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Jan 17. 2024

두 아들의 입시를 끝내는 마음

전역을 앞둔 큰아들과 정시 실기를 치르고 있는 재수생 작은아들.

1월은 재수생 둘째아들의 정시 실기 시험 기간이다. 지난 주에 가군 실기를 치렀고 내일과 모레는 나군, 전문대 실기가 각각 예정되어 있다. 다음 주 다군 실기를 끝으로 우리 둘째의 입시는 끝이 날 것이다. 두 아들 다 재수를 했으니 올해 네 번째 대학 입시를 치르는 셈이다. 작년 이맘때 다군 실기 대학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그때의 심정을 글로 남겼었다.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에 대해 좀더 간절해졌다는 것 말고는 지금의 내 맘과 다르지 않다. 오늘은 큰아들까지 군대에서 마지막 휴가를 나오는 날이라 마음이 뒤숭숭해서 글을 쓰기가 어렵다. 작년에 썼던 글로 대신한다.  




요즘 넷플릭스로 전도연이 나오는 드라마 <일타 스캔들>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엄마들의 치열한 경쟁이 씁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자식이 공부를 잘 했다면 나도 저런 욕심을 부렸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들이 둘이다. 두 아들은 서울도 아닌 인천에서, 외고나 자사고도 아닌 일반고에서, 내신 중심의 수시 전형이 아니라 수능 중심 정시로, 일반 학과가 아니라 예체능 학과를 지원했다. 공부에 큰 뜻이 없고, 엉덩이 힘이 그리 좋지 않은 아들들이라 일찌감치 성적에 대한 부담감은 내려놓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인 나는 대학에 대해 그리 간절하지 않은 편이고, 두 아들의 성적보다는 나와의 관계, 가족의 화목이 더 중요했다. 수학을 내려놓고 목표 등급의 수준도 낮춰놓은 상태로 입시를 준비했지만 그것마저도 쉽지는 않았다. 전국에 우리 아들 같은 아이들은 많을 테니까 말이다.


큰아들은 미술을 선택해서 재수할 때까지 4년 가까이 미술 학원을 다녔다. 스터디 카페에서 인강을 들으며 공부했지만 입시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게다가 미술이 아닌 영화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젊은 날에 하는 모든 경험은 살아가는데 자산이 될 것이라 믿는 편이다. 그래서 그동안 쏟았던 시간과 비용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아들이 두 번의 입시 실패로 주저앉지 않기를 바랐다. 어떡하든 아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남편이 급하게 알아보고 면접을 보게 해서 방송예술 특성화 학교에 입학시켰다. 당시 아들에게는 어디라도 소속감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름난 대학은 아니지만 본인이 좋아하는 영화를 공부할 수 있는 곳이라 1년 동안 비교적 만족하며 다녔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큰아들은 어른이 되어갔다. 지금 우리 큰아들은 강원도에서 군 생활을 씩씩하게 해내고 있다.


작은아들은 코로나와 함께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3년 동안 교복을 입은 횟수가 열 번도 안 되는 것 같다. 거의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했고 친구들과도 많이 어울리지 못했다. 그렇게 집에만 있다보니 살이 엄청 쪘다. 입학 당시 구입했던 교복은 사이즈가 맞지 않아 입을 수도 없게 되었다. 고2가 되도록 자신의 진로를 정하지 못한 상태로 아들은 조금씩 무기력해져가는 듯했다. 운동을 좋아하고 표정이 밝았던 둘째아들이 달라져가는 게 안타까웠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스포츠 관련 학과로 진로를 정하고 체대 입시 학원에 등록했다. 작은아들은 초등학교 시절 유소년 야구단에 있었다. 초등 고학년 때에는 농구 대회에 나가 에이스로 주목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친구들에게 학교에서 축구를 제일 잘 하는 아이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운동을 좋아하는 아이다.


지금은 운동을 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스포츠 경기를 보고  분석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축구는 프리미어 리그까지 챙겨보고 모르는 선수가 없을 정도로 관심이 많다. 그러니 스포츠 관련 학과가 우리 아들에게 딱이기는 하다. 고2 2학기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아들은 체중을 20kg 이상 감량했다. 지금은 키 182cm의 아주 날씬하고 탄탄한 몸매가 되었다. 공부를 아주 잘 하지는 못하지만 학원에 다니지 않고 집에서 인강을 들으며 나름 최선을 다했다. 워낙 성실한 아이라 체대 입시 학원을 다니는 동안 거의 빠지지 않고 정말 열심히 운동했다. 작은아들의 입시 준비 과정을 보면서 입시 결과가 어떻든 우리 아들은 좋은 성품과 성실한 태도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지금 나는 작은아들이 실기를 보는 대학에 와있다. 오늘 정시 마지막인 다군 실기 시험 날이다. 아침 일찍 시험장에 가야 하는데 눈이 많이 온다는 예보로 불안해서 어젯밤 근처에 숙소를 잡고 미리 와서 1박을 했다. 나와 아들만 보내기가 마음이 안 놓였는지 남편도 회사 반가를 내고 함께 와 있다. 아들은 "갔다올게"라는 짧은 인사만 남기고 몸을 풀러 들어갔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 건 항상 애틋하다. 두 아들이 수능을 보러 들어갈 때도, 큰아들을 훈련소에 들여보낼 때도, 오늘처럼 실기 시험장에 들어가는 작은아들을 볼 때도... 엄마아빠 없이 홀로 세상과 싸울 아들들이 걱정되고 안쓰럽다. 


