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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30. 2024

24시간이 모자라

오늘도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편이다. 꽤 오랫동안 새벽 기상과 아침 산책을 습관으로 삼을 만큼 늦잠과는 거리가 멀다. 부지런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자랐고 충청남도 출신 같지 않게 말도 행동도 전혀 느리지 않다. 눈치 보며 뒤에서 어벌쩡 따라하기 보다는 앞장서 먼저 시작하고 일처리도 빠른 축에 속한다. 그런데... 나의 24시간은 항상 모자란다. 아침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달리는데 목표했던 일을 개운하게 끝낸 적이 없는 것 같다. 잠자리에 들 때쯤엔 '아, 오늘도 그걸 못 했네'하며 시도도 하지 못한 일이나 마무리하지 못한 일에 대해 아쉬워한다. 도대체 왜...


어제 남편과 함께 저녁 약속 모임이 있어 술 한 잔 거하게 하고 10시 30분쯤 집에 들어왔다. 피곤함이 밀려와서 씻자마자 바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아침 남편 출근 시간 생각해서 7시 30분에 알람을 맞춰놨지만 그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어제 참치회와 각종 해산물 등 좋은 안주로 술 마신 덕분인지 오늘 아침엔 숙취도 없고 비교적 괜찮은 컨디션이었다. 남편에게 밝은 표정으로 굿모닝 인사를 하고 여느 때처럼 노트북을 켜며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은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면>을 연재하는 날이다.


남편이 출근하고 얌전히 앉아서 오늘의 연재글을 쓰려고 했는데 일요일부터 다시 시작한 청량산 하이킹을 빼먹을 수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침 시간을 놓치면 오늘은 분명 이런저런 핑계로 운동을 건너뛰게 될 게 뻔했다. 원래 혼자만의 약속이라거나 일상의 루틴 같은 건 다른 것들보다 우선적으로 깨지기 쉬운 법이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 자신과의 약속은 무엇보다 중요하고 내 일상의 단단한 습관은 다른 것보다 더 잘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 않나 싶다. 아무튼 나는 안해도 될 이유를 뿌리치고 1시간 30분의 상쾌한 청량산 산책을 끝냈다. 그리고 전날 과음에도 불구하고 운동 마친 여자의 자부심을 획득했다.


등산화를 벗으니 오전 9시 50분이다. 10시 30분이면 오늘 군대 복귀하는 큰아들을 깨워 아침을 먹여야 한다. 10분 동안 샤워하고 30분 동안 반찬을 준비하기로 했다. 오뎅국을 끓이고 갈치를 구웠다. 12시 전후로 정시 입시를 끝낸 작은아들도 일어나 아점을 먹을 테니 반찬은 넉넉해야 한다. 냉장고에 시장에서 사온 메추리알 4판이 그대로 있어 삶아 까놓기로 했다. 저녁 반찬으로 메추리알 장조림 추가다. 깐메추리알을 사면 편하겠지만 가격도 싸고 물에 퉁퉁 불어있는 깐 것보다는 내가 직접 삶아 깐 것이 영양가도 좋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편이 나의 수고로움이나 시간에 타당성을 부여해주니까.


반찬을 하면서 간을 보다가 밥생각이 달아났다. 큰아들만 먹이고 이것저것 부엌일을 하는데 작은아들이 나온다. 큰아들이 다 먹은 상에 작은아들 상을 다시 차렸다. 12시 거의 다 된 시간, 오래 서서 부엌일을 했더니 또 허리가 뻐근하다. 잠시 의자에 앉아 숨돌리다 큰아들의 제안으로 스타벅스에 들러 커피 한잔씩 시켰다. 큰아들 덕분에 생애 처음 스타벅스 드라이빙 스루를 이용해봤다. 바쁜 와중에도 새로운 경험은 신선하다.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며 아들을 터미널에 데려다 주었다. 강원도 화천 부대로 복귀하는 아들, 터미널에 데려다주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우리 아들 모레면 전역이다. 백미러로 비친 군복 입은 아들의 늠름한 모습에 절로 미소가 인다.


그길로 집으로 그냥 돌아와 좀 쉬다 밥먹고 글을 쓰면 될 텐데 나간 김에 농산물시장에 들르고야 말았다. 얼마 남지 않은 대파를 사오자는 게 주목적이었지만 표고버섯, 시금치, 두부, 콩나물, 청양고추, 파프리카 등을 1차로 사서 트렁크에 넣었다. 내친 김에 식자재동에 들러 코다리, 오징어, 김밥용 단무지와 우엉, 아들 좋아하는 매실 음료까지 사는 걸로 시장보기를 마쳤다. 오래, 자주 다닌 시장이라 나의 걸음은 빠르고 동선은 계획적이다. 두 손 가득 짐을 들고 집에 들어와 장본 것들 냉장고에 배치해 넣고 2시가 다 되어서야 늦은 아점을 먹었다. 오늘의 글을 써야 하는데 다리에 찌르르 전기가 흐르는 듯하고 어깨와 허리, 등까지 욱신욱신거려 결국 잠시 눕기로 했다.


암막커튼을 친 어두운 안방에 누워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2시 55분이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곧 저녁 시간이고 나는 또 아들과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해야 한다. 오늘 다녀올 예정이었던 노트북 수리 센터는 내일 오전으로 미뤄야 할 것이다. 저녁 8시 30분부터 1시간 줌보강 수업이 예정되어 있으니 그전에 오늘의 연재를 마쳐야 할 텐데 생각하다가 누워서 핸드폰으로 초고를 쓴다. 오늘 글의 제목은 자연스레 '24시간이 모자라'가 되었다. 딱히 쓸 소재도 없었는데 아침부터 숨가쁘게 달려다니다 글 쓸 시간이 없어 몰려있는 내 마음이 오늘의 이야깃거리가 돼 주었다. 매일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나의 모자란 24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만 가능한 일이다. 내일은 좀, 덜 피곤한 글을 써야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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