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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09. 2020

50세 남편의 건강 적신호, 정신이 번쩍 들었다!

중년 부부에게는 건강한 사랑이 필요하다.

월요일밤 우리 가족 모두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11시에 학원 수업을 마치고 퇴근하니 세 남자가 화기애애하게 TV를 보고 있었다. 음악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이 요즘 즐겨 보는 프로그램 <싱어게인> 본방을 시청하는 중이었다. 수능을 마친 큰아들은 미술 학원 수업을 마치고 돌아와 불닭볶음면으로 허기를 달랬고 학원 수업 대신 자기 주도 학습을 하고 있는 작은아들은 아빠가 사 온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다. 남편은 겨울인데도 짧은 반바지에 런닝 하나만 걸치고 세상 편한 자세로 여유를 즐기는 중이었다. 



한창 노래를 들으며 식구들 각자 감상평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남편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갑자기 '아~~~' 소리와 함께 얼굴을 바닥에 묻었다. 온몸을 벌벌 떨면서 괴로워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두 아들과 나는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지둥했다. 오한이 든다는 남편의 말에 이불을 두 개나 겹쳐 덮어주고 뻣뻣해진 팔과 다리를 주물렀다. 



처음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들의 얼굴엔 걱정과 두려움이 한가득이었고 나는 그 짧은 시간에 지옥에 다녀온 기분이 들었다. 구급차를 부를까 했지만 남편은 괜찮다고 만류했고 세 식구의 관심과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남편의 상태는 조금씩 안정되어가고 있었다. 그제야 두 아들과 나는 한숨을 쉬며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엄마가 옆에 있으니 걱정 말라며 아들들을 각자의 방으로 보내고 불 꺼진 방에서 아주 오랜만에 남편의 얼굴을 오랫동안 자세히 들어다보았다. 두세 줄 주름이 생긴 이마, 피곤으로 쌍꺼풀이 생긴 눈, 생각보다 크고 오똑한 코, '색색' 입냄새를 풍기는 진한 입술까지… 안쓰러운 마음에 얇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상기된 볼을 쓰다듬었다. 우리 남편, 그동안 참 고생 많았다 싶었다. 



등을 돌리고 남편이 사 준 몰랑이 인형을 안고 자는 게 자연스럽고 편했지만 그날밤에는 남편을 꼭 안고 남편의 몸을 느껴야 했다. 자다가 상태가 안 좋아질까봐, 남편이 아픈데 내가 못 알아챌까봐 겁이 났다. 남편은 지금껏 가족 앞에서 심하게 아파본 적도, 엄살을 떨어본 적도, 내 잠자리를 불편하게 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영원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나보다. 바보처럼…



스르르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남편이 떠났다. 내 꿈은 항상 이런 식이다. 자기 전에 생각한 것이 자주 꿈으로 이어진다. 30대에는 남편이 없어도 난 잘 살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린 적도 있었다. 사랑 없는 부부 관계가 무슨 의미가 있냐며 쿨한 척 이혼을 들먹이기도 했다. 그때는 함께 있으면서 혼자 생각했고, 뜨겁지 않은 사랑에 서운해하며 남편 탓을 했다.



40대 중반을 넘어 5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면서 나는 함께 하는 부부의 맛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과 시원한 가을을 닮은, 적당한 온도의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크고 그래서 남편이 소중하다. 그런 남편이 내 곁에 없는 꿈은 너무 끔찍했다. 잠이 깨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다음날 아침 하루 쉬라는 나의 권유에도 괜찮다는 말로 나를 안심시키며 출근한 남편. 현관문을 연 채로 계단으로 내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았다. 평소와 똑같은 출근인데 마음이 뭉클했다. 내 남자의 몸을 너무 챙기지 않았다는 자책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 부부에게 이제 서로 건강을 챙기며 살라는 신호를 보내준 것인지도 모른다. 



남편이 없는 지옥을 다녀오고나니 내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족 모두가 건강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선물이고 행복인지 알 것 같다.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게 된다. 50대가 된 우리 부부에게 이제부터라도 건강한 삶을 게획하고 실천하라는 계시이며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주말엔 남편 보양식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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