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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쾌한 주용씨 Dec 30. 2021

"선생님은 진심이야"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학원에서 논술 수업을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이 지났습니다. 송도 학원가의 국어 전문 학원 원장님께 논술 수업 제안을 받았을 때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읽고 쓰는 일이 너무 좋아 국어 전임 강사를 그만두고 당분간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아보자 마음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책과 글이 나에게 살아갈 방도까지 마련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내게 논술팀장 제안은 참 시의적절한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국어 수업과는 다른 재미와 보람이 있을 거라는 기대가 컸습니다. 한편으로는 인천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는 송도 신도시 엄마들을 과연 내가 만족시킬 수 있을지 걱정도 만만치 않았죠.  


 처음 가 본 송도 학원가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논술 프랜차이즈가 다 있다고 할 정도로 국어 논술 전문 학원이 정말 많았습니다. 잘 알려진 교육 브랜드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름으로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논술 학원 간판들이 즐비했어요. 20년 넘는 국어 강사 경력이 논술 수업에는 그리 큰 보탬이 되는 것 같지 않았고, 그저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뛰어들기에는 좀 무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필독 도서 선정부터 수업 커리큘럼 구성과 활동지  만드는 것까지 직접 하겠다고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이미 완벽한 커리큘럼과 수업 체계, 홍보 방법까지 갖춘 기존 프랜차이즈 학원과 상대가 될 지는 해봐야 아는 일이니까요. 


 처음에는 2021년 남은 4개월 동안만 도전하고 시도하고 버티면서 제가 만든 수업에 대한 반응을 보자는 마음이었습니다. 신입생 상담부터 학생 관리, 매달 수업 구상까지 해야할 일이 많았지만 일주일에 단 3일만 수업하고 4일의 재충전 시간을 가지며 조금씩 수업의 완성도를 높여갔습니다.  다행히 제 수업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학부모님들이 점점 늘었고, 수업 시간 내내 아이들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올해의 부족했던 점을 보완해서 내년 2022년에는 정말 프로패셔널한 논술 선생님이 되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갖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논술 수업은 월 4주 수업으로 매월 5주 차에는 학부모님들과 개별 전화 상담을 진행합니다. 이번이 벌써 네 번 째네요. 전화를 드릴 때마다 제 수업에 부끄러움은 없었는지 반성합니다. 그리고 학부모님의 기대치에 못 미쳤을까봐 걱정합니다. 따뜻한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올바른 스승의 태도로 아이들의 성장을 돕고자 애썼지만 지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거든요. 그래서 학부모님들과 상담을 마치고 전화를 끊을 때마다 다음 달에는 더욱 열과 성을 다해야겠다고 다짐하곤 합니다. 


 어제와 오늘에 걸쳐 올해의 마지막 상담 전화를 하는 중입니다. 다른 논술 수업하고는 확실히 다르다며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는 반응이 많습니다. 아마도 고정화된 프랜차이즈가 아닌, 유연성 있고 비교적 자유로운 제 수업이 아이들에게는 편안하고 흥미로웠던가 봅니다. 아이들에 대해 어머님들과 수다를 떨면서 책, 글, 말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제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감 막중한 일이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정말 잘 해야겠다고 곱씹어 생각합니다. 



 보통 오후 3시에서 5시 정도에 상담을 진행하는데 어젯밤 9시 넘어서 상담하기로 한 학부모님이 계셨습니다. 고3 학생들 피아노 입시 지도를 하신다는 어머님이신데 요즘 한창 바쁠 때라 어쩔 수 없이 밤 늦게 통화를 했네요. 사실 *준이가 3월에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다는 소식을 며칠 전에 어머님을 통해 전해들은 상태였습니다. 1월부터 시작하는 초등 5학년 역사 논술 프로그램은 5개월 과정이라 중간에 빠지면 학원에 폐가 되는 것 같아 학원을 그만둬야 한다고 아이에게 말씀하셨답니다. 그런데 *준이가 논술 학원은 끝까지 다니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더랍니다. 그래서 전학 가는 날까지는 어떻게든 수업을 진행하기로 해 둔 상태였죠. 


 어머니께서 너무 궁금해서 물었답니다. 다른 학원에 대해서는 그러지 않으면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논술 수업은 왜 끝까지 다니고 싶어 하냐고요. 그랬더니 초등 4학년 남자 아이가 '선생님은 진심'이라고 하더랍니다. 처음에는 어머님이 하시는 말씀을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그래서 '*준이가 뭐라고 했다고요?' 라며 다시 여쭸더니 아이가 '논술 선생님은 수업에 진심'이라고 했답니다. 


선생님은 진심이야



 세상에, 이런 감동적인 멘트가 또 있을까요? 갑자기 울컥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주시는 어머님도 처음에 아이에게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먹먹해지더랍니다. 그 어머님도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선생님의 진심을 알아주는 아이가 놀랍기도 하고, 제게 이 말을 꼭 전해줘야겠다고 생각하셨답니다. 상황을 봐서 서울로 학교는 옮기더라도 금요일 저녁에 하는 제 수업은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 보시겠다고 하십니다. 혹시라도 수업을 못 하게 되더라도 아이에게 논술 선생님과의 기억은 오래 남을 거라며 감사하다고 하시네요. 


 어제 늦은 밤 제 진심을 알아준 초등 4학년 아이 덕분에 설레고 뿌듯하고 행복했습니다. 올해가 가기 전 아주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앞으로 아이들 앞에 설 때마다 더욱 진심을 다할 것입니다. 아이들이 독서와 글쓰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찾아 몸으로 전하려고 합니다. 저와의 수업은 길어야 몇 년이 다겠지만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에 든든한 힘을 실어주고 싶습니다.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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