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쾌한 주용씨 Feb 17. 2024

선운사 · 선운산 가는 길

전북 고창 여행 ①

2017년에 일을 그만두고 겨울에 두 아들과 제주도 한 달 살기를 했다. 그것을 시작으로 주말마다 남편과 이곳저곳 참 많이 돌아다녔다. 2021년 가을에는 1박 2일로 전북 고창에 다녀왔다. 고창은 처음이었는데 우리 부부의 맘에 쏙 드는 곳이라 나중에 고창에서 살아볼까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고창은 정말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오늘은 고창 여행 기록을 풀어내보려 한다.


코로나 전에는 일하는 여자로 사느라 해외 여행은커녕 국내 여행도 제대로 다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국어 논술 학원의 특성상 주말 수업이 더 많기 때문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여행 한번이 힘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살았나 싶다. 일을 그만두고 남편과 등산에 빠져 감악산, 운악산, 마니산, 소요산, 마이산, 도봉산, 명선산, 내장산, 북한산, 민둥산, 치악산, 주왕산 등 전국에 있는 산을 누볐다. 우리나라에 좋은 곳이 정말 많았다. 그동안 그것을 즐기지 못하고 산 세월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돈을 좀 덜 벌더라도 남편과 여행하는 재미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늦바람이 무섭다고 일을 쉬면서 여행을 다니다보니 새로운 인생을 사는 듯 설레고 신이 났었다.


코로나 때문에 계획했던 해외 여행은 가지 못했지만 우리 부부는 시간 나는 대로 국내 곳곳을 여행하기로 했다. 관광지가 아니더라도 한적한 지방을 돌아다니며 노년에 정착할 만한 좋은 고장도 찾아보기로 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지만 우리 두 아들 독립하고 나면 남편과 조용한 지방에서 자연과 가까이 한가롭게 사는 것이 나의 꿈이 되었다.


일찍 서둘러서 인천에서 아침  6시에 출발했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전북 고창에 도착. 우리 여행의 첫 코스, 선운사를 지나 선운산까지 올라가 보기로 했다.




선운사를 돌다 남편과 내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다. 얼마 전에 박웅현 《여덟단어》 를 다시 읽다가 봤던 사진 속 모습이 우리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휘면 휜 대로 나뭇가지 부분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각각의 모습을 살려서 지었다는' 그 기둥하고 똑같았다. 내 블로그에서 《여덟단어》 리뷰를 찾아 확인해보니 박웅현이 말한 곳은 땅끝마을 해남에 있는 대흥사 침계루였다.


박웅현 《여덟단어》 속 대흥사 침계루
선운사 만세루


색깔이며 모양이 정말 비슷하지 않나? 일을 그만두고 천천히 걷다 보니 내 눈도 '견(見)'을 하려는 구나 생각했다. 선운사에서도 선운산 가는 길에도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보고 느끼게 되었다. 선운사의 만세루를 보며 박웅현이 말한 것처럼 '생긴 모습 그대로 각자의 삶을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다.



꾸미지 않은 것들과 참 잘 어울리는 우리 남편. 나이 들어가면서 이 남자가 참 편하고 든든하고 점점 더 좋아진다. 남편과 여행할 때마다 이 사람과 오래오래 함께 걸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되새기게 된다. 어렸을 때는 느낄 수 없었던 깊고 따뜻한 사랑이다.



진리의 말씀

홀로 행하고 게으르지 말며
비난과 칭찬에도 흔들리지 말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파타 21

내가 너무 좋아하는 말씀을 도솔산 선운사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다시 한 번 마음에 새기게 되는 문장이다. 나도 이렇게 멋지게 살아야지 다짐했다. 선운사 가는 길, 물소리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가슴 답답한 물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뚫릴 같다. 자연과 가까이 살면 우울증 따위는 없을 듯. 남편과 두손 꼭잡고 머지 않은 때에 꼭 도시를 떠나자고 약속했다.


도솔암과 나한전(응진전)


이번엔 진짜 박웅현 《여덟단어》 에 나오는 사진 그대로다. 박웅현도 여기 도솔산 선운사의 '보왕삼매론'을 본 거였다. 이렇게 반가울 수가…



산행의 마무리는 역시 먹거리다. 선운사 아래에서 우거지 해장국과 산채 비빔밥 그리고 소주 한 잔. 밥맛이 없다는 사람들은 산행 한 번이면 고민 해결이다. 등산 후에는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다.



  전북 고창 1박 2일 여행
첫 번째 코스
선운사와 선운산

강력 추천!


우리 부부는 조만간 다시 고창에 갈 예정이다. 3년 전 선운사와 선운산이 그대로 잘 있는지 안부 확인하고 와야겠다.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느리게, 더 보고 느끼며 천천히 걸어볼 생각이다. 당장 고창에 가서 살고 싶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좀 들긴 한다. 그 정도로 고창 여행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다음엔 고창 여행 두번째 이야기다.




이전 14화 우리 부부, 하루 수원 데이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