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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6. 2023

금주 포기 선언!

금주 선언 46일 만에 금주 포기 선언을 합니다.

 제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괜찮은 척 했지만 사실 괜찮지 않습니다. 1년 금주를 선언한 이후로  몸이 어디에 묶인 것처럼 불편했습니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아서 좋은 점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체중이 아주 조금이나마 빠졌고 항상 맑은 정신으로 있으니 전보다 일도 많이 합니다. 수업이 없는 날엔 하루종일 엉덩이가 아플 정도로 책상 앞에 앉아 읽고 쓰기도 합니다. 그런데 술 마시지 않는 제가 아주 많이 어색합니다. 솔직히 흥이 나질 않습니다.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 술을 마시지 않으니 좀 심심한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술을 끊으면 제 자신이 자랑스러울 줄 알았는데 술에 져서 어쩔 수 없이 물러서는 꼴이 오히려 비겁해 보이고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술을 안 마시면서 남편과의 대화도 줄었습니다. 기쁜 일이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남편과 술 한 잔 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그 재미가 빠지지 우리 부부 사이가 좀 별로입니다. 둘째아들이 올해 성인이 돼서 술을 마실 수 있게 되었는데 1월 1일부터 엄마가 단주를 선언하는 바람에 술잔 한번 부딪치지 못했네요. 군대 간 첫째가 3월 초에 휴가 나오면 처음으로 네 식구가 함께 술 한 잔 할 수 있는데 그 즐거움도 놓치고 싶지 않고요. 45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아야 할 이유만 찾았는데 결국 어제 술을 마셔야 하는 이유가 더 많아지는 바람에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금주 선언 46일 만에 금주 포기 선언을 했습니다. 

 어제 남편과 술 한 잔 했습니다. 45일 참았다가 마신 거라 과음을 하긴 했지만 오늘 아침 정신도 말짱하고 몸도 가볍고 기분도 괜찮습니다. 시원한 물 한 컵 마시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금주 선언을 하고 글을 남겼으니 금주 포기 선언에 대한 글도 쓰려고요. 그래야 마무리가 될 것 같아서요. 1월 1일에 금주를 결심했던 이유를 생각해봤습니다. 술을 안 마시고 나는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술을 마시면 그 일을 해낼 수가 없는 건지 좀 따져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야 다시 술을 마시게 된 저를 이해하고 다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테니까요. 참으로 애틋한 자기애입니다. 

 첫째, 살을 뺄 수 있다는 기대가 가장 컸던 것 같습니다. 술만 끊으면 단시간에 살이 확 빠지고 다른 모습이 될 수 있을 거라 기대했습니다. 제 살의 90%는 술 때문이라고 확신했던 거죠.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번에 45일 금주를 했는데 겨우 1,2kg 정도가 왔다갔다 합니다. 전에 100일 단주를 했을 때는 4kg 정도 빠졌는데 금방 다시 요요가 왔고요. 좀 많이 실망스러웠습니다. 마시고 싶은 술을 힘들게 참고 야식도 먹지 않는데 좀처럼 체중이 빠지지 않으니까요. 제 살은 술 때문이라기보다는 들쑥날쑥한 식습관 탓인 것 같습니다. 살을 빼는 게 목표라면 금주보다는 식습관을 개선하는 게 급선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열심히 글을 써서 올해에는 반드시, 무슨 성과라도 내고 싶었습니다. 술 마시는 시간, 술자리에 쏟는 에너지를 긁어모아 글쓰기 1년 하면 어떤 결실이라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죠. 그래서 금주와 함께 1년 매일 블로그 글쓰기를 결심하고 지금까지 어떻게든 쓰고는 있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너무 부담이 큽니다. 하루에 꼭 글 하나를 써야한다고 생각하니 소재 찾기에 연연하게 되고 미완성 글을 급하게 마무리지어 블로그에 그냥 올리기도 합니다. 완성된 글, 만족스러운 글, 묵히고 묵혀서 잘 익힌 글은 더 못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몸과 마음을 열어 시원한 글을 쓰고 싶은데 몸도 마음도 모두 꽁꽁 묶여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제가 쓴 글도 답답하고 성이 차지 않습니다. 

 셋째, 나이 50이 넘어가니 건강을 위해서라도 금주가 정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언니가 아픈 것도 영향이 좀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데 요즘 무릎 통증으로 두 달 가까이 고생을 하고 있고 잠을 많이 자는데도 몸이 개운치가 않습니다. 술을 안 마시는데 왜 이러지 하는 생각에 짜증만 더 나지 뭡니까. 나이를 먹어서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 하며 자기 합리화를 합니다. 30년 술을 마셨으니 술이 독이 되지 않도록 잘 조절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술을 벗 삼아 오순도순 지내면 덜 외로울 것 같고요.

 제게는 아주 대단한 걸 참고 있는데 그 보상이 미미하니 재미도 없고 신이 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모범생처럼 사는 일상이 좀 지루했다고 할까요. 제 스타일이 아닌 옷을 입은 것처럼 영 어색하고 불편했습니다. 1년 계획했던 단주를 겨우 45일 하고 그만뒀으니 살짝 민망하기는 하지만 구속에서 벗어난 것처럼 몸과 마음이 편해지고 가벼워진 건 사실입니다. 이제 무엇을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은 그만 하려고 합니다. 무엇을 반드시 해야겠다는 다짐도 좀 줄이려고요. 금주니 다이어트니 이런 굴레에서 이제 좀 자유로워질까 합니다. 이 정도 나이 먹었으니 이제는 마음이 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보려고 합니다. 

 2023년 금주 다이어리는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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