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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Nov 29. 2023

나는 남편의 월급을 모른다!

통장은 따로, 마음은 하나! 우리 부부의 '따로 또 같이' 경제 생활

적금을 탔다. 정기 적금에 정기 예금, 자유적립 적금까지 1년 만기가 된 3개의 통장을 가지고 아침 일찍 은행으로 갔다. 은행에 들어서는 나는 대출 받으러 온 사람보다 분명히 당당했을 것이다. 1년 동안 열심히 일하고, 소비를 줄이고, 욕심부리지 않고, 만족하고 감사하며 절제한 덕분에 '만기일'을 맞이하게 되었다. 몇 번의 사인을 하고, 또 몇 번 비밀번호를 누르고 수표와 현금으로 돈을 받았다. 다시 통장으로 들어갈 돈이지만 하루쯤은 내가 품고 내돈이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은행 다녀왔다! 돈 받았어!" 수고했다고, 돈 갖고 돌아다니지 말고 어서 집으로 가라고, 저녁에 보자고 말하는 남편의 목소리가 듣기 좋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두둑한 지갑이 몸까지 데우는 듯 찬바람에도 끄떡없다. 


혼자 영화 <너와 나>를 보고, 재수생 아들 학원에서 상담을 하고, 저녁엔 남편에게 이자턱으로 거하게 한잔 쐈다. 영화는 하루종일 눈물을 달고 있었다는 지인들의 평가로 너무 큰 기대를 해서인지 그보다는 좀 작은 감흥이었지만 충분히 만족했다. 아들의 국어 영역 등급이 좋지 않아 걱정했는데 다른 아이들에 비해 괜찮은 성적이라는 학원 선생님의 말씀에 불안했던 마음이 좀 가셨다. 엄마로서 마지막까지 우리 아들 응원하고 좋은 결과 나오기를 간절히 비는 수밖에 없겠다고 간단히 정리가 됐다. 평소에 먹던 삼겹살 대신 소갈비살과 소막창을 안주로 남편과 축하 파티를 했다. 내 지갑에서 돈이 나가는데 기분이 좋다. 무엇을 해도 좋은 '만기일'이다. 


연애할 때부터 나는 일하는 여자였고 23년 일하고 3년 남짓 쉰 기간을 제하면 지금까지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다. 결혼할 때 우리는 각자 천만 원씩 내서 결혼식을 치르고 신혼 여행을 다녀오고 남편 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다. 그때 남은 돈은 저축했다가 시동생 살림 차리는 데 보탰던 것 같다. 아무튼 우리는 부부가 된 그때부터 각자 벌고 각자 알아서 썼다. 많든 적든 나는 항상 돈을 버는 사람이었으니 남편의 돈을 탐내지 않았고 부자가 되려면 내가 더 많이 벌어야 한다고만 생각했다. 잘 벌 때도 있었지만 학원 운영할 때 돈으로 힘든 적도 있었다. 그래도 남편에게 손 벌리는 건 하고 싶지 않았고 빚을 져도 내가 벌어 갚아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시부모님 모시고 두 아들 낳고 새 아파트 분양받아 이사까지 하며 어찌어찌 살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린 두둑한 통장은 갖지 못했고 시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으로 우리 네 식구가 돌아와 살고 있다.


과거를 후회하고 만일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는 건 부질없다. 남편이 벌어다 준 돈으로 생활비 아껴가며 전업 주부로 살았다면 나의 결혼 생활이 좀 편했을까, 서로가 번 돈을 공유하며 쥐꼬리만한 월급에 대해 바가지도 긁고 돈 좀 아껴쓰라고 잔소리도 좀 하면서 살았더라면 지금 우리 재산이 좀 늘었으려나, 소박한 남편 곁에서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을 줄이기보다는 재테크에라도 눈을 돌렸다면 우리 네 식구 좀 큰 평수의 좋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과거의 어느 날 잠시 했을진 모르지만, 지금은 전혀 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 부부가 주어진 상황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열심히 살아왔다는 걸 부정하고 싶지 않다. 


나는 아직까지 남편의 월급을 모른다. 우리는 지금도 통장을 따로 갖고 각자의 벌이를 알아서 관리한다. 큰돈이 들어가는 일은 서로 상의해서 돈을 내고, 큰아들 교육비는 남편이 작은아들 교육비는 내가 이런 식으로 배분을 해서 생활한다.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왔으니 이제 와서 바꾸는 것도 어색하고, 오랜 결혼 생활 덕분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쌓이고 같은 목표가 생겨서 우리 부부의 '따로 또 같이' 경제 생활은 별 문제가 없다. 각자 통장이 따로 있으니 돈을 어디에다 얼마를 쓰는지 서로 모르고 관여할 수도 없다. 서로를 믿으면 무척이나 자유로운 시스템이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취미나 취향은 다를 수 있는데 한 통장에서 쓰임이 뻔히 보이게 되면 아무래도 서로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우린 그럴 염려가 없다. 대신 함께 집안 살림을 꾸려가야 하니 책임도 나눠 갖는다. 


통장은 따로지만 마음은 하나다. 두 아들에 대한 교육 철학이 같아 자식의 교육이나 진로에 대해 우리는 갈등이 없다. 이름난 대학, 연봉 높은 직장을 고집하기 보다는 아들들이 자기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스트레스 덜 받고 보람과 성취감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원래부터 소박한 남편과 나이가 들면서 미니멀리즘의 가치를 좋아하게 된 나는 삶의 철학도 같아서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 데에도 이견이 없다. 5년 후 조용한 지방에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해보자는 꿈을 함께 꾸며 서로의 성실한 일상을 응원한다. 식성도 비슷해서 함께 먹고 마시며 하하 호호 웃고 떠들기를 좋아한다. 특히 어제처럼 좋은 일로 누군가가 한턱 쏘는 날이면 그날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최고조에 이른다. 내 남편이라면 내 통장의 돈은 물론 내 마음까지 기꺼이 나눠줄 수 있다. 기쁨을 함께 나누고 슬픔과 책임을 함께 짊어질 누군가가 곁에 있다는 건 인생 최고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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