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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17. 2022

수능 보는 아들에게

수능 세 번째, 엄마의 마음

 둘째아들을 수능 시험장에 데려다주고 왔다. 첫째의 수능을 두 번이나 치러본 덕분인지 둘째의 수능은 그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고3 이라는 사실을 실감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둘째는 아주 순하고 손 안가는 수험생이었다. 그래도 수능을 하루 앞둔 어제는 아침부터 기분이 좀 달랐다. 뭐라 표현해야 할까? 준비 안된 어린 병사를 전쟁터에 내보내는 기분이랄까? 온몸에 전기가 통하는 것처럼 찌릿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듯 싸했다가 후끈해지기도 했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것처럼 가슴이 욱신거렸다. 자식이 아프면 차라리 내가 아픈 게 낫지 하는 심정이다.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시험장에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다. 항상 느긋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지내온, 우리 순둥이 둘째가 수능의 그 긴장감을 어떻게 견뎌낼지 걱정이다. '평소 그렇게 쿨한 척 하더니 별수없군' 하는 소리가 귓가에 쟁쟁하지만... 인정! 정말 오늘만큼은 어쩔 수 없다. 자식의 일에서만큼은 엄마는 그저 작은 사람일 뿐이다.



 어제는 수험표 받으러 오랜만에 학교 가는 아들을  학교 앞까지 태워다주고 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도시락 반찬 뭐 해 줄까 물었더니 무던한 우리 아들 '안 먹어도 될 것 같은데...' 한다. 고등학생이 된 자식의  도시락을 싸는 유일한 날이 수능일인데, 그것도 소화 잘 되는 걸로 어떻게 메뉴를 구성할지 신경이 곤두서는 날인데, 밥을 안 먹어도 된다니 안 될 말이다. 긴장 탓에 도시락을 다 먹지 못하고 남겨오더라도 엄마인 나는 온 정성을 모아 도시락을 준비했다. 바지락을 넣은 개운한 시금치 된장국을 끓이고 시간과 공을 들여 탄탄한 계란말이를 했다. 메추리알 장조림과 진미채볶음을 나눠 넣고, 생김치와 들기름에 볶은 김치를 함께 담았다. 사용 안해본 보온 도시락이라 혹시 여는데 곤란할까봐 찬찬히 설명도 해줬다. 정 많은 우리 둘째아들, 엄마의 정성에 화답하듯 따뜻한 미소를 지어준다.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라고 말하는데 내 목소리가 살짝 떨린 것 같다.


2019년 큰아들의 수능일에 쓴 글


https://blog.naver.com/juyongi/221707302474



2020년 재수생 큰아들의 수능일에 쓴 글


https://blog.naver.com/juyongi/222161382714


 큰아들의 수능을 두 번이나 치르면서 에너지를 다 쓰고, 할 말을 다 쏟아낸 탓인지 작은아들에게는 할 말이 별로 없다. 예민한 첫째에 비해 신경쓸 것 없이 순하게 자라준 둘째는 수능도 덤덤하게 잘 치르고 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 8시 40분, 드디어 수능 1교시 시작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아 '우리 아들, 긴장하지 말고 차분하게 해라. 평소대로만 하면 돼. 너무 잘 하려고 하지 말고, 마음 편하게... 알았지? 우리 아들, 파이팅!'하며 혼자 기도를 했다. 큰 실수만 하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 하루의 시험이 우리 아들 마음에 상처가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아직 어린 아들이 시험 결과에 절망하는 일이 없기를 간절히 빌었다.



 언제부터인가 중요한 일이 있거나 큰일을 앞뒀을 때 그 일의 성공보다는 최악을 생각한다. 잘 되면 그저 좋아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이다. 그때 당황하거나 절망으로 주저앉지 않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미리 가장 안 좋은 결과를 상상한다.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이고 머릿 속에서만 그리는 일이니 실제보다는 덜 괴롭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왔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 최대한 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고 거기에 따른 방법을 구상한다. 큰아들이 수능을 망쳤다고 했을 때, 재수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두 번째 수능 결과도 좋지 않았을 때, 그동안 해오던 공부 말고 다른 분야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나에겐 이렇게 많은 경험치가 쌓였다. 그래서 우리 둘째의 수능일에 난 좀 더 여유롭게 최악의 상황을 그리고, 의연하게 대처할 것을 다짐한다.



사랑하는 우리 아들!


나는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더 이상 바랄 게 없어. 진심이야.

네가 아프면 나는 더 아프고

네가 웃으면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해.

20년 가까이 너를 키우면서

아팠던 날들은 기억에 없고

행복했던 순간만 마음에 선명히 남아있어.

넌 내게 그렇게 고마운 사람이야.

오늘이 너에게 아픔이 될지, 웃음이 될지

알 수 없지만 다 괜찮아.

네가 필요할 때

네가 원하는 거리에서

엄마가 항상 기다리고 있을게.

그동안 수고했고

잘 견뎌줘서 고마웠다.


몸과 마음을 다해 아들을 응원하는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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