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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27. 2023

술 좀 마시는 아내

아내의 술친구가 되어주는 쿨한 남편

어제는 학원 송년회가 있었다. 평소에 내가 절대 가지 않는 호텔 뷔페에서 1인당 10만원이 넘는 저녁을 먹었다. 8시가 다 된 시간에 시작한 모임이라 2차까지 마치고 나오니 새벽 2시가 다 되었다. 집 방향이 같은 실장님과 함께 택시를 탔는데 우리 둘째아들이 걱정스런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엄마, 어디야?" 평소 내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엄마인 내가 아들에게서 들으니 기분이 묘한데 좋았다. 다행히 술이 취하지 않은 상태라 "거의 다 왔어."라고 멀쩡한 목소리로 아들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호텔 뷔페에서 와인 3잔과 맥주 1캔을 마시고 2차에서 소주를 2병 이상 마셨는데도 술자리가 길어서인지 술에 많이 취하지 않았다. 아마 평소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아니고 직장 사람들이니 나도 모르게 조심스러운 긴장감을 유지한 덕분일 것이다. 아, 또 원장님을 포함해 12명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그 중 내가 유일한 50대이다. 가장 연장자이니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썼을 것이다. 아무튼 나만 논술쌤이고 다른 분들은 국어쌤들이라 좀 뻘쭘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에 비하면 좋은 분위기로 송년회를 마쳤다.


나는 어디가도 술 좀 마시는 사람으로 통한다. 실제로 술을 좋아하기도 하고 술자리에서 굳이 못 마시는 척 내숭을 떨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에 내 주량껏 마시는 편이다. 경직됐던 분위기도 알코올이 곁들여지면 유들유들해지고, MBTI가 I인 사람도 술 한 잔 들어가면 E처럼 잘 어울리기도 한다. 나란 사람도 20대에는 술에 기대어 짝사랑하던 선배에게 고백도 해봤고, 30대에는 젊은 여자 원장이지만 남자만큼 주량이 되는 사람으로 짱 노릇을 거뜬히 해냈다. 40대에는 남편과의 거리감을 혼술로 달랜 적도 있지만 50대가 되어서는 남편과 가장 가까운 술친구로 자주 술잔을 부딪친다. 


남편은 내게 술에 대해 잔소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본인도 술을 마시니까 나에게 뭐라 할 순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다는 아닌 것 같다. 남편 자신은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에 들어와도 괜찮지만 아내가 그런 꼴로 밤늦게 들어오는 걸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여자들이 꽤 많다. 만약 내 남편이 그랬다면, 그러니까 "여자가 말이야, 술에 취해서 이 시간에 기어 들어오고 말이야. 애들이 뭐 보고 배우겠어?"라며 삿대질을 하고 혀를 찬다면 난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해보니 좀 끔찍하다. 당연히 싸웠을 테고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부부는 좋은 술친구는커녕 따로 다른 사람들과 술집을 전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애들이 배우면 안 되는 부모의 모습 아닌가?


술 좀 마시는 아내를 쿨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술친구가 되어주는 우리 남편이 나는 좋다. 아주 가끔 너무 많이 취해서 들어오면 서로를 걱정하기는 하지만 말로 술이 확 깨게 하는, 그런 짓은 서로 하지 않는다. 술도 마셔본 사람이 술 마신 사람의 심정이나 몸 상태를 아는 법이다. 술로 후회하는 건 철저히 본인의 몫이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술 마신 당사자가 가장 먼저 한다. 굳이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면서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남편은 내가 과음을 한 다음 날이면 아침으로 콩나물국밥을 포장해 오고 점심엔 시원한 열무냉면을 함께 먹어준다. 그런 다정한 남편 덕분에 나는 두 아들의 음주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끓여 속을 풀어주는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어제 잠들 때만 해도 속이 괜찮았는데 오늘 오전엔 숙취로 좀 힘들었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큰아들도 어제 친구들과 술 한 잔 거하게 한 것 같아 콩나물국밥을 포장해와 함께 해장했다. 남편은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그냥 푹 쉬어"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출근했다. 술로 속은 좀 쓰리지만 마음은 푸근하고 여유롭다. 평소 센스 없는 남편이라고 놀렸는데 술이 살짝 덜 깬 상태로 글을 쓰다보니 내 남편 자랑이 돼버렸다. 


아무튼 글을 마무리하며 새해에는 남편과 함께 술 좀 줄이고 건강에 신경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남편과 오래오래 술친구 하려면 건강부터 챙겨야지. 이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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