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Dec 13. 2023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결혼 20주년, 22주년, 그리고 25주년...

함께 20년을 살았다     

가벼운 삶을 살고자 했던 여자와 무거운 삶을 묵묵히 견뎌내던 남자가 만났다.

주변에선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자유롭고 싶었던 여자는 자신의 방황을 기다려준, 표정없던 남자와 결혼했다.

둘은 가난했지만 몸은 건강했고 다행히 착한 사람들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작은 방에서 남자의 부모, 동생과 기꺼이 한 가족이 되었다.

그 작은 방에 식구가 하나 더 생겼다.

넓은 집으로 옮겨 가기 전 어머니가 갑자기 떠나셨다.

아버님 작은 집에 홀로 남고 남자와 여자는 네 식구가 되어 큰 집으로 옮겼다.

남자에게서 여자의 마음이 멀어진 틈에 아버지도 떠났다.

네 식구는 결국 작은 방이 있는 작은 집으로 돌아왔다.

20년의 세월 속엔 이별과 만남이 있었다.

공식처럼 이별은 슬펐고 만남은 기뻤다.

그 시간동안 여자는 단 한 번도 가벼울 수 없었다.

결혼이란, 가족이란 한없이 무겁기만 한 것이었다.

다행히 여자에겐 그 무게를 견뎌낼 만한 나이테가 생겼다.

날개 달린 옷을 감추는 대신 변함없는 산처럼 여자의 손을 잡아 준 남자 덕분이다.

표정 없던 남자는 사는 동안 웃음도 말도 많아졌다.

서로를 지켜보며 울고 웃었던 20년.

철없던 여자와 서툴렀던 남자가 중년이 되었다.

사람들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란다.

이만하면 잘 살았다.

우리 부부의 결혼 20주년을 찡한 맘으로 축하한다.     

2018년 11월 8일 결혼 20주년 새벽에...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주용아"

새벽녘 잠깐 잠에서 깬 남편이 평소와는 다른 느낌으로 내 이름을 나직이 불렀다. 가슴이 철렁했다. 한참을 대답도 못 하고 그냥 누워 있는데 남편도 내 이름만 불러놓고 그 다음 말이 없다.

"왜...?"

남편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두려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하니 듣긴 들어야 했다.

"우리 잘 살고 있는 걸까?"

'그럼!' 하고 밝은 목소리로 명쾌하게 대답해주면 좋으련만 선뜻 그렇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남편의 불안한 마음을 나라도 위로하고 진정시켜 주면 좋겠는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지금 괜찮은 길로 가고 있는 건지… 남편과 나, 우리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어제 친구를 만나 과음한 남편에게 누룽지 한 그릇 끓여주고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 세상, 우리 그냥 웃으며 삽시다!"하고 노인네처럼 말해 버렸다. 

함께 산 지 20년이 훌쩍 지나버렸다. 연애하고 결혼할 때 남편과 나는 지금의 우리를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도 지금보다는 훨씬 여유롭고 편안한 중년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열심히 살긴 살았는데 뿌듯함보다는 허무함이 더 크다. 

나이는 먹었고 체력은 달리고 가진 건 별로 없다. 그래도 가족이 재산이고 큰힘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가끔은 가족이 짐이고 부담이다. 남편도 내 맘 같겠지. 어깨가 처진 남편이 오늘따라 무척이나 안쓰럽다. 

"우리 앞으로도 잘 살아 봅시다!"


2020년 11월 8일 결혼 22주년에...




시간이 겁날 정도로 빨리 지나간다. 박완서 작가는『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그나저나 시간은 왜 이렇게 빨리 가지. 고통의 기억뿐 아니라 기쁨의 기억까지 신속하게 지우면서. 나 좀 살려줘,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고 싶게 시간은 잘도 가는구나. (p.156)'라고 호소했다. 나이 80를 바라보는 이의 말이다. 나는 겨우 나이 50을 넘겼는데 하루가 너무 어이없이 지나가고, 일주일 한 달이 몇 가지의 기억만을 남긴 채 내달리고, 어느새 2023년 일 년이 저물어가는 것에 겁을 먹고 있다. 남편과 나의 남은 삶이 약 30년 정도라고 생각하면 지난온 세월이 야속하고 남은 시간이 너무 짧다. 50년을 살아보니 30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결혼 20주년, 22주년, 그리고 올해 결혼 25주년이 되었고 우리의 결혼 생활은 속절없이 시간에 얹혀 흐르고 있다. 


출근할 때마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퇴근해서 다음날 아침까지 너무 짧은 휴식 시간을 아쉬워하는 남편을 보며 이 사람도 많이 지쳤구나 싶어 안쓰럽다. 가난한 집의 장남으로 나이보다 철이 일찍 들었고, 20대를 즐기지도 못하고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두 아들의 아버지가 되어 가장으로서의 무거운 삶을 20년 넘게 살아내고 있다. 들쑥날쑥 감정 기복 심한 여자 곁에서 산처럼 한결같은 남자였고, 아들들에게 권위를 강요하지 않는 자상한 아빠였다. 남편의 마음보다는 내 마음을 살피기에 급급했던 세월이었다. 내편이 되어주려고 부던히 애쓰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오랜 시간 이 사람을 남편으로만 여기고 내 안으로 들여놓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많이 외로웠겠다 싶다. 


결혼 생활 20년이 넘어서야 나는 내편이 된 남편을 제대로 보게 되었다. 전에는 일하는 여자로 살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가족을 세심하게 살피지 못했다. 두 아들 챙기는 것도 힘들어하며 남편은 항상 뒷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보다는 남편에게 마음이 더 쓰인다. 스무 살이 넘은 아들들은 각자 자기 길을 가느라 바쁠 테고 우리 부부는 그래도 배우자밖에 없다며 내 품을 떠난 자식들에 대한 서운함을 달래게 될 터이다. 그리 길지 않을 우리 부부의 남은 시간, 서로의 편이 되어주어 함께 간다면 덜 외롭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12월 달력을 보며 내가 좋아하는 노래 성시경의 "두 사람"을 들으며 가사를 되뇐다.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우리 두 사람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리"

"우리 두 사람 저 거친 세월을 지나가리"


지친 하루가 가고
달빛 아래 두 사람
하나의 그림자
눈 감으면
잡힐 듯 아련한 행복이
아직 저기 있는데
상처 입은 마음은
너의 꿈마저
그늘을 드리워도
기억해줘
아프도록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걸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주리
너와 함께 걸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보이지 않을 때
기억할게
너 하나만으로
눈이 부시던
그 날의 세상을
여전히 서툴고
또 부족하지만
언제까지나
네 곁에 있을게
캄캄한 밤
길을 잃고 헤매도
우리 두 사람
서로의 등불이 되어주리
먼 훗날 무지개 저 너머에
우리가 찾던 꿈
거기 없다 해도
그대와 나 함께 보내는
지금 이 시간들이
내겐 그보다 더 소중한 걸
때로는 이 길이
멀게만 보여도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흘러도
모든 일이
추억이 될 때까지
우리 두 사람
서로의 쉴 곳이 되어
서툴고
또 부족하지만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게
모진 바람
또 다시 불어와도
우리 두 사람
저 거친 세월을 지나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