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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Feb 24. 2024

5,000원 짜리 가방

동대문 시장 구경 후에 종로에서 맛있는 밥상!

요즘 동대문 시장 가보셨나요?


시장을 좋아한다. 집에서도 마트나 쿠팡보다는 시장 가기를 즐겨한다. 혼자서는 신기시장에 자주 가고 주말에 는 남편과 구경 삼아 모래내 시장에 간다. 해산물이 먹고 싶을 때는 연안부두어시장에 가고 야채가 떨어졌을 때는 농산물 시장에 가서 저렴하게 구입한다. 지난 주 일요일에는 남편과 동대문 시장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시장 가는 걸 소풍 가는 것처럼 여기는 아내를 위해 남편이 좀 알아본 모양이다. 큰 패션몰이 즐비하고 그 앞에서는 각종 행사를 했던, 화려한 모습의 동대문이 아니란다. 노점이 가득하고 가격이 말도 안되게 싸다며 한번 가보잔다. 그곳이 어디든 휴일에 남편과 함께 하는 건 무조건 좋고, 거기가 내가 사랑하는 장소 시장이라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신나서 따라나셨다. 우리 부부는 서울에 갈 때는 항상 전철을 이용한다. 시간이 얼마 걸리든 나는 문제될 게 없다. 책 한 권 들고 가면 전철 안이 나에게는 북카페다. 그만큼 전철 안에서 독서 몰입도가 좋다. 지루할 틈 없이 동대문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올라오니 동대문이 눈앞에 딱! 정말 오랜만에 보는 동대문이라서인지 친구를 만난 것처럼 너무 반가웠다.



깜짝 놀랐다. 남편이 미리 얘기는 해줬지만 상상 이상의 모습이다. 골목 곳곳에 끝없이 이어져 있는 노점들과 거리를 빽빽히 채운 사람들. 일요일지만 오전이었는데도 이미 손에 보따리를 몇 개씩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시장은 9시부터 시작이란다. 요근래 본 구경거리 중에 최고였다. 우선 너무 많은 종류에 놀랐고,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가격이다. 너무 싸다. 좋은 브랜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고 집 근처 쇼핑몰에 있는 일반적인 옷이나 신발, 가방과 비교해도 적게는 반 가격, 많게는 10분의 1 가격이다. 물론 물건의 질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잘만 고르면 정말 대박이다.


3,000원 짜리 옷과 신발이 있다. 5,000원 짜리 가방도 있다. 두툼한 패딩 아우터가 3만원에 판매된다. 산이나 공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지긋한 남자분들이 즐겨 입는 패딩은 단돈 1만원에도 살 수 있다. 바닥에 널려 있고 다림질이 안되어 있을 뿐 정말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이 가격이 맞나 싶어 연신 신기했다. 유명 브랜드가 아니어도 한 벌에 8,9만원은 족히 하는 트레이닝 세트가 3만원에서 5만원 정도다. 나는 4만원 짜리 짝퉁 나이키 한 벌을 구입했다. 남녀노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맘에 드는 물건을 고르기 위해 눈을 반짝인다. 상인들도 대체로 친절하다. 싼 가격의 옷을 판다고 해서 얼마 안되는 이윤이라고 해서 손님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 그 점이 특히 맘에 들었다.  



남편은 이것도 입어봐라, 저것도 사지 그러냐 하며 나를 부추겼지만 싸다고 딱히 필요도 없는 것들을 살 필요는 없다. 난 나름 미니멀리스트니까. 2017년 일을 그만두고 3년 남짓 쉬면서 난 미니멀리즘의 매력에 빠졌고 관련된 책들을 읽으면서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소비를 줄이는 것이 훨씬 쉽고 편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비싼 걸 많이 욕심 낼수록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당연히 나를 위한 시간은 줄고 스트레스는 더해질 수밖에. 그래서 나는 소비를 확 줄였다. 가족들은 위한 기본적인 것은 놔두고 주로 나를 치장하는 것들을 사지 않게 되었다. 돈 대신 시간을, 화려함 대신 소박함을 택하고 나니 몸과 마음이 모두 편해졌다. 그런 나라서 동대문 시장 구경은 재미있고 즐거웠지만 우리의 쇼핑 가방은 무겁지 않았다.


종로 3가 역 맛집 뜰아래


시장 구경 후엔 역시 맛집이다. 동대문에서는 갈 데가 만만치 않아서 오랜만에 종로에 가기로 했다. 종로 3가역에서 내려 남편이 찾은 맛집을 찾아 걸었다. 낙원 상가를 지나 아구찜 거리에서 길을 건너니 인사동과 연결된다. 남편이 찾은 곳은 이미 대기자가 12팀이란다. 남편이 기다릴까 했지만 밥 한 끼 먹기 위해 시간을 들여 줄 서는 건 내 취향이 아니라 패스하기로 하고 그 골목 깊숙히 더 들어가 보았다. <뜰아래>라는 오래된 식당이 보였다. 우선 정감어린 식당 외관에 마음이 가고 메뉴가 맘에 든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안이 넓지는 않지만 전통이 느껴져서 좋았다.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구미를 당긴다. 손님으로 앉아 있던 애기 엄마가 나가면서 "청국장이 정말 끝내줘요"라며 엄지척을 해보인다.



애기 엄마의 추천대로 우리는 청국장 정식을 하나 주문하고 황금박대구이를 먹기로 했다. 멋지게 머리가 센, 꽁지 머리의 사장님이 노련한 접대와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오래된 팝이 피곤한 몸을 노근노근하게 풀어준다. 상이 차려지기 전에 도자기에 담겨 나오는 둥글레차가 우아하고 구수하다. 밑반찬 6가지를 시작으로 상이 차려졌다. 나물이 정말 맛있다. 김치는 김장독에서 나온 묵은지처럼 시원하다. 메인 메뉴인 청국장과 박대 구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맛있다. 나물 두 가지는 한 번 더 추가해서 모든 반찬을 싹 비웠다. 원래 가려던 맛집이 얼마나 맛있는 집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부부는 이곳에서 충분히 배부르고 대만족이었다.



집에 와서 우리가 오늘 쇼핑한 걸 늘어 좋았다. 10만 원 남짓으로 정말 다양한 걸 샀다. 남편의 트레이닝 바지(1만원)와 봄에 입을 등산용 바지(1만원), 남편 가죽 벨트(2만원), 런닝과 양말 5개씩(22,000원), 베개커버 2장(5천원), 내가 집에서 입을 트레이닝복 한 벌(4만원) 등, 가장 성공적이었던 품목은 바로 동대문 시장 구경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산 5,000원 짜리 가방이다. 나의 큰 17인치 그램 노트북이 쏙 들어갈 정도로 크고 가볍기까지 하다. 유명한 상표 붙여놓으면 이 가방 하나에 10만원이라고 해도 믿지 않을까. 재미있는 구경 거리, 가성비 최고의 쇼핑, 맛있는 식사까지 우리 부부의 휴일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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