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프가 돈 버니까 좋네!"
20대에는 나를 위해 돈을 벌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 하고, 사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사려면 당연히 내 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열다섯 살에 마주하게 된 가난은 차림새의 초라함으로 기가 죽게 하더니 내 자존심마저도 갉아먹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없는 티를 안 내려고 무던히 애를 썼는데 없어본 사람만이 아는 가난에 대한 감성은 내 안에 깊게 배었다. 가난했던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할 수만 있다면 하루 빨리 돈을 벌어 나의 초라한 과거는 생각나지도 않을 만큼 나를 꾸미고 싶었다. 그때는 마음만 먹으면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고, 돈으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어리석게도.
결혼하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아니, 시부모님의 집에 얹혀 살면서 일하는 며느리로서 당당하게 이해받기 위해 일에 더 욕심을 냈다. 생활비도 턱턱 내고 가끔 시댁 식구들 모시고 외식도 하고 어머님, 아버님께 용돈이나 선물도 드리며 내 존재감을 내뿜었다. 아직 안정된 직장에 자리잡지 못한 남편에게 내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가장의 노릇을 자처했다. 친정 엄마는 막내딸이 없는 집에 가서 작살나게 고생한다고 투덜댔지만 당시 우리 집도 만만치 않게 없는 집이었다는 걸 엄마는 가끔씩 잊는 듯했다. 풍족하지 않은 시댁이니 돈 버는 며느리가 대우 받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우리 며느리 없는 집에 와서 고생한다고 미안해하시며 날 살뜰히 챙기셨다. 덕분에 나는 고부 갈등이라는 걸 모르고, 작은 집에서 6년 넘게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돌이켜보면 나만을 위해 돈을 벌었던 때보다 가족을 위해 일할 때 훨씬 더 의욕적이고 당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50대가 된 나는 나를 위한 소비는 줄이고 가족을 위해 돈을 쓰는 일에 더 열정적이다. 내가 번 돈으로 남편과 나의 노후를 설계하고 작은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고 휴가 나온 아들에게 용돈을 챙겨주고 거하게 외식비를 내려고 돈을 모은다. 백화점에는 발길을 뚝 끊었다. 가격표에 붙은 0을 세다가 기겁해서 아울렛 매장에 가서 꼭 필요한 것만 사거나 살이 빠진 큰언니가 못입겠다고 준 옷을 걸친다. 한 계절 금방 가는데 올해만 참아보자고 안 사고 넘어가기도 한다. 정말 돈이 없어서 못 사는 것과 돈은 벌지만 더 큰 목표를 위해 잠깐의 욕심을 버리고 안 사고 견디는 건 차원이 다르다. 외양은 소박하지만 자존감은 높아지고 속은 든든하다.
내가 번 돈으로 무언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설렌다. 1년 만기가 된 예금과 적금을 딱 하루 가지고 있다가 목돈을 만들어 다시 정기 예금 통장에 넣고 새 적금 통장을 개설했다. 그리고 이자로는 남편에게 거하게 한 턱 쐈다. 고깃집 조명 아래서 남편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와이프가 돈 버니까 좋네!"하며 웃는데 그게 뭐라고 "나 돈 버는 여자야!"라고 으스대며 기분 좋게 거들먹거린다. 그리고 결심한다. 내년엔 더 좋은 식당에 가서 이자턱 쏴야지, 그리고 5년 후엔 꼭 남편과 제주도 가서 최소한 1년은 살아봐야지. 돈이 소비가 아니라 꿈이 되는 순간 돈은 더 이상 세속적인 자본주의 산물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고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 할 이유가 된다.
정혜윤의 『아무튼, 메모』의 마지막 부분에서 "내 사랑이 너를 지켜줬으면 좋겠다."라는 네루다의 시구를 읽었다. 내 사랑이 내 남편을, 큰아들을, 작은아들을 지켜줬으면 좋겠다. 하나 더, 우리 큰언니의 병도 낫게 할 수 있다면 내가 가진 사랑을 아낌없이 나눌 수 있다. 나만 생각하기에 급급했던 젊은 날을 지나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고 싶은, 넉넉한 중년이 되었다. 어제는 내 돈으로 오래된 우리 집의 문을 모두 교체하고 문틀까지 말끔하게 공사를 마쳤다. 집이 너무 깔끔해졌다며 함박 웃음을 웃는 남편을 보니 이번에도 돈 잘 썼다 싶다. 공사 끝나고 혼자 집 치우느라 몸살은 났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