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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4. 2020

아들을 생각하며 보는 영화

"엄마는 너를 절대로 포기하지 않아!"

어제 수능을 본 재수생 큰아들의 얼굴을 아직 보지 못했다. 어제 밤 11시까지 학원 수업을 하고 퇴근한 나는 12시쯤 잠이 든 것 같다. 아빠, 동생과 저녁을 먹고 늦게 친구들 만나러 나갔다던 아들은 새벽에야 들어왔나보다. 아들 방문을 살짝 열고 곤히 자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봤을 뿐이다. 수능을 잘 봤을 거라는 기대는 없다. 아들이 먼저 말하지 않으면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 생각이다. 오늘부터 당장 정시 대비 미술 학원 수업을 한다는 아들에게 나름대로 계획이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엄마는 그저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청소해주는, 그저 자식에게 해주는 사람일 뿐이다. 더 이상 욕심내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말했다. 아들이 깨기 전에 의연한 엄마로 완벽 변신하기 위해 아들을 생각하며 봤던 영화들을 떠올렸다.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너무나 가슴 아프게 본 영화 

<벤 이즈 백Ben is Back>(2018)

영화 <벤 이즈 백Ben is Back>은 아들이 자신의 품으로 돌아오길 바라는 엄마의 이야기다.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 엄마의 품으로 쉽게 돌아갈 수 없었던 아들의 이야기다. 

난 널 포기하지 않아!


스스로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른 마약 중독자 아들은 자신을 끝까지 놓지 않는 엄마 앞에서 제발 자신을 포기해 달라고 애원한다. 하지만 잘못된 길에 들어서 가족의 평화를 뒤흔드는 아들일지라도 엄마만은 자식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식의 모든 것은 엄마의 몸에 문신처럼 새겨져 도저히 떼어낼 수가 없다. 그때부터 자식의 웃음은 엄마의 행복이고 자식의 눈물은 엄마의 고통이다. 영원히 그렇다. 


 아들의 엄마에 대한 애증! 

 <아이 킬드 마이 마더>(2015)

나는 누군가의 아들일 수는 있지만, 어머니의 아들이긴 싫다.


내 아들들도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나도 가끔은 '자식이 없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라고 상상했으니까. '두 아들이 지금보다 성적이 좋고 스스로 알아서 잘 하는 자식이었다면 엄마로서 좀 편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아들 : 내가 오늘 죽어버리면 엄마는 어떻게 할 거야?
엄마 : 네가 오늘 죽으면 엄마는 내일 죽을 거야.


아들은 엄마에 대해 양가감정이 있단다. 엄마에게 의존하면서도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두 가지 대립적인 감정이 아들의 마음속에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순적인 아들을 이해해야 하는 건 언제나 엄마의 몫이다. 


난 엄마를 사랑한다. 하지만 아들로서의 사랑이 아니다. 모르겠다. 누가 엄마를 해친다면 난 당연히 그 사람을 가만 안 둘거다. 하지만 나는 엄마를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다. 이건 참 모순적이다. 자신의 엄마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지 않을 순 없다는 거.


우리 두 아들은 엄마인 내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어쩌면 내가 짐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아들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아니, 알고 싶지 않다. 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건 없을 것 같다. 어차피 엄마의 아들에 대한 사랑은 계속될 테니까. 아들이 귀찮다고 해도,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해도 엄마는 끝까지 아들을 향해 다가갈 것이다. 다만 좀 천천히, 가끔은 멈춰서 기다리기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아 갈 뿐이다. 


당신이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당신이 자신에게(그리고 당신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아직 시간이 있음을 기억하는 일이다. 아들이 어른이 될 준비를 할 수 있는 시간은, 당신이 없어도 아들 혼자 잘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까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 도저히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아들은 이미 당신이 현재 아들에게 주고 있는 도움보다 훨씬 적은 도움을 주어도 잘 해나갈 수 있다. 대학교로 떠나기 전에 당신 아들은 완전히 자랄 필요도 없고 사실은 완전히 자랄 수도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애덤 프라이스 『당신의 아들은 게으르지 않다』중에서


아들이 스스로 마음을 먹고 의욕을 가질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이 엄마의 역할이다. 엄마의 조급함이 아들과의 갈등을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서 '우리 아들이 너무 늦으면 어떡하지?', '이러다가 루저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은 이제 접어두자! 꽃나무를 키우는 것처럼 가끔 물을 주고, 햇볕을 쬐게 하면서 소리 없이 지켜보자. 내 일을 하다가 깜박 잊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무는 스스로 조금씩 자라고 있을 테니까,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예쁜 꽃을 피우고 나를 놀라게 할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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