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과 9월의 경계에서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
8월 31일, 8월의 끝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여름의 끝이기도 하다. 나도 오늘은 끝내야겠다. 그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대고 있었다. 갑자기 길을 잃은 사람처럼 앞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서성이다가 그대로 주저앉아 아이처럼 울기만 했다. 직업인으로 해야 할 일, 챙겨야 할 가족, 건강과 다이어트, 읽기와 쓰기 등 내 일상에 여러 개의 목표를 적어놓은 이정표를 세워놓고 어디로 먼저 가야할지, 무엇이 더 중요한지 따지다가 균형을 찾지 못하고 와르르 허물어진 것 같다.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쓰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기특했지만 오래 지속할 수 없는 무리한 스케줄로 얼마 못가 지치고 만 것이다.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다고 자신했고, 50이 넘은 몸을 살피지 않았고, 내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오만하게 굴었다.
나의 문제를 인정해야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문제점을 드러낼 수도 있고, 옳다고 여겼던 방법이 지날수록 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이었다는 걸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고집을 부렸던 것 같다.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그냥 가다보면 길이 나올 거라고 더 속도를 내서 차를 몰았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할지를 가늠하고 그것이 나다움인 양 착각했다. 잘 살고 있다고 자신에게 응원하고 이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스스로 타협하고 대충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 대충은 여기까지가 한계다. 제대로 따져묻지 않고, 자세히 관찰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렇게 슬럼프라는 수렁에 쉽게 빠져버린 것이다.
그동안 잘 자지 못했다. 긴 시간 누워 있어도 꿈을 꾸느라 몸이 피곤해질 지경이었다. 꿈속에서도 나는 다양한 모습으로 곳곳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하루 일과를 끝낸 사람처럼 지치고 허기졌다. 그래서 아침 산책을 거르거나 운동을 미루면서 게으름을 피우고 허기를 채우느라 허겁지겁 먹기 바빴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잠도 편하지 않고 꿈마저도 평온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나가 무너지니 다른 것들도 차례차례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내 생활이 그랬다. 안 좋은 상태의 나를 직시하는 게 두려워서 먹고 마시고 그냥 잠을 청했다. 점점 움직이는 게 귀찮아졌다. 책에도 마음을 붙이지 못하고 이 책을 들췄다 저 책을 훑었다 결국 한 권의 책도 마음에 제대로 담지 못했다. 글은 어지러운 내 마음을 그대로 담아낸 듯 하나의 주제를 갖지 못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횡설수설했다.
작은 사람이었다. 계획했던 하나가 틀어지면 하루 무너진 듯 호들갑을 떨었다. 잘 되던 일이 성과를 내지 못하면 조급해져서 안절부절했다. 가까운 사람들의 표정 하나에 신경쓰고 말투 하나에 마음을 쓰다 혼자서 상처 받고 어쩔 줄 몰라했다. 모든 일이 계획했던 대로만 진행될 수 없고, 일에는 부침이 있을 수 있고, 인간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는 걸 알 만큼 나이를 먹었지만, 내 마음을 살피지 않은 어느 틈에 다시 어리고 어리석은 내가 되어버렸다. 몸과 마음은 꼼꼼하게 체크하지 않으면 작은 틈이 벌어지고 그 틈으로 물이 새다가 허물어질 지경까지 이를 수 있다. 이걸 놓쳤다. 잘 지어놨으니 앞으로 쭉 괜찮을 거라고 방심하고 함부로 다뤘다. 지친 몸과 어지러운 마음이 나에게 S.O.S를 보낸 것이다. 나 좀 봐 달라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물이 새고 있으니 좀 막아 달라고 말이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제처럼은 안 되겠다.
오늘은 어제와는 다른 하루를 살기로 한다. 끈적끈적하고 꿉꿉했던 여름을 보내고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살랑살랑 바람이 부는 가을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겠다. 하루만에 좋지 않았던 걸 좋은 상태로 완벽하게 돌려놓을 순 없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하면 좋은 기운이 내 몸으로 내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 아침엔 어제는 못한 아침 산책을 다녀왔다. 그동안 먹고 마셔서 포화 상태가 된 위장에 휴식을 주기 위해 오전은 단식하고 11시 운동을 가기로 예약했다. 노트북 앞에 앉아 오늘의 기분을, 앞으로의 계획을 쓴다. 그리고 어제까지의 나와 단절을 선언한다. 이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쓰고 있는 내 얼굴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진다. 겉으로 보이는 나는 달라진 게 없지만 분명 어제의 내가 아니다. 이렇게 8월을 끝내고 9월을 맞이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