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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3. 2020

오늘 수능을 보는 재수생 큰아들에게…

아들아, 너는 코스모스야!

작년 고3 큰아들이 수능을 보기 전날 '내일 수능을 보는 우리 큰아들에게' 라는 제목으로 글을 쓰면서 가슴이 먹먹했었다. 수능 당일날 시험장에 아들을 들여보내고 돌아와 "수능 보고 나오는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 주지?"를 고민했었다.



랑에 빠진 게 분명하다. 그것도 아주 오랫동안 그랬다.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세상에 이렇게 간절한 마음이, 이토록 질긴 사랑이 어디 있을까?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두 아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게 가끔 답답하고 힘들고 억울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제와 오늘 수능 보는 큰아들을 생각하면서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 내가 애틋하면서 좋다. 엄마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마음을 어떻게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


벽 5시부터 큰아들의 아침를 차리고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그리고 좀 전에 아들을 시험장에 데려다 주고 왔다.

"부담갖지 말고 편하게, 편하게 봐. 밥 꼭꼭 씹어 천천히 먹고, 이따 끝나면 엄마한테 전화해. 엄마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아들, 잘 하고 와." 

알았어 하며 뒤돌아서는 아들의 높은 어깨를 두드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주책이다. 그래도 아들한테 눈물 보이지 않아 다행이다. 교실로 향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무겁게 발걸음을 돌렸다. 그제야 너무 춥다. 5년 만에 수능 한파란다.


 이상하다. '엄마'라는 말엔 영원히 마르지 않는 눈물이 담겨 있나보다. 늙고 병든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질금거리더니, 아들을 생각하는 엄마가 되어서도 자꾸만 울컥한다.


능을 보는 우리 큰아들이 어떤 결과에도 상처 받거나 위축되거나 절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엄마! 시험 정말 잘 본 것 같아!'라며 환하게 웃는 얼굴이기를 바라지만 '너무 어려웠어. 예상보다 성적이 좋지 않을 것 같아.'하며 고개를 숙이더라도 엄마의 토닥임과 응원으로 다시 희망을 만드는 아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작년 2019년 11월 4일의 글이었다.




작년에 고3으로 수능을 봤던 큰아들은 오늘 재수생으로 수능을 보러 갔다. 작년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을 먹이고 점심 도시락을 싸서 시험장에 데려다 주고 왔다. 아들은 평소와 다름없이 일어나라고 깨우는 엄마의 채근에 몇 번을 뒤척이다 힘겹게 일어났다. 그리고 어제처럼 샤워를 하며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리기까지 했다. 아침을 먹으면서는 다른 날과 똑같이 게임 유튜브를 보며 '히히'거리기도 했다. 긴장감 1도 없는 모습에 한심하다는 생각보다 '우리 아들, 대단하다' 싶었다.


샤워하고 머리도 말리지 못한 채로 아들의 도시락을 들고 남편차에 동승했다. 시험장으로 가는 길, 학원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시험 볼 때는 이렇게 해야지!' 하며 큰소리 지르던 국어쌤은 없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마는 엄마만 있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옷은  여러 겹으로 끼어 입고 왔어?" 였다.


시험장 앞에서 자꾸만 나에게 먼저 가라고 하길래 교문 안으로 들어서는 모습도 보지 못한 채 뒤돌아섰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뒤를 돌아보니 한 무더기 담배 피우는 남자 아이들 옆에 우리 아들이 서 있다. 친구를 만나기로 했나보다. 아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차에 타 남편에게 "재수하는 아이들은 수능 시험을 보는 날 담배를 피우고 시험장에 들어가기도 하네." 했더니 "이젠 성인이니까."한다. "그렇지. 나이로는 성인이지."  하는데 작년에 비해 포근한 날씨가 다행이다 싶으면서 차 안으로 비친 햇살에 눈물이 흘렀다. 어떤 마음으로 자꾸 눈물이 났는지 정확히 표현할 길은 없지만 돌아가신 우리 아빠가 생각나고 아들의 시험장에서 멀지 않은 요양병원에 있는 엄마가 생각났다. 자식 키워봐야 부모 마음 조금은 알게 된다던 어른들의 말이 맞았다. 어이없게 '부모님한테 더 잘 할 걸' 하는 때늦은 후회가 재수생 아들의 수능날 아침에 밀려왔다.


집에 돌아와 아무일 없는 사람처럼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켜놓고 아들이 남기고 간 반찬에 아침밥을 먹었다. 드라마 속 할머니가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어깨 늘어뜨리고 있는 젊은 손녀에게 말한다. '넌 코스모스야. 지금은 아직 봄이고. 좀 기다리고 가을이 되면 넌 활짝 예쁘게 필 거야' 아들한테는 오글거려서 직접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들의 불안한 현재를 바라보는 엄마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 넌 코스모스야.
지금은 아직 봄이고…
그러니까 좀 지나고 가을이 되면 너는
가장 예쁜 모습으로 활짝 피어날 거야.
지금 너의 모습이 화려하지 않다고 해서 너무 조바심 내거나 초조해하지 마.
화려한 봄꽃들 사이에서
가끔 기죽고 힘들 때도 있겠지만
괜찮아.
 가을이 올 때까지 엄마가 잡초 뽑아주고
물 주며  햇빛 잘 드는 곳에 널 놓아주고 기다릴게.
엄마는 네 곁에서
절대로 지치지 않을 거야.
우리 아들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 가을에 피는 코스모스라고 생각할게.
세상 모든 것들은 다 자기에게 맞는 때, 어울리는 색깔이 있는 것 같아.
언젠가 너만의 빛깔로 활짝 꽃피울 그날을 위해 너의 속도로 가기만 하면 돼.
엄마가 항상 응원할게.
사랑한다, 아들!


최선을 다하고 웃으며 집으로 돌아오기를,

아쉬움보다는 후련함이 더 크기를,

내일은 편하게 늦잠 잘 수 있기를,

아들도 나도 괜찮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2020. 12. 3.

수능을 보는 우리 재수생 큰아들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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