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무슨 책으로 시작할까?

새해 첫날, 해돋이와 책!

by 유쾌한 주용씨

새해 첫날, 3년째 남편과 해돋이를 보러 동네 청량산에 올랐다. 인천 청량산으로 해맞이를 하러 오는 사람들은 매해 늘고 있다. 산 입구에 차들이 줄지어 있다. 동해안 정동진이나 유명산으로 멀리까지 마중나가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30분 전쯤 천천히 집을 나선다. 또 한번 청량산과 가까운 우리 집에 대한 만족감으로 흐뭇해한다. 작년엔 해가 떠오르는 순간 문득 1년 단주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가 두 달도 못 채우고 포기했었다. 올해는 절대로 무모한 약속 따위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올해는 나에 대한 소원은 묻어두고 우리 재수생 둘째아들 제발 대학 신입생이 될 수 있기를, 암과 싸우고 있는 우리 큰언니의 병이 호전되어 건강 되찾기를 간절히 빌었다. 더 이상 욕심내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분이 피곤해하며 짜증내실까봐 눈치 보며 딱 두 가지만 내밀었다. 다른 것들은 내 힘으로 내 의지대로 해나갈 테니 정말 올해는 작은아들과 큰언니만 보살펴 달라고 말이다. 새해 첫날은 해돋이로 시작해야 마음이 놓인다. 매일 뜨는 해인데 1월 1일 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놓치면 소원을 빌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기회를 잃는 것처럼 상실감으로 헛헛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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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2024년을 시작할 책을 가려냈다. 2024년 다이어리를 준비하며 미리 구입해둔 책도 있고 며칠 전에 서점에 달려가 사온 책도 있다. 이틀 전부터 문학평론가 신형철의《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읽기 시작했는데 참 좋다. 문장이 깔끔하면서도 섬세하다. 책과 영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평론은 배울 거리가 많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가 어때야 하는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 책을 읽다가 신형철이 인생의 책 베스트 5권 중 하나로 꼽은 존 윌리암스의 소설《스토너》를 사와서 함께 읽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스탠드 켜놓고 《스토너》를 읽고 있는데 새벽에 자꾸 깨서 책을 붙들게 된다. 이 두 권의 책으로 연말을 함께해서인지 새해를 맞이하는 기분이 다른 해에 비해 차분하고 경건했다. 내가 어쩌면 인생을 조금 깊이 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야 내 인생에 제대로 빠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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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당장 읽고 싶은 책들만 가려냈는데도 이렇게 많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이 극찬하며 추천한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가장 기대되는 책 중 하나이다. 민음사의 프란츠 카프카 단편선 《돌연한 출발》과 《버지니아 울프》도 대작가의 문체를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 읽기 전부터 설렌다. 책장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은 새해를 맞이하기 전부터 자꾸만 눈이 갔다. 책도 딱 끌리는 시기가 있는데 지금 나에게 《월든》이 끌린다. 그리고 정말 읽고 싶어서 샀는데 책장에 꽂아두기만 하고 시작할 엄두를 못내고 있던 단테의 《신곡》도 읽은 마음이 생겼다. 2024년 나는 읽는 사람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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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쓰려고 읽는다. 더 잘 쓰고 싶어서, 내 문체를 갖고 싶어서, 평생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그래서 더 많이 읽는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의 독서 이력이 너무 보잘 것 없는 것 같아 무조건 양적으로 채우고 싶어서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 그러다보니 읽기 편한 책, 빨리 읽을 수 있는 책, 유명한 책, 베스트셀러, 신간 등 책을 고르는 기준이 고르지 못했다. 정말 좋은 책, 나에게 꼭 필요한 책, 두 번 세 번 읽어도 모자란 책 등을 가려내지 못하고 허겁지겁 내 고픈 속을 채우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이젠 책 한 권을 골라도 여러 번 생각하고, 그 책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 기대를 품게 되는 책을 선택한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반복해서 곱씹으며 몸으로 마음으로 새긴다. 읽을 수 있는 책의 권 수는 줄었지만 깊게 읽은 책 덕분에 나는 달라진다. 2024년 내가 읽는 모든 책들이 나에게 온전히 스며들기를, 그래서 내 글이 조금씩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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