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Feb 06. 2024

오늘 아들의 입시 결과가 나온다

재수생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를 기다리며...

2023년 2월 6일


오늘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가 나온다. 남편과 나, 아들은 어제 동해안에서 1박을 했다. 그동안 실기 시험 준비하느라 고생한 아들 바람도 쐬어주고 우리 부부도 오랜만에 바다 좀 보고 오자며 남편이 제안했다. 나에게 말도 안 하고 이미 월요일 반가를 내고 왔단다. 아내와 아들을 생각한 남편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웠다. 말은 안해도 작은아들의 입시 결과를 기다리는 남편 마음도 내 마음만큼이나 복잡했을 것이다. 표현이 다를 뿐 아빠도 자식에 대한 마음이 엄마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다. 아무튼 이래저래 속 시끄러운 우리 세 가족에게 잠시 숨 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아들도 흔쾌히 따라나섰다.


정시 가, 나, 다군 하나씩 그리고 전문대 한 군데까지 4곳에 원서를 넣었다. 수능 성적이 좀더 좋았더라면 집에서 가까운 대학에 지원할 생각이었지만 역시나... '자식은 부모에게 세상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태어났다'는 말을 또 실감한다. 꼭 원했던 곳은 아니지만 다른 고3들처럼 성적에 맞는 대학으로(모두 체육학원에서 추천하고 정해준 곳이다) 지원했다. 다른 대안이 없으니 그것이 순리인 양 따르는 수밖에... 1월 하순에 모든 실기 시험이 끝나고 약 열흘, 우리 세 식구는 잠시 입시를 잊고 살았다.


고3이었던 적이 너무 오래 전이라 지금 아들의 심정이 어떨지 잘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저 엄마의 마음으로 걱정하고 곁에 있어주는 것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며칠 전 가장 합격 확률이 높은 곳이라 여겼던 곳이 예상보다 일찍 발표를 했다. 출근 길에 아들이 보낸 문자 '떨어졌어'를 확인하며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가장 먼저 아들의 마음이 걱정됐다. 그리고 간절히 바랐던 대학도 아닌데 이렇게 마음 졸이는 상황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은 대학에 들어가긴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게 맞는 것일까?


나머지 세 곳의 입시 결과가 오늘 다 나온다.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두는 습관이 있어 세 곳이 다 안됐을 때를 열 번도 넘게 생각해봤다. 그런데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어느 한 곳이라도 합격을 해서 대학에 들어가고 보는 게 아들의 미래를 위해 좋은 건지, 오히려 다 안되고 그 김에 아들의 진로를 차근차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은 건지. 아들의 입장에서는 어디라도 소속되는 것이 더 좋을 지도 모른다. 그래야 지금 당장은 마음이 편할 테고 다른 사람들 만나기에도 불편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엄마의 입장에선 글쎄... 합격이라면 축하를 해야할 테고 입학금과 등록금을 준비해야겠지. 그리고 불합격이라면... 먼저 따뜻한 표정으로 위로를 할 것이다. 그리고 가장 의연한 태도로 함께 고민해보자고 말을 건네야지. 어떤 상황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 가장 든든한 어른의 모습으로 아들 곁에 내가 있을 것이다.


까칠했던 큰아들에 비해 순둥이 작은아들은 초조해 보이거나 불안해 보이지 않는다. 어제도 낯선 숙소에서 오랜만에 엄마와 한 침대를 쓰며 굿나잇 뽀뽀도 하고 쌔근쌔근 잠도 잘 잤다. 오늘 아침, 아들이 잠든 사이 남편과 나는 동해 해돋이를 보러 나갔다. 조용한 사천해변에서 빨갛게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시린 두 손을 모아 빌고 또 빌었다. 대학 합격이 아니라 우리 아들의 밝은 미래를, 어떤 상황에도 아들이 좌절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언제까지나 아들 곁에서 든든한 엄마로 살 수 있게 도와달라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좋은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하겠노라고. 오늘은 내 온마음이 작은아들에게 향해있다.




2024년 2월 6일


오늘 재수생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가 나온다. 일 년 전과 같은 상황이다. 한 번 경험해봤으니(큰아들까지 치면 이번이 네 번째다) 작년에 비해 좀 나을 줄 알았는데 솔직히 마음이 더 부대낀다. 열흘 전부터 매일 아침 산책길에 절에 들러서 두 손 모아 빌었는데 어제는 비도 오고 허리 통증도 있는 바람에 하지 못했다. 오늘도 궂은 날씨 탓하며 집밖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솔직히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마음 상태다. 오랜만에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며 아들의 행운을 빌었다. 아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내 노력에 따라 입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모든 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색연필 그림책을 보며 아들이 좋아하는 고양이를 따라 그리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며 파티를 준비하기도 하고, 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몇 자 적어 넣는 것으로 불안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아들에게는 담담한 엄마의 모습을 보이려고 무척 애쓰는 중이다. 한 곳의 불합격 소식을 듣고 바로 다음 날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 아들은 어제 하루 종일 근육통으로 힘들어 했다. 일하고 들어온 아들은 건드리면 주저앉을 것처럼 힘이 빠져 있었다. "힘들었지?" 하니까 "돈 벌기 진짜 힘드네" 한다. 우리 아들 몸으로 좋은 거 배웠네 싶었다. 돈을 벌어보면 알게 되지, 공부가 그나마 쉬었다는 걸. 아들의 저녁밥에 더 신경을 썼다. 힘든 하루의 끝은 엄마의 밥이 큰 위로가 될 테니까. 아들과 함께 음악을 들으며 맥주 한 잔도 했다. 나도 모르게 "이렇게 살면 되지, 뭐."라는 말이 툭 튀어나왔다. 아들이 날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 괜찮다. 나는 오늘도 결과가 어떻든 우리 아들을 위해 맛있는 저녁을 차릴 것이다. 그리고 우리 네 식구는 새벽에 우리나라 축구 경기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얼싸안으며 마음을 나눌 것이다. 이렇게 살면 되는 거다.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이라는 책이 도움이 된다. 스물여섯 살밖에 안 된 형을 암으로 잃고 다니던 좋은 직장 대신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한 패트릭 브링리의 책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그림을 함께 감상하며 천천히 읽는 중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불행을 맞닥뜨렸을 때 그 다음을 어떻게 살아내느냐는 사람마다 참 다르다. 브링리는 형이 세상을 떠나고 나자 자신이 아는 공간 중 가장 아름다운 장소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일을 선택했다.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형을 잃은 불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하며 살아낸 그의 이야기는 담담하지만 묵직한 감동이 있다. 책을 읽는 중간중간 암과 싸우고 있는 큰언니가 생각나 자주 쉬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이런 책을 읽고 있노라면 내가 가진 고민은 점점 작아지고 어떤 상황도 받아낼 수 있을 것처럼 내 마음의 그릇은 커진다. 그리고 글쓰기.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면>... 나는 하루도 나를 그냥 놓아버릴 수가 없다. 게다가 오늘은 우리 아들과 식구들의 마음까지 단단히 잡아주어야 하는 날이다. 온힘을 다해 오늘을 잘 버텨낼 것이다.

이전 13화 24시간이 모자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