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주 = 다이어트

나잇살이 아니라 술살이다

by 유쾌한 주용씨

거울 앞에 서면 술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360도 어느 각도로 보나 중년 아줌마의 포스를 풍기는 몸매에 좌절했다. 그때마다 ‘술만 끊으면 다 해결되지 않겠어?’ 하는 자조 섞인 내면의 목소리가 자주 들렸다. 무슨 옷을 걸쳐도 숨길 수 없는 후덕한 풍채가 영 비위에 거슬렸다. 나잇살이라고 넘기기엔 주변에 나이 먹고도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널리고 널렸다. 가볍고 단순한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한다고 말하면서 먹고 마시는 데 시간과 비용, 에너지까지 쏟아붓고 있는 내 꼴이 맘에 들지 않았다.


술을 마시기 시작하면 한 잔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정 과잉이 과음을 부른다. 술에 취한 채로 소화도 시키지 않고 잠자리에 드니 건강한 숙면일 수 없다. 잠을 잤는데도 피곤하다. 얼굴은 퉁퉁 부어서 쌍꺼풀이 희미해져 있다. 물론 습관화된 새벽 5시 기상도 힘들다. 술 마신 다음 날 정상적인 일과가 어렵다는 얘기다. 과음한 다음 날은 계속되는 폭식을 막을 재간이 없다. 알코올을 분해하는 데 엄청난 칼로리가 요구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부터는 아예 허리띠를 풀어 놓는다. 너무나 과학적인 내 몸을 느끼며 먹고 또 먹는다. 이러니 살이 찔 수밖에…….


살을 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단주다. 술만 마시지 않으면 밤 늦게까지 먹을 일이 없다. 나는 술 없이 야식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빵 향기 풍기는 베이커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여자들이 많다고 하지만 난 빵을 포함해 달콤한 간식에 그리 집착하지 않는 편이다. 라면이나 치킨이 생각나서 잠을 못 이루는 부류도 아니다. 하얀 쌀밥에 구수한 된장찌개, 짭조름한 젓갈과 향긋한 나물을 좋아하는 토종 한국인 식성이다. 하루 세 끼 식단과 양 조절을 하며 규칙적인 식사를 한다면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내 생활에 술만 빼면 다른 비용이나 수고로움 없이 덕지덕지 붙은 살을 제거할 수 있다.


아무튼 나는 단주를 결심하고 다이어트에도 성공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러고 나면 꼭 술 마실 일이 생긴다. 그동안 연락도 하지 않던 친구가 오랜만에 만나자고 한다거나, 가족이나 지인에게 축하할 일이 생기거나, 주말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거나……. 전날 술 마시지 않아야 할 이유를 손가락으로 꼽아 보며 '그래, 결심했어!' 했는데 다음 날 오후만 되면 술 마셔야 할 이유가 무수히 쏟아진다. 결국 술잔을 부딪치며 '오늘만!' 하고, '그래, 역시 이런 날엔 마셔줘야지.' 하며, ‘내일부터 절제하자’는 결심을 미리 해둔다. 술을 마시면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꼴이다.


단주 결심 다음 날, 비와 함께 나를 흔들어 놓을 만한 문자가 도착했다.

“주용아~ 비가 와서…”

술친구로 친하게 지내는 아는 언니였다. 비에 얽힌 무슨 사연이 있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비를 좋아하는 내게 단주 결심을 무너뜨릴 만한 유혹이었다. 비가 내리면 파전에 막걸리를 생각하는 것처럼 혼술이든 남편과의 한 잔이든 반가운 지인의 낮술 제안이든, ‘비 오는 날, 술 한 잔’은 절대로 거절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주용씨, 오늘 비도 오는데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어때요?”라고 데이트 신청하는 남자가 있으면 그날이 바로 1일이라는 농담까지 했을까.


술값도 척척 내는 술친구 언니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단호하게 나의 단주 결심을 선언하듯 전했다.

“그래, 건강을 위해 좋은 생각이기는 하지. 하지만 우리처럼 술로 삶의 희로애락을 푸는 사람들에게 술을 끊는다는 건 스트레스고 오히려 정신적으로 병이 생길 수도 있어.”

꽤 설득력 있는 언니의 말이었다. 그래도 한 번은 시도해보고 싶노라고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했다.

“내가 장담하는데 주용이 너 보름 못 넘기고 술 마시게 될 거야.”

나와 숱하게 술잔을 부딪히며 나를 지켜본 언니의 장담에 잠시 몸이 후덜덜, 휘청였다.

“그래도 언니는 보름까지 보는 거야? 나는 일주일도 고비라고 보는데? 하하하”

정신 차리고 너스레를 떨며 여유를 부렸다. 일단 단주 결심 후 첫 고비는 무사히 넘긴 셈이다. 전화를 끊고 대견한 자신을 토닥였다. 보름도 못 넘길 거라는 말을 다시 떠올렸다. 꼭 보름은 넘기고 싶어졌다.

‘그래, 지금 내 몸과 마음이 단주를 원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시험해보자구.’

주변 사람들이 실패를 장담하는, 이 대단한 일을 이번엔 꼭 해내고 싶어졌다. 오기가 뻗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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