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태까지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게 생각했던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을 직무 요인으로도 본다는 자료를 접하고, 내 상황을 예로 비교해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큰 충격에 빠졌다.
모든 이론이 정답만을 얘기하고 있진 않지만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위계 욕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삶을 유지하는데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로 시작하여'안전욕구', '사회적 욕구(소속감, 애정 등)', '자아존중감의 욕구'는 [결핍 욕구]로써 인간으로 당연하게 충족하려 하는 욕구이다. [결핍 욕구]들이 충족되어야지만 [성장욕구]를 성취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개인의 삶에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지적 욕구', '심미적 욕구', '자아실현 욕구'와 같은 [성장욕구]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더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이며, 완전하게 충족될 수 없는 무한한 욕구이다.
이러한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은 직무에서도 적용된다고 보기도 한다. 가장 하위 욕구 단계인 생리적 욕구부터 적용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생리적 욕구(은신처, 물, 음식 등)
: 기본 급여, 근무 조건 등
안전 욕구(안정, 안심, 안전 등)
: 직업 안정, 특별 급여 등
사회적 욕구(친선, 수용, 애정 등)
: 전문적 친선, 경쟁적 작업 집단 등
존경 욕구(인정, 자기 존중, 타인으로부터 존경 등)
: 직책, 지위 상승, 승진
자아실현 욕구(진보, 성취, 성장 등)
: 도덕적 직무, 조직 내 발전, 일의 성취
매슬로우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된 욕구는 약해져 동기유발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며, 다음 단계의 욕구가 주 동기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휴직을 하게 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속한 학교에서 내가 더 이상 할 게 없어.'였는데, 이 말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충분히 설득을 할 수 없는 근거 모를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졌고, 그냥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매슬로우 욕구 위계 이론을 조직 요인으로 보았을 때, 난 충분히 그런 느낌을 받을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할 게 없었다.
내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기에 충실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내 동기를 다 이뤄버린 것이다. 충족된 욕구는 동기 유발을 하지 않기에 상위 욕구를 추구하려 하게 된다는데, 다 이뤄버려서 더 추구할 욕구가 없었다. 하던 것들보다 더 큰 실천을 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립학교라는 환경적 틀이 그 이상을 불가능으로 막아두고 있었다. 이는 핑계일 수 있으나, 내 나이, 능력, 성격, 지위, 노력 등 모든 면에 최선을 다하고도 해쳐나갈 수 없는 벽과 같은 틀이 있었다.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 수많은 도전과제의 해결, 높은 스스로의 성취, 집단 내 영향력, 수많은 경험, 나만의 노하우 등은 그 틀 안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말라버린 우물 안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바쁘면서도 답답했고, 재미없고, 뻔하고, 화가 나고, 허무하고 그랬었나 보다. 그렇게 성취하기 힘든 최상위 욕구를 해결했는데, 앞 단계 욕구들은 다 충족되어 있는데, 이를 어쩌나. 나 혼자 너무 감당하기 힘들고 지쳤던 게 이제야 위로가 된다. 그래서 쉬고 싶