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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Sep 07. 2023

글을 못 쓰겠다는 변명

쓰고 싶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글을 못 쓰겠다.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다. 글 쓰는 게 즐겁지 않다.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 자체가 그저 부담이고 힘겹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책만 읽었으면 좋겠다. 안 쓰고 읽기만 하면 안 되나? 몸과 마음에 슬럼프가 왔다고 느끼기 훨씬 전부터 글쓰기가 힘들었다. 매일 노트북 앞에 앉지만, 글을 쓰기 시작하다 끝맺지 못하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원래 재능이 없었던 건 알고 있었지만 매번 시도해도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 없으니 힘이 빠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블로그에 '매일 글쓰기'를 다짐하다 포기하고, 브런치에 '사심 가득 60일 글쓰기' 매거진을 만들었지만 계속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한 사람이 된 것 같아 마음의 불편함은 더해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오늘 아침 산책길에 남편에게 "글을 못 쓰겠어" 했더니 "그럼 쓰지 마" 한다. "무엇을 써야할지 모르겠어" 했더니 "쓰고 싶은 게 생각나면 그때 써"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성의 없게 대꾸한다고 짜증을 냈을지 모르는데 오늘은 남편의 힘을 뺀 대답이 분명한 해결책처럼 반갑다. 또 뭐라고 하나 궁금해서 물었다. "책을 읽는 건 좋은데 글 쓰는 건 왜 이렇게 힘들지?" 했더니 "그럼 책만 읽어. 그러다보면 쓰고 싶을 때가 있겠지. 아직 쓸 게 없나보지" 한다. 아! 글을 못 쓰겠으면 안 쓰면 되는 거구나. 쓰고 싶은 게 생각나면 그때 써야겠구나. 아직 내 안에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는 거구나. 그냥 편하게 책만 읽어도 되는 거였구나.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편과 산을 내려오는데 시원한 바람과 함께 답답한 내 마음에도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가슴이 탁 막혔었다. 마중물 한 바가지도 없는데 펌프질을 하는 것처럼 메말라 있는 마음에서 자꾸만 무언가를 짜내려고 애를 쓰는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쓸 말이 없었던 거다. 어지러운 내 생각이 정리도 되지 않았고, 복잡한 마음은 갈팡질팡 길을 못 찾았고, 내가 정확히 어디고 가고 싶은지 방향도 잃은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뽑아내려니 힘들 수밖에... 대한민국 중년의 남자로 어깨가 무거울 남편이 한결같은 모습으로 비교적 평온해 보였던 건 단순하게 생각하기 덕분이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고민하는 많은 것들은 지극히 단순한 답을 품고 있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이 50을 넘기니 마음이 조급했다. 살아온 세월보다 남은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니 모든 시간이 아쉽고 애틋했다. 물건을 살 때뿐만 아니라 일상 모든 것에서 가성비를 따졌다. 이 시간에 이걸 하는 게 맞나? 이 사람을 만나는 게 나에게 도움이 되나?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오늘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벌써 해가 지네. 이 책 다 읽고 싶은데 수업 준비도 해야 하고... 아, 바쁘다 바빠. 난 언제까지 이렇게 100m 달리기 하는 사람처럼 헉헉대야 하는 거? 이렇게 나를 채근하다가 결국 번아웃! 시간이 아깝다고 너무 힘을 주고 살았다. 한 순간도 가벼이 넘기고 싶지 않아 나를 볶아댔다. 무엇에 쫓긴 사람처럼 급하고 항상 짐을 짊어진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글을 쓸만한 마음도 태도도 아니었다. 


 조금 힘을 빼고 적당히 가벼워지기로 했다.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이 따라주는 만큼 움직여보기로 한다.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따지지 말고. 특히 글쓰기에 대해 좀 너그러워지기로 했다.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읽고, 느긋하게 일상을 즐기면서 쓰고 싶은 것들이 내 안에 고일 때까지 기다려보면 좋겠다 싶다. 우선 좋은 마음을 품고 좋은 일상을 꾸려가며 좋은 사람이 되어야 좋은 생각이 나고 좋은 글도 쓸 수 있을 거라고 나를 설득하는 중이다.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이렇게 길게 하고 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변명을 구차하게 늘어놓은 것처럼 살짝 부끄럽다. 아무튼, 우선은 내가 괜찮아져야겠다. 글로 나를 표현하고 드러내는 것보다 내 안의 나를 단단하게 다지는 게 지금은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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