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TVING에서 <이재, 곧 죽습니다>라는 드라마를 보고 있다. 일찍 남편을 잃고 혼자 아들 하나를 키운 엄마가 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자살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좋은 대학 나오고 착한 애인도 있었지만 아들은 계속 취업에 실패하면서 자존감이 바닥을 쳤고, 돈에 쪼들려 옥탑방에서도 쫓겨나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만다. 엄마는 혼자 남아 남은 인생을 눈물과 회한으로 살아낸다. 자식을 앞세운 엄마라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 청소일을 하던 중에 나폴레옹이 말했다는 이 문장을 마주했다. 엄마는 오열을 한다.
세상에... 나폴레옹은 엄마가 아니라서 그 무책임하고도 엄청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나 보다. 그렇잖아도 자식 걱정에 살얼음 딛는 기분으로 사는 엄마에게 자식의 운명까지 책임지라면 도대체 어쩌자는 건가. 아빠는 쏙 빠지고 엄마에게 이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건 너무했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개척하는 거라는 씩씩한 명언도 있지 않은가. 자살로 세상을 등진 아들 때문에 눈물 마를 날 없는 어미 앞에 자식 운명을 엄마가 만든다는 말은 상처에 소금 뿌리는 것처럼 잔인하다.
내일 우리 재수생 둘째아들이 체육 실기를 보러 간다. 정시 전형이 시작됐다. 가군 실기를 시작으로 나군, 다군, 그리고 불안해서 원서를 쓰기로 한 전문대까지 1월에 네 번의 실기를 치러야 한다. 작년에 한 번 겪어봤으니 덜 긴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다. 큰아들부터 작은아들까지 대학 입시를 네 번 치르는데 횟수가 더할수록 떨리는 마음이 더하면 더했지 조금도 덜하지 않다. 당사자가 아닌 나도 이런데 작년에 이어 시험장에 또 들어가야 하는 아들의 마음은 어떨지... 엄마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아들 앞에서는 담담한 척 연기하고 있지만 내일 아들을 시험장까지 데려다주고 출근해야 하는 엄마 마음은 아들을 사지에 모는 것처럼 불안하고 안타깝다. 실기 시험 날짜가 발표된 때부터 속 시끄러위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자식 운명이 엄마 손에 달렸다는 말을 들으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하지 뭔가. 그동안 내가 잘못한 일이 내 아들의 중요한 시기에 나쁜 영향이라도 미치면 어떡하나 겁이 났다. 정말 그러면 안되는데말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모든 엄마의 마음이 나와 같겠지. 어떤 어미는 곁에 자식이 있기만 해도 좋겠다고 가슴을 치고 있을 수도 있고, 어떤 어미는 대학 합격이나 성공은 차치하고 건강하기만 해도 소원이 없겠다며 아픈 자식의 손을 꼭 잡고 있을 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 걱정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꼭 나폴레옹의 말이 아니더라도 내 뱃속에서 나왔으니 탯줄로 이어진 기막힌 인연이 어떻게 가벼울 수 있겠는가. 탯줄은 끊었어도 자식의 아픔이 내 아픔으로, 자식의 고통이 바로 내 고통으로 연결된다.
앞으로도 나와 남편에게는 두 아들의 진로 문제, 직장 생활, 이성 교제와 결혼, 그리고 자식들의 육아 문제까지 계속 걱정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의 건강만이라도 보장된다면 좋으련만 그것도 알 수 없으니 이렇게 보면 인생이란 게 뭐 이런가 싶다. 걱정과 고난은 뻔하고 기쁨과 즐거움은 아득하고 흐릿하다. 그래도 어쩌겠나. 부모가 버티지 못하면 자식은 어디에 기댈 것인가. 자식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 우리 부부는 더욱 서로를 챙기고 걱정한다.자식은 몰라도 부모가 얼마나 안쓰럽고 가여운 존재인지를 우린 아니까.
아무튼 오늘은 우리 부부의 마음은잠시 접어두고 우주의 온 기운을 모아 우리 둘째아들을 응원한다. 재수라는 부담감 내려놓고 실기 시험장에서 실력 발휘 제대로 하고 오기를,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다고 쿨하게 말할 수 있기를, 어떤 결과도 부드럽게 받아들이고 엄마아빠에게 편안하게 기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은 우리 아들 보신할 만한 메뉴로 저녁상 거하게 차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