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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31. 2020

여자 엄마 아내 딸 나로 살아온 2020년의 '나'에게

2020년 마지막날, 너무 많은 이름으로 살아온 '나'에게 보내는 편지!

주용아! 2020년 마지막날에 이렇게 너를 나직이 부르니 기분이 참 묘하구나. 한 해의 마무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좀 쑥스럽기는 하지만 2020년의 '나'에게 편지를 쓰기로 했어. 잘 한 일, 후회됐던 일들을 되짚어보며 1년 동안 고생 많았다고 토닥여 주기도 하고 앞으로 더 잘 해보자고 격려와 응원을 해주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 


다사다난했다는 말이 이번 해처럼 잘 어울리는 때는 없었던 것 같아. 이번 일 년 동안 넌 참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고 성과도 얻었어. 여자, 엄마, 아내, 딸, 그리고 '나'라는 많은 이름을 달고 사느라 올해도 참 고생 많았다.


여자 이주용에게…

오늘이 40대의 마지막 날이야.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네. 내일이면 네가 50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사실이야. 거울 속에 비친 너는 더 이상 매끈한 몸이 아니고, 얼굴에 탄력은 줄고 팔자 주름이 진해졌지.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시도했지만 번번히 식이 조절에 실패했어. 안 먹거나 덜 먹으며 살을 뺀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 되어 버렸고 정말 나잇살이라는 무서운 병에 걸렸는지 좀처럼 체중이 줄지가 않네.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예쁜 여자'를 포기하고 싶지는 않아. 외모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내 자존감의 문제이니까. 나이 탓을 하며 생기 없는 얼굴, 뒤룩뒤룩한 몸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새해에는 술 줄이고 식단 관리도 하고 운동도 꾸준히 하면서 피부에도 신경 좀 써보자. 예쁘고 날씬한 50의 너를 기대할게!


엄마 이주용에게…

겁내며 시작한 재수생 큰아들의 엄마 역할도 어떻게든 시간이 흘러 이젠 끝이 보인다. 아침마다 아들 깨워서 스터디 카페에, 미술 학원에 보내느라 참 고생 많았다. 수능 성적이 좋지 않아 큰아들의 입시 결과가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 없지만 재수생 아들의 엄마로 1년을 보내면서 엄마로서 네 마음 근육이 키워졌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현명하게 잘 해 나갈 거라고 믿어. 공부 습관이 들지 않은 작은아들 걱정도 많았는데 네가 국어 공부를 봐 주기 시작한 이후로 국어 성적이 껑충 올랐잖아. 두 아들 어린 시절에 네가 일한다고 잘 돌봐주지 못해서 아이들 성적이 좋지 않은 거라는 자책은 그만해. 이제 와서 그런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니. 대신 너는 그동안 엄마 공부를 했잖아. 자식에게 욕심 부리지 않고, 지켜보고 기다리고 응원하는 엄마가 되기로 한 결심만 지켜가면 돼. 아들들도 노력하는 엄마의 마음 알아줄 거야. 앞으로 두 아들과 더 많이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다. 


아내 이주용에게…

너 그런 생각 하지? 남편이 없었으면 어떡할 뻔 했냐고. 젊었을 때는 뜨거운 사랑, 화려한 표현이 좋아 보이지만 나이들어 갈수록 적당한 온도, 속 깊은 말과 행동이 훨씬 좋은 것 같아. 그런 면에서 네 남편은 참 무던하고 좋은 사람 같더라. 너에게 뭐 해 달라는 것도 없고, 큰소리 내며 화내는 일도 없잖아. 아들들한테는 또 얼마나 잘 하니? 무서운 아빠는커녕 잔소리 한 마디 하지 않는 친구 같은 아빠잖아. 그런 믿음직한 남편이 곁에 있다는 건 진짜 큰복이야. 그러니까 남편한테 좀 더 친절하게 대해줘. 가끔 네 관심과 애정이 아들들에게 쏠려 있는 것 같더라. 나이가 들어도 남자는 애라고 하잖아. 네 착한 남편에게 칭찬도 많이 해 주고 가끔 애교도 부리며 기 좀 살려줘. 앞으로도 친구처럼 산뜻하고 다정한 부부의 모습 기대할게. 


딸 이주용에게…

코로나 탓을 하며 요양병원에 계신 엄마에게 너무 무심했던 한 해였다. 그치? 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2년이 넘었네. 엄마가 요양병원에 계신 지는 그보다 훨씬 더 되었고… 아빠 없이 혼자 병원에 계시는 엄마 마음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는 네 마음은 알아. 그런데 마음은 표현하지 않으면 소용 없는 거잖아. 너 바쁜 건 알지만 엄마한테 좀 더 자주 전화드리면 좋을 것 같아. 말씀은 안 하셔도 엄마가 얼마나 외롭겠니? 자주 연락하지 않는 자식들이 야속할 수도 있어. 특별히 편찮으신 데 없이 요양병원에 잘 계셔서 다행이지만 걷지 못 하시는 엄마가 침대 위에서 얼마나 적적하시겠니? 얼굴을 뵙지 못하는 이런 때일수록 더 자주 엄마 목소리라도 들어야지. 사는 게 바빠서라는 핑계 대지 말고 이틀에 한 번씩은 전화 드려. 지나고 나면 못 해준 것만 기억난다는 거 아빠 돌아가셨을 때 뼈저리게 경험해 봤잖아.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나 이주용에게…

올해는 코로나로 경제가 힘들어지고, 코로나 블루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전체적으로 우울한 한 해였어. 그런데 너에게는 좋은 일이 참 많았던 것 같아. 2018년 10월부터 시작된 블로그 1일 1포스팅은 이번 해에도 계속 이어져서 올해에만 367개의 글을 썼더구나. 너의 글에 공감하고 너를 응원하는 블로그 이웃들도 점점 늘어서 오늘 보니 7,385명이더라구. 매일 글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너의 꾸준함과 성실성은 칭찬받을만 해. 그 덕분인지 8월엔 49살의 나이에 3년 4개월의 경력 단절을 극복하고 재취업에 성공했잖아. 학원 전임 강사로 출근한 지 2주 만에 생애 처음으로 온라인 수업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었을 때 너의 당황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지금은 꽤 익숙하게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으니 오히려 너에게는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던 것 같아. 10월에는 네가 그렇게 되고 싶었던 작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지. 체력적으로 무척 힘든 중간고사 기간이었지만 브런치 작가 신청이 수락되고 브런치북까지 만들어 출판 프로젝트에 응모까지 했잖아. 아주 의욕적인 너의 모습 참 보기 좋았어. 성실하게 글을 쓰고 작가의 삶을 간절히 바랐던 너는 11월에 드디어 출간 계약서까지 쓰는 쾌거를 이뤄냈어. 정말 너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던 한 해였다. 


여자, 엄마, 아내, 딸, 그리고 너 이주용으로 참 열심히 살았다. 힘든 일도 많았고 아쉬운 점도 있지만 이 정도면 잘 해낸 거야. 2020년의 이주용, 정말 수고했다! 

2021년에도 너의 많은 이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응원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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