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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Jan 10. 2021

엄마는 감정노동자다!

재수생 큰아들의 스트레스에 엄마는 속수무책… 그래도 글쓰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지… 입시를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건지… 이러다가 건강을 해치는 건 아닌지… 이럴 때 엄마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재수생 큰아들이 일어나질 못 한다. 아침마다 깨우느라 작은 전쟁을 치르기는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오른쪽 귀를 두 손으로 누르며 미간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아~~~' 하는 작은 신음소리도 배어 나온다. 새벽까지 내린 눈으로 길이 꽁꽁 얼어붙어서 오늘은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원에 가야 할 것 같은데 좀처럼 일어나질 못하고 있다. 


몇 주 전에도 귀에서 물이 나온다고 하고, 가끔 아프다고 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미술 학원에 가야 하니 일요일까지 진료하는 이비인후과를 찾아야 했다. 염증이 있기는 하지만 가벼운 정도라고 했다. 아마도 스트레스로 예민해져서 통증을 심하게 느끼는 것 같단다. 간단한 치료와 처방전을 받아 3일 약을 먹었다. 그 후로 좀 잠잠했었는데 오늘 아침엔 몸을 더 움츠리고 얼굴은 더 일그러졌다. 염증이 심해졌다기보다는 스트레스가 더 심해진 듯하다. 


며칠 전에는 샴프질 할 때마다 머리가 너무 빠져서 스트레스 받는다고 피부과라도 가 보면 안 되겠냐고 했다. 머리와 몸을 심하게 긁기도 한다.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로  큰아들의 몸이 성한 곳이 없다. 안쓰럽고 안타까운데 엄마는 속수무책이다. 마음 한 편으로는 다른 애들도 다 그럴 텐데 좀 강하게 다그쳐야 하나 싶다가도 내 아들이 힘들다는데 그럴 수 있나 싶기도 하다. 


이상적인 생각이지만 모두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스트레스로 얼굴 찡그리지 않고 웃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좋은 대학에 가지 못 해도, 큰 회사에 들어가지 못 해도, 돈을 좀 덜 벌어도, 소박한 삶에 만족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나이 50이 된 엄마는 그럴 수 있는데 이제 스무살인 아들에게 욕심을 버리고 살라고 차마 말할 수는 없다. 


좋지 않은 수능 성적을 가지고 재수생 큰아들은 매일 미술학원에 간다. 월요일부터 금요일은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토요일엔 저녁 6시까지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하루종일 그림을 그린다. 가고 싶은 대학은 아니지만 정시 전형까지 최선을 다해 보고 그 결과로 진로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아침마다 힘겹게 나가서 저녁이면 축 처진 어깨로 들어오는 아들에게 미래에 대한 기대나 희망, 설렘은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그저 답답하다. 빨리 이 힘겨운 시기가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우선 아들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미래에 대해 여유를 갖고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아들이 원하는 곳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아들의 웃음, 건강, 생기, 열정, 의욕… 이런 것들을 보고 싶다.


이제 아들을 깨워서 병원에 다녀와야겠다. 조갯살 미역국에 밥 먹여서 어떻게든 학원에 보내야지. 그래야 나도 아들의 비싼 학원비 벌러 학원에 나갈 수 있다. 언제쯤 이 답답한 상황이 끝나고 아들과 함께 웃으며 힘들었던 오늘을 이야기 할 수 있을지… 하얀 눈의 낭만을 즐길 틈도 없이 마음은 무겁고 몸은 피곤한 아침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행복과 불행 모두가 축복이다. 행복할 땐 행복을 누리고, 불행하다 싶으면 글을 쓰면 되니까. 불행할수록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으니 힘든 세상살이에 글쓰기는 얼마나 달가운 선물인가.
『강원국의 글쓰기』 중에서


이 아침 이 말을 위로 삼아 아들의 아침 밥상을 차리다가 앞치마를 두르고 글을 쓴다. 오늘의 이 기분이 달가운 선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글을 쓰면서 어수선했던 마음이 좀 가라앉은 것만은 사실이다.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엄마는 감정노동자다.

자식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못 한다. 

자식 앞에서는 울고 싶어도 참고 

웃고 싶지 않아도 애써 웃는다.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직장인이 사람을 대하는 일을 수행할 때에 조직에서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감정을 자신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행하는 노동을 의미한다.

감정노동은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다른 감정을 표현해야 할 때 발생하며, 감정노동으로 생긴 감정적 부조화는 감정노동을 행하는 조직 구성원을 힘들게 만들며 감정노동으로 생긴 문제가 적절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경우엔 심한 스트레스(좌절이나 분노, 적대감, 감정적 소진)를 보이게 되며, 심한 경우엔 정신질환 및 자살까지 갈 수도 있다.

- 위키백과


요양 병원에 있는 엄마는 전화해서 괜찮냐고, 어디 아픈 데 없냐고 물으면 항상 괜찮다고, 아픈 데 하나도 없다고 하신다. 전화 자주 못 해서 미안하다고 하면 편하게 누워 있는 사람 걱정할 것 없다며, 몸 챙겨가며 일 하라고 도리어 날 걱정해 주신다. 먹고 싶은 거 없냐고 물어도 병원에서 나오는 밥으로도 충분하다고 손사래를 치듯 대답하신다. 항상 같은 물음, 같은 답이다. 


엄마의 말은 진심이 아니다. 매일 누워 있으니 다리는 점점 힘이 빠지고 허리도 뻐근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얼굴도 못 보는데 자식들이 전화도 자주 안 한다고 서운할 것이다. 2년 넘게 먹는 병원 밥이 지겨울 것이다. 엄마의 진심을 알면서 나는 뻔한 질문을 하고 뻔한 답에 안심한다. 자식은 나이를 먹어도 소용없다. 


내 아들들은 나에게 묻지도 않는다. 나만 자식들을 궁금해할 뿐이다. 자식은 부모가 듣고 싶은 답만 하지 않는다. 가끔은 상처 주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굴 때도 있다. 그런데 서운하다고 말하지도 못 한다. 엄마는 솔직한 사람이 아니라 편하게 해주는 사람이어야 하니까. 자식 앞에서 입바른 소리를 해대는 엄마는 별로다. 


직장도 아닌데, 날 감시하는 상사가 있는 것도 아닌데, 돈을 받는 것도 아닌데, 엄마는 자식 눈치를 보며 자식이 좋아할 만한 말을 골라 비굴한 미소를 띠며 살살거린다. 자식 앞에서는 자존심도 없다. 내 한 몸 망가져서 자식이 잘 되고 행복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천 번, 만 번 무너져 내린다. 힘들다는 말 대신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사는 엄마는 지독한 감정노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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