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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13. 2024

내게 남은 날이 얼마일지...

어제와는 다른 나로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결심과 다짐을 해 왔던가. 설 연휴가 끝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문득 나에게 남은 날이 얼마일지 세어본다. 아마도 큰언니와의 전화 통화 때문일 것이다. 큰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다. 어느 때부터인가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바로 계산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72년 생이라고 알아서 계산하란 식으로 무책임하게 대답하곤 한다. 2024년이 한 달 넘게 지났고 신정, 구정 설까지 쇠었으니 정확한 내 나이를 알고 싶었다. 나이 계산기에 내 출생일을 입력했다. 연나이로 52세, 만나이로 51세란다. 그럼 큰언니는 연나이로 57세, 만나이로 56세다. 같은 50대다. 그럼 언니와 나의 남은 날도 크게 차이나지 않아야 하는데...


큰언니는 너무 일찍 죽음을 생각한다. 재작년 8월에 담도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인데 맞는 약을 찾지 못하고 점점 말라가고 있다. 연휴 전에 작은아들의 입시 결과 발표를 듣고 오늘에서야 언니의 안부를 묻는 전화를 걸었다. 언제나 담담한 목소리의 언니는 내가 괜찮은지부터 묻는다. 재수생 아들이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게 뭐 대수라고 통증과 싸우며 날마다 죽음을 생각하고 있을 언니에게 위로나 받고 있다니... 참, 사는 게 거지같다. 언니는 항암 치료를 한 번 쉬었단다. 효과는 없고 몸이 너무 붓기만 해서 병원에서도 좀 쉬어보자고 했다고. 쓸 수 있는 약이 별로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치료를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가슴이 턱하고 막힐 것처럼 충격적인 소식인데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조곤조곤 말하는 큰언니가 무서워졌다. 바쁘게 마음을 추스렸다.


 "많이 아파?" "어디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실컷 먹고 좋은 공기 쐬며 지내다 오면 어때?" "내가 일을 안 하면 한두 달이라도 언니랑 어디 가서 살다오면 좋겠다." 등등 아무말 대잔치를 벌렸다. "통증 줄이는 약은 더 늘었지." "어딜 가? 걸을 힘도 없는데..." "어이구, 쓸 데 없는 소리..." 하며 힘없이 웃는다. "언제 한 번 바람 쐬러 와. 언니가 맛있는 거 사 줄게." "언니가 뭘 또 사 줘? 일 쉬는 날이면 나는 언제든 갈 수 있지. 오늘내일 기온 올라간다고는 하던데..." 목요일부터 수업을 해야하는 나는 이번 주는 너무 급하고 다음 주나 다녀올까 머리를 굴린다. 그런데 언니가 "그럼 내일 올래?" 한다. 오늘 제주도로 일주일 여행가는 큰아들 김포 공항에 데려다주고 저녁에는 여고 동창 모임이 있다. 내일은 수업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다. 어쩌면 줌으로 보강도 두 건쯤 해야할지 모르고. 그런데 언니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다. "그래, 내일 갈게." "괜찮겠어? 날씨 좋다니까 신정호 걸으면 좋기는 할 것 같은데..." 나는 내일 언니를 보러 가기로 했다.


지난 주에 수업을 안 하고 꽤 긴 연휴를 가졌는데 몸도 마음도 쉰 것 같지가 않다. 재수생 둘째아들의 입시 결과 발표로 마음을 추스려야 했고, 시장 보고 차례상 차리고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몸이 바빴다. 전역한 큰아들과 한 집에서 적응하는 데도 에너지가 필요했고, 연이은 음주로 몸이 좀 지친 듯하다. 오랜만에 아무도 없는 집에서 몇 시간이라도 여유를 누리면 좋으련만 어제까지와는 다른, 낯선 기분으로 좀 어색한 상태다. 느닷없이 내게 남은 날이 얼마일까를 헤아리더니 불현듯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나를 흔든다. 큰언니 때문인지, 읽고 있던 책 때문인지, 사는 게 별거 아닌 것 같은 허무감과 나에게 남아있는 시간에 대한 애틋함이 동시에 몰아친다. 어차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 가벼이 되는 대로 살지 뭐 했다가 죽는 순간까지 후회없이 살려면 뭐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다 조급해진다. 이런 걸 양가감정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나는 어제와는 다른 나로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살고 싶어졌다. 어제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생각들을 싹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차곡차곡 새로운 생각들을 쌓고 싶다. 두 아들에 대한 엄마의 마음, 남편과 나의 노후 계획, 별일 없이 평화로운 일상에 대한 바람, 이런 것들을 확 뒤집어보면 어떨까. 좋다고 여겼던 것이 별로인 게 되고,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실현되면 꽤 흥미로울 것 같다. 아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무엇부터 바꾸면 좋을지, 과연 내가 얼마큼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생각만으로 내가 좀 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게 남은 날이 30년쯤 되려나? 그것도 알 수 없다. 아빠처럼 70대에 암이 발견될지, 큰언니처럼 50대에 암과 싸우게 될지, 누가 예측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너무 먼 계획을 세우지 않기로 했다. 1년 짜리 적금처럼 내 인생도 1년, 6개월, 한 달, 일주일, 그리고 오늘 이 순간, 만기일이 확실한 계획을 세우고 미루지 말고 실천해 보려고 한다. 2024년에 나는 내 두번째 책을 써야겠다. 2021년에 첫 책을 출간하고 3년째, 할 말이 꽤 많아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남편과 지리산 종주를 할 것이다. 나와 남편의 건강, 체력 관리가 필수다. 2월에는 옷장 정리를 하고 산뜻한 봄옷을 장만해야겠다.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보게 될 지 모르니 올봄은 좀 새롭게... 이번 주 수업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방식을 시도해볼까 한다. 나도 아이들도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선한 변화가 필요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만나는 여고 동창들에게 집중하기로.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면> 매일 내 안의 나를 만난다. 그리고 묻는다. 어떻게 살고 싶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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