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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22. 2023

설연휴 금주 가능할까?

금주 22일째!

 금주 22일째, 설날 아침이다. 맏며느리인 나는 돌아가신 시부모님을 위해 차례상을 차린다. 농산물시장, 재래시장, 연안부두 어시장을 돌며 시장을 봤다. 전처럼 집에서 모든 음식을 다하지는 않지만(재래시장에서 전이나 나물 등을 구입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떡국을 준비하고 산적을 재고 조기를 굽고... 할 일이 많다. 사실 명절의 하이라이트는 차례상을 차리는 것보다 가족 친지끼리 모여 낮부터 술자리를 거하게 갖는 것이었다. 작년 추석까지만 해도 연휴 중 반 이상은 술에 취한 상태로 지냈던 것 같다. 명절은 그래도 된다고 조상님께 허락 받은 것처럼 말이다. 


 설연휴인데 금주를 한다고 하면 술꾼들은 대부분 그럴 수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이다. 좋은 안주가 지천인데 어떻게 술을 안 마실 수 있냐고 말이다. 나도 그랬다. 애주가에게 모든 음식은 안주다. '캬~ 저거 한 접시면 소주 두 병은 마시지' 하며 명절 음식을 반겼다. 그런데 이제 모든 음식은 술안주가 아니라 그저 ㄲㅣ니일 뿐이다. 최고의 술안주라고 좋아했던 새조개를 앞에 두고도 흥분하지 않는다. 그저 그 맛을 음미하는 정도로 만족하고 대신 야채로 배를 채운다. 확실히 식탐도  줄었다. '이왕이면 빨리 많이 먹어야지'가 아니라 '되도록 천천히 조금만 먹어야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항상 생각대로 되는 건 아니지만 먹는 속도와 양을 의식한다는 것만으로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해 아주 바람직하다.


 차를 타고 시장을 오가며 술을 안 마시면 좋은 점 하나를 더 생각해냈다. 자유롭다는 것이다. 대리 걱정 없이 차를 몰고 어디든 갈 수 있다. 전에는 남편과 함께 데이트라도 할라치면 술 마실 걸 감안해서 차를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그러니 너무 멀리가는 게 부담스럽고 술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무척 고단했다. 그런데 이젠 어디든 갈 수 있다. 갈 때는 남편이 운전하고 올 때는 술 마신 남편을 조숙석에 앉히고 술 끊은 내가 운전해서 오면 된다. 술자리에 있다가도 급한 일이 생기면 차키를 들고 바로 움직일 수 있다. 금주가 내 행동 반경을 넓혀준 것이다. 술 안 마시는 게 나를 옥죄는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나를 훨훨 풀어주는 것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하루가 길어졌다. 토요일 아침 일찍 시장을 보고, 수업을 하나 하고, 시동생 부부와 어시장에 다녀왔다. 그때까지 내가 먹은 거라곤 시동생이 사준 빽다방 라떼 한 잔이 전부였다. 오후 4시가 다 돼서야 술상이 차려졌고 나의 첫끼이자 마지막 끼니를 조절해가며 먹었다. 상을 치우며 설날 차례상에 올릴 음식 재료들을 손질했다. 작은아들 저녁으로 갈비까지 구워주고 주방을 정리하니 저녁 8시. 다른 때 같았으면 술을 마신 상태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겠지만 말짱한 정신인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다이어리에 오늘을 기록했다. 세수를 하고 기초 화장품으로 꼼꼼히 피부 관리를 마쳤다. 스트레칭과 머리서기로 몸을 정돈했다. 그제야 김영하의 소설 『작별인사』를 들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스텐드를 켠다. 그렇게 나의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내 몸을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하게 쓴다. 나이 들어서 부족한 체력을 금주 덕분에 얻은 에너지로 채우는 기분이다. 하루의 시작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꼭 움켜쥐었다가 내 몸을 적재적소에 사용한다. 하루 24시간은 똑같은데 시간이 1.5배쯤은 더 길어진 것 같다. 체중은 2kg 정도만 빠졌을 뿐인데 몸이 무척이나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요가 동작도 전에 비해 훨씬 자연스럽고 피곤함도 덜하다. 1년 금주를 결심하고 16:8 간헐적 단식까지 겸하고 있는 요즘, 어쩌면 올해 내가 더 젊어질 것만 같은 기분 좋은 예감마저 들고 있다. 


 설연휴의 첫날, 가족들과 맛있는 음식에 담소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좋은 안주에 기분좋게 과음하는 식구들 곁에서 상을 차리고 치우며 나 자신을 대견해했다. 애주가인 내가 이 힘든 걸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나 자신이 무척이나 기특했다. 1년 금주를 해내면 앞으로 어떤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설날 아침, 금주 결심을 더욱 확고히 한다. 나 스스로 금지한 일을 하지 않는 것에 성공한다면 내가 허용하고 반드히 해내겠다고 마음먹는 일도 분명 이뤄낼 거라고 믿는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신뢰한다는 건 자존감이 높다는 얘기다. 금주가 나이 50 아줌마의 자존감까지 챙겨주고 있다. 술 없이 행복한 설이다.


 설연휴에도 나의 금주 생활은 이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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