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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05. 2024

내가 학원 논술 강사로 일하는 방식

새해 첫 수업을 준비하는 마음

1월이 되면 내 강의실에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새 학년 새 시간표로 논술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벌써 작년이 된 2023년 12월에 중1 3반 16명을 졸업시키고 그 빈 자리를 예비 초5,6과 중1로 채웠다. 신입생을 받기 전 2,3주는 상담 전화로 정신이 없다. 바쁘기는 하지만 내 수업에 관심을 갖고 문의를 하는 것이니 반갑고 황송하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하게' 라는 자세로 응대한다. 학원 논술 수업은 거의 시간 문제로 수업 여부가 갈린다. 일주일 중 평일 중심 시간은 거의 수학과 영어 학원이 차지하고 국어와 논술은 주중 나머지 시간이나 주말로 밀린다. 특히 논술은 '하면 좋은데 시간이 안 되면 어쩔 수 없지'라고 쉽게 단념해버리는 분야다. 그러니 어머니들의 시간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시간표를 뽑아내는 게 아주 중요하다. 그래서 목, 금, 토 3일 수업을 고집하는 나에게 시간표 구성은 아주 어려운 숙제다.


목요일과 금요일 5시 수업은 예비 초4를 구성하려고 했지만 애매한 시간대라 역시 1월 수업 시작은 실패했다. 평일 3시 수업은 학교 끝나고 바로 진행할 수 있어서 괜찮은 편이고 7시 수업은 아예 늦은 시간이라 또 괜찮다. 그런데 5시는 꼭 다른 수업과 겹친다. 논술을 1순위로 생각하는 학부모님들이 계시지 않는 한 그 시간 반 구성은 항상 어려웠다. 그래도 3월 새 학기 시작 전에 문의가 좀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는 수밖에 없다. 반면에 토요일 수업은 북새통이다. 중1 3반이 나간 자리가 그대로 채워졌다. 한 반 정원도 5명에서 6명으로 늘렸는데(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데는 6명이 더 좋은 것 같다. 그리고 내 강의실 자리가 6개이다.) 2반은 마감되고 2반도 티오가 각각 1명뿐이다. 올해도 토요일 8시간 연속 수업으로 컨디션 조절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작년엔 토요일 4개 수업 중 3반이 중1 수업이었는데 올해는 2반 중1, 1반 초6, 1반 초5로 비교적 다양한 학년이 구성되어 단조로움이 덜할 것 같다. 


나는 학원에 소속되어 있는 논술 강사이지만 개인 사업자 또는 프리랜서라고 볼 수도 있다. 학원과 동업 계약서를 쓰고 월급제가 아닌 비율제로 급여를 받는다. 처음 시작할 때는 한 명의 수강생도 없던 상태라 4개월 수습 기간처럼 기본급을 받고 시작했다. 개강일 2주 전부터 홍보와 상담을 통해 빠르게 반 구성을 해나가면서 기대 이상으로 빠른 시간에 손익 분기점이 되었다. 내 논술 수업 수강생의 수강료가 학원에서 내게 지급한 기본급 이상이 된 것이다. 4개월 후 해가 바뀔 때 정식 계약서를 썼다. 안정된 월급제로 갈 것이냐, 불안정하지만 내 능력대로 받아가는 비율제로 할 것이냐 선택의 기로에서 나는 두 번 고민할 것도 없이 비율제를 택했다.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자율적인 근무 환경 보장이 더 큰 이유이다. 신입생 재학생 상담, 수업 프로그램과 시간표 구성, 수업 교재 제작, 학생 학부모 관리, 출결 관리와 보강 등 논술 수업에 관한 모든 것을 내가 담당하고 있어서 비교적 높은 비율로 계약서를 쓸 수 있었다.


내가 근무하는 국어학원은 동네에서 국어 잘 가르치기로 소문난 곳이다. 원장님과 부원장님을 포함해 국어 강사가 10명 가까이 된다. 최근에 옆 건물에 분점까지 내고 세 분의 실장님이 학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꽤 규모가 큰 학원이다. 그런데 우리 국어학원에서 논술 강사는 내가 유일하다. 국어 강사만 오래 했을 뿐 논술 강사 경력은 전혀 없었던 나를 젊은 원장님이 선택해서 논술팀장이라는 직함을 주었다. 논술 수업에 관한 모든 권한과 책임과 결정권이 내게 있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자리지만 아무도 내 업무에 관여하지 않으니 자유롭게 내 역량을 펼칠 수 있다. 다양한 도전도 가능해서 나는 오히려 즐기는 편이다. 작년에 중1 아이들과 3개월 《코스모스》완독 수업을 한 것도 그 도전의 일환이다. 올해도 내 논술 수업에서 의미 있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 아무튼 내가 지금의 학원과 원장님을 만난 건 큰 행운이었고 고마운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업이 안정되면서 내 급여도 상향선을 그리고 있다. 비율제라 매달 조금씩 오르락 내리락 변화가 있지만 평균적으로 안정권에 들어섰다. 비율제의 특성상 내 수업 수강생이 바로 급여로 이어진다. 자칫 학생을 돈으로 치환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학원 강사라면 신입생이 들어오면 반갑고 퇴원생이 생기면 실망하는 게 당연한 심리지만 월급제에 비해 비율제는 그 감정의 강도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상담이 많은 때일수록 더욱 조심한다. 수강생 늘리는 데 혈안이 돼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한다거나 무리한 요구 사항을 받아들이거나 수강 등록을 독촉하는 등의 부끄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려고 나의 마음가짐과 태도를 수시로 점검한다. 마음을 완전히 비울 수는 없어도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과정에 성실하고 결과에 순응하려고 노력한다. 신입생에게 마음이 더 쓰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더라도 오랜 시간 나를 믿고 따라와준 학생과 학부모가 더 소중하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한다. 

 

어제 2024년 첫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 이름표를 만들어 붙인, 새 논술 파일을 나눠주었다. 선생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별 감흥 없이 파일을 받길래 새로운 마음으로 잘 해보자는 뜻으로 쌤이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고 생색을 냈다. 능청스럽게 '아, 선생님 고생하셨네요. 아이구, 감사합니다.' 한다. 아이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새해 첫 수업이라 그런지 약간 긴장하고 많이 설렜다. 수업 준비도 2배로 더했다. 내일 토요일 수업은 신입생들이 정말 많다. 4타임 연속 수업이라 체력이 달릴 수도 있다. 첫인상을 좋게 심어줘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신경이 쓰인다. 올해 첫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후회없이 잘 해내고 싶다. 즐거운 독서, 생각 깊은 글쓰기, 당당한 말하기가 습관이 되어 아이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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