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술친구가 되어주는 쿨한 남편
남편은 내게 술에 대해 잔소리를 한 적이 거의 없다. 본인도 술을 마시니까 나에게 뭐라 할 순 없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유가 다는 아닌 것 같다. 남편 자신은 고주망태가 되어 새벽에 들어와도 괜찮지만 아내가 그런 꼴로 밤늦게 들어오는 걸 남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소연하는 여자들이 꽤 많다. 만약 내 남편이 그랬다면, 그러니까 "여자가 말이야, 술에 취해서 이 시간에 기어 들어오고 말이야. 애들이 뭐 보고 배우겠어?"라며 삿대질을 하고 혀를 찬다면 난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해보니 좀 끔찍하다. 당연히 싸웠을 테고 남편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는 무너졌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 부부는 좋은 술친구는커녕 따로 다른 사람들과 술집을 전전했을 지도 모른다. 그거야말로 애들이 배우면 안 되는 부모의 모습 아닌가?
술 좀 마시는 아내를 쿨하게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편한 술친구가 되어주는 우리 남편이 나는 좋다. 아주 가끔 너무 많이 취해서 들어오면 서로를 걱정하기는 하지만 말로 술이 확 깨게 하는, 그런 짓은 서로 하지 않는다. 술도 마셔본 사람이 술 마신 사람의 심정이나 몸 상태를 아는 법이다. 술로 후회하는 건 철저히 본인의 몫이고 다음부터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술 마신 당사자가 가장 먼저 한다. 굳이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면서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남편은 내가 과음을 한 다음 날이면 아침으로 콩나물국밥을 포장해 오고 점심엔 시원한 열무냉면을 함께 먹어준다. 그런 다정한 남편 덕분에 나는 두 아들의 음주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콩나물국이나 북엇국을 끓여 속을 풀어주는 멋진 엄마가 될 수 있었다.
어제 잠들 때만 해도 속이 괜찮았는데 오늘 오전엔 숙취로 좀 힘들었다. 군대에서 휴가나온 큰아들도 어제 친구들과 술 한 잔 거하게 한 것 같아 콩나물국밥을 포장해와 함께 해장했다. 남편은 "오늘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집에서 그냥 푹 쉬어"라고 한 마디 툭 던지고 출근했다. 술로 속은 좀 쓰리지만 마음은 푸근하고 여유롭다. 평소 센스 없는 남편이라고 놀렸는데 술이 살짝 덜 깬 상태로 글을 쓰다보니 내 남편 자랑이 돼버렸다.
아무튼 글을 마무리하며 새해에는 남편과 함께 술 좀 줄이고 건강에 신경써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남편과 오래오래 술친구 하려면 건강부터 챙겨야지. 이게 말이 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