남편과 나는 4시간 넘게 차에서 기다려야 한다. 눈을 좋아하지만 이런 날 눈이 내리는 건 반갑지 않다. 아들이 시험 끝나고 집까지 무사히 가는 게 우선 걱정이 되고, 오후에 직장에 가야 하는 남편과 나의 출근길이 또 걱정이다. 사실은 날씨보다 우리 아들이 긴장하지 않고 실수 없이 시험을 잘 봐야할 텐데 하는 걱정이 훨씬 크다. 불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지금 이렇게 아들을 생각하며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꼭 대학에 들어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이 실망하고 방황할까봐 마음이 쓰인다. 어떤 결과에도 나는 아들 편에서 힘이 될 자신이 있지만 지금까지 애쓴 아들에게 아무런 보상이 없으면 서운할 것 같기는 하다. 차곡차곡 쌓이는 눈처럼 내 마음을 단단하게 꾹꾹 눌러 다진다. 아들 곁에서 언제나 의연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두 아들의 엄마로 대한민국에서 입시를 치렀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고 다시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다. 작은아들의 입시까지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들로 마음이 좀 복잡하다. 두 아들에게 성적이나 입시에 대한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했다. 그래서인지 성적이 아주 좋지는 않더라도 아들들은 비교적 나와의 소통이 자연스럽다. 지금까지 큰 갈등 한번 없이 엄마아빠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남편과 나는 우리 집의 이런 상황이나 분위기에 만족하는 편이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엄마로서 아들들이 좀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이끌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혹시라도 두 아들이 '공부 좀 더 시키지 그랬어?'라고 원망하는 건 아닐지... 지금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인데 아들들의 입시가 끝나가니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이제 두 아들이 모두 스무 살 넘은 성인이 되었다. 앞으로는 내가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이제 두 아들의 선택과 판단을 믿고 지켜보고 응원하는 수밖에 없다. 모든 걸 잘 가르치지는 못해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 아이들이지만 우리 두 아들이 좋은 사람으로, 현명한 선택을 하며, 지혜롭게 잘 살아낼 거라고 믿는다. 아들을 기다리며 송이송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고 있으니 아들들과 함께 보낸 시간들이 추억이 되고, 기쁨이 되고, 아쉬움이 되고, 고마움이 되어 내 마음에 소복소복 쌓이는 것 같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어디서 어떤 마음으로 오늘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2023. 1. 26. 둘째아들 실기 시험장 앞에서...




작년에 끝날 줄 알았던 아들의 입시가 1년 더 연장되었다. 재수 생각이 없다던 둘째까지 나중에 미련이 남을 것 같다며 1년만 더 해보겠다고 해서 올해 여기까지 왔다. 아들의 수능 점수는 약간 올랐는데 올해 체대 입시 수험생들이 전체적으로 수능 등급이 좋지 않은 편이라 아들은 작년에 비해 상위 대학에 지원했다. 불안감은 작년에 비해 두 배쯤 되는 것 같다. 올해까지 입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아들의 실망은 작년에 비해 더 클 것이고 나도 두 아들의 입시를 성공시키지 못한 엄마로 풀이 죽을 것만 같다. 하지만 생각을 고쳐먹고 또 힘을 낸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누군가에게는 길가의 돌멩이밖에 안 되는 장애물일 수도 있다.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암과 싸우고 있는 언니를 생각하면 생사가 걸려 있지 않은 문제는 한없이 사소하기만 하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도록 아들을 응원하고 결과에 담대할 수 있도록 나는 작년보다 더 마음 단련을 해야겠다. 


오늘은 휴가 나오는 우리 큰아들과 내일 실기 시험을 앞둔 작은아들까지, 우리 네 식구 오랜만에 완전체로 저녁을 먹는다. 큰아들은 전역 후 일상으로의 복귀와 자신의 진로에 대한 걱정이 마음 한 켠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 둘째는 남은 실기 시험과 입시 결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편치 않은 마음이겠지. 우리 부부는 장성한 두 아들을 앞에 두고 흐뭇하면서도 아직 불투명한 아들들의 진로와 미래에 대해 마음이 쓰일 것이다. 인생이란 게 이런 것인가 보다. 각자 짊어져야 할 짐이 있다. 아무리 가족이어도 대신 짊어질 수는 없다. 그 무게를 이겨내야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 우리 두 아들, 기나긴 인생의 길을 중심 잃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무거운 짐 잘 견뎌내기를, 남편과 나는 부모로서 지켜보고 응원하고 기도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다.  

이전 10화 자식들의 운명은 어미가 만든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