처음으로 큰 무대(?)에 서 본 경험이었다.


내가 다닌 국민학교는 한 학년이 1반만 있는, 작은 시골 학교였다(폐교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 난 1학년부터 6학년까지 6년 내내 부반장이었다(당시에 반장은 남자, 부반장은 여자로 정해져 있었다). 시골이었지만 우리 집은 농사를 짓는 집이 아니어서 농사일을 거들어야 하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학교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다. 웅변 대회도 나가고, 달리기 선수로도 뛰어봤고, 엄마가 직접 만들어준 발래복을 입고 학교 대표로 발래대회도 나가봤다. 6학년 때는 개교 이래 처음으로 여학생 학생 회장까지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가장 반짝반짝 빛나던 때였던 것 같다.


장사를 하러 다니시는 부모님 때문에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밥을 할 줄 알았고, 간단한 빨래와 집안 청소 등을 하며 남동생과 함께 늦게까지 집을 지키는 일이 많았다. 한 반 50명 정도밖에 안 되는 학급이었지만 학교 공부도 곧잘 했고, 적극적인 학교 활동으로 선생님들의 눈에 들었던 아이였다. 그래서였는지 착한 어린이 후보로 내가 추천되었고, 지금 생각하면 쑥쓰럽지만 1984년 5월 5일 나는 '착한 어린이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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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그때 정말 착한 어린이였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13살에 어울리는 웃음과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때는 지금의 나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을 테니, 아니 바로 2년 후 우리 집이 망하고 부모님이 야반도주를 하고 15살 겨울 결국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될 거라고 짐작조차 못 했으니 마음껏 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난 내가 착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골에서 도시로 떠밀려 온 후 착하다는 건 약하다는 말과 비슷한 말이 돼버렸다. 가난은 착한 사람보다는 독한 사람을 원했다. 계획대로 잘 된 일인지 나는 그때부터 지금껏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쎄다거나 독하다거나 무섭다는 말까지 들으며 살았다. 나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이었던가 보다. 그런데 가끔 내 깊은 곳의 나를 몰라주는 사람들이 야속해서 눈물 짓던 때도 있었다. 그때그때 척하며 살다보니 약함은 감춰졌고 착함은 잊었다.


나이 50에 논술 수업을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선생님이 화를 낼 상황인데, 내가 화를 내지 않고 웃으며 넘어가니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착해서 그런 거라고 결론지었던 것 같다. 아이들에게 어른의 착함은 친절함, 자상함, 화 내지 않음,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논술 수업을 하면서 절대로 아이들에게 큰소리 치며 화내지 말자고 결심했다. 어떤 상황에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웃으며 기다려주자 마음먹었다. 내 작전이 통했는지 우리 아이들은 나를 착한 선생님이라며 내 앞에서 잘 웃고 잘 떠든다.


38년 전 5월 5일 어린이날, 13살의 나는 착한 어린이였다. 2022년 5월 5일 어린이날, 쉰 한 살의 나는 논술쌤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착한 어른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어린이라는 세계에 발을 담그고 나는 다시, 마음껏 착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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