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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12. 2024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글쓰기 선생님 이슬아의 책 《부지런한 사랑》

난 20년 넘게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10년 동안 국어 논술 학원을 운영하기도 했다. 논술보다는 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편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 시간 글쓰기 선생님이나 논술쌤이 아니라 국어쌤으로 불렸다. 학창 시절 글쓰기 대회에서 몇 번 상을 받았다. 글을 쓰라거나 국어 선생님이 어울린다는 말을 간간이 들었다. 하지만 국어국문과를 다니면서도 내가 글쓰기에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된 후부터는 더욱 그렇다.


《부지런한 사랑》은 오랫동안 글쓰기 선생님으로 일해온 이슬아의 에세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탄생된 부지런한 사랑들에 관해 다루고 싶다고 했다. 20년을 국어쌤으로 일해온 나는 내 국어 수업에서 어떤 글감도 찾지 못했다. 이슬아에게는 가르쳤던 아이들의 글이 남았는데 난 강의실에서 만난 아이들의 흐릿한 기억뿐이다. 이슬아는 92년생으로 나보다 스무살이 어리다. 젊은 이슬아의 책을 읽으면 나는 글쓰기에 재능이 없을 뿐 아니라 노력한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생활에 글의 자리는 아직 좁고, 내 하루에 글 쓰는 시간은 쫓기듯 급하게 끝나버린다. 


 나는 나에게 재능이 있는지 궁금했다. 재능은 누군가를 훨씬 앞선 곳에서 혹은 훨씬 높은 곳에서 출발하게 만드는 듯했다. 재능이 있다면 더 열심히 쓸 참이었다. 만약 없다면 글쓰기 말고 다른 일을 열심히 해볼까 싶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있다고 말했다. 어떤 어른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말했다.

 스물아홉 살인 지금은 더이상 재능에 관해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된 지 오래다. 꾸준함 없는 재능이 어떻게 힘을 잃는지, 재능 없는 꾸준함이 의외로 얼마나 막강한지 알게 되어서다.

 재능과 꾸준함을 동시에 갖춘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창작을 할 테지만 나는 타고나지 않은 것에 관해, 후천적인 노력에 관해서 더 열심히 말하고 싶다. 재능은 선택할 수 없지만 꾸준함은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10년 전의 글쓰기 수업에서도 그랬다. 잘 쓰는 애도 매번 잘 쓰지는 않았다. 잘 못 쓰는 애도 매번 잘 못 쓰지는 않았다. 다들 잘 썼다 잘 못 썼다를 반복하면서 수업에 나왔다. 꾸준히 출석하는 애는 어김없이 실력이 늘었다. 계속 쓰는데 나아지지 않는 애는 없었다. 
(…)
10대 때 함께 글쓰기 수업에 다녔던 친구가 얼마 전 나에게 말했다. 어느새 너는 숙련된 세탁소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혹은 사부작사부작 장사하는 국숫집 사장님처럼 글을 쓴다고. 나에게 그것이 재능이 있다는 말보다 더 황홀한 칭찬이다. 무던한 반복으로 글쓰기의 세계를 일구는 동안에는 코앞에 닥친 이야기를 날마다 다루느라 재능 같은 것은 잊어버리게 된다. 

 요즘엔 원고 마감을 하러 모니터 앞에 앉은 뒤에 한마디를 읊조린다. "땡스, 갓." 나는 종교가 없고 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이 세계의 어딘가를 행해 감사 인사를 올린다. 써야 할 이야기와 쓸 수 있는 체력과 다시 쓸 수 있는 끈기에 희망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그 반복 없이는 결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 기꺼이 괴로워하며 계속한다. 재능에 더 무심한 채로 글을 쓸 수 있게 될 때까지.

《부지런한 사랑》 p.23~26  '재능과 반복' 중에서


2021년 초 책을 출간하기 위해 한창 원고를 쓰던 때에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읽었다. 생애 첫 책의 원고 마감일을 앞두고도 매일 학원일에 허덕이고 식구들 밥 차리는 일이 시급하고 중했다. '이렇게 글을 써도 되나?'라고 매일 수시로 나 자신에게 물으며 한숨을 쉬었다. 이슬아처럼 글 잘 쓰는 사람들의 책을 읽다보면 질투심이 꿈틀댄다. 당장 노트북 앞에 앉아 나도 잘빠진 글을 쓰겠다며 욕심을 내곤 한다. 글이라는 게 마음먹는다고 술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괜한 억지다. 금세 잘 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글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지를 생각하며 겸손해진다. 결과물이 아니라 나의 글 쓰는 자세를 생각한다.


매일 깨지면서도 붙들게 되는 힘, 그것은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다. 나는 읽고 쓰는 일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그럴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읽고 쓴다. 정희진의 말처럼 좋은 책이 내 몸을 통과하면 그전과는 다른 내가 되는 기분이 너무 짜릿하다. 어제보다 좀 더 나은 글을 쓰기 위해 어제보다 좀 더 애쓰는 내가 좋다. 꾸준한 반복이 이미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져다 주었다. 재능은 없지만 꾸준함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읽고 쓰는 꾸준함으로 나의 인생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모를 일이다. 


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학원 논술쌤이 되어서 이슬아의 《부지런한 사랑》을 다시 읽었다. 초등학교 4, 5, 6학년과 중1 아이들의 논술 수업을 시작하면서 걱정과 기대, 설렘이 뒤엉켜 있었다. 어떻게 하는 수업이 좋은 수업일지 고민했다. 어떤 글감이 아이들의 입을 열게 하고, 쓰는 손을 만들 수 있을지 생각했다. 책의 도움은 말할 것도 없다. 도서관에서 논술 수업을 위한 독서, 토론, 쓰기 관련 책들을 닥치는 대로 빌려와 읽고 정리했다. 그 중에『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 수업을 '미리보기' 할 수 있는 책이었다. 책을 읽어가며 아이들의 마음을 짐작해보고 이해해보고 그 눈높이에 맞춰 말 걸어보는 연습을 했다. 


벌써 3년째, 나는 이제 국어쌤이 아니라 논술쌤으로 불린다. 엄마의 마음으로 학부모를 만나고, 매시간 아이들에게 감탄하고, 아이들과 함께 크게 웃으며 수업한다. 매년 1월이면 새로운 반이 편성되고 신입생들이 많이 들어온다. 그 어느 때보다 수업에 대한 책임과 부담을 강하게 느끼는 때이다. 작년보다 더 부지런히 읽고 쓴다. 더 부지런히 수업을 준비하고, 나와 수업하는 모든 아이들을 더 부지런히 사랑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나뿐만 아니라 이 세게를 수호하는 길이라고 나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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