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ENFJ, 둘째아들은 ISTP
2년 전에 생애 처음으로 MBTI 검사를 해봤다. ENFJ란다. 분석 결과를 읽어보니 내 성격과 일치한 부분이 많아 신기했고 무엇보다 정의로운 사회 운동가라는 결과가 맘에 들었다. 하지만 그때뿐, 큰 의미를 두지 않았기에 금방 잊었고 그후로도 학생들이나 친구들이 MBTI가 뭐냐고 물으면 블로그 기록을 들춰서 대답할 정도로 네 개의 알파벳을 외우지도 못했다. 우리 가족은 이상하리 만치 그런 유행에 관심이 없다. 남편이나 나는 나이가 들어서 그렇다쳐도 스무 살 우리 둘째아들은 요즘 아이들인데도 MBTI 검사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해서 신기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저녁 먹는 자리에서 둘째아들이 친구들 성화에 검사를 해봤는데 ISTP라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와 정반대다. 아들과 내가 아주 다른 성격이라는 건 짐작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일치하는 게 없을까 싶어 좀 당황스러웠다.
나는 솔직히 첫째아들에 비해 둘째가 훨씬 편하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예민해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아들이었다. 숫기가 없어서 걱정했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자기 표현도 잘한다.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데 모범 사병으로까지 뽑힐 정도로 잘 적응해서 부모를 놀라게 했다. 큰아들은 아무 탈 없이 전역을 앞두고 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수십 번 변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맞았다. 큰아들은 이제 부모를 걱정시키지 않을 정도로 독립적인 어른이 되어가는 듯하다. 첫째는 성격상 둘째보다 나와 비슷한 부분이 많고, 아직 물어보진 않았지만 MBTI도 첫째와 나는 겹치는 부분이 분명 있을 터이다. 그런데도 난 첫째와 있을 때보다 나와 전혀 다른 둘째와 있을 때 더 말이 많아지고 마음이 풀어진다. 왜일까?
둘째아들은 좀 묘하다. 내가 잘 모르는 세상에 있는 사람 같다. 우리 식구 중에 키가 가장 큰데 표정이나 몸짓, 목소리는 가장 작다. 어린 시절부터 밖에서 있었던 일을 한 마디도 옮기지 않았다. 학교나 학원에서 있었던 일, 선생님이나 친구에 관해서 내가 물어보는 것 외에는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나와 소통이 안되냐면, 그건 또 아니다. 나와 함께 밥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고, 키가 180이 넘는 아이가 지금도 내 무릎을 베고 누워 애교를 떨기도 한다. TV 프로나 영화를 볼 때, 음악을 들을 때면 취향이 비슷하다고 느낀 적도 많다. 그런데도 둘째의 속을 잘 모르겠다.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고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묻고 잘 따르는 편이니 함께 있는 사람이 편하다. 그게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가끔은 저 속이 진짜 괜찮은 건가 궁금했다.
그래서인가 보다. 내 MBTI에 대해선 잘 외우지도 못할 정도로 무심했는데 둘째아들 것에는 자꾸 신경이 쓰였다. 엄마인 나와 정반대라니 자라면서 자신과 너무 다른 엄마 때문에 힘들진 않았을까 걱정도 됐다. 아무리 물어도 다 괜찮다고만 하고 자기 속내를 시원하게 드러내지 않는 둘째아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었다. ISTP를 검색하니 한국에서는 비교적 흔하지 않은 유형이란다. 종종 사람들에게 소시오패스로 오해받고 사이코패스로 혼동되기도 한다는데 좀 충격적이었다. 살짝 무표정한 얼굴과 귀차니즘 가득한 태도, 츤데레 같은 모습을 가졌다는 설명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는 참 다른 성향이다. 하지만 ISTP는 자신만의 세계가 있어서 이를 존중해 주는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점이 내가 둘째아들과 잘 지낼 수 있는 비결이었나보다. 나는 비교적 잔소리가 많지 않은 엄마이고, 우리 둘째의 성향을 좋아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니까.
요즘 우리 부부의 고민은 둘째아들의 입시다. 우리 둘째는 체육 관련 학과에 정시 지원을 앞두고 있는 재수생이다. 가, 나, 다군의 학교를 정해놓고 있기는 하지만 성적이 아주 좋은 것도 아니고 실기는 워낙 변수가 많은 터라 걱정이 태산이다. 대학을 꼭 고집했던 건 아니지만 재수까지 하게 되니 아들이 그동안 고생한 것도 안쓰럽고 이번까지 어디에 소속되지 못하면 너무 큰 실망을 하게 될까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부모로서 자식 문제에 대해 꽤 대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원서 쓸 때가 오니 좌불안석이다. 그래서 원래 지원하려 했던 곳보다 안전한 곳으로 낮춰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우리 아들 생각보다 뚝심있게 말한다. 어디라고 안전하겠냐며 원래 하려던 대로 하겠단다.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결과에 대해서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하며 예쁘게 웃는다. 자기 표현에 능하지 않아서 속으로 주눅 들어 있거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내맡기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남편에게 전화해 아들이 그러더라고 전하니 허허 웃으며 흐뭇해한다. 나보다는 아빠와 비슷한 면이 많은 둘째아들이다. 남편은 우리 부모보다 아들이 더 단단한 것 같다며 아들의 의견 존중하잔다. 나도 아들 걱정 내려놓고 그냥 존중해주고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응원해주기로 했다. 혼자 하겠다고 하면 불안하더라도 지켜봐주고, 손 내밀면 그때 잡아주기. ENFJ 엄마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ISTP 아들이 바라는 일이니 그렇게 해야지. 겉으로 센 ENFJ 엄마보다 속으로 다부진 ISTP 아들이 더 강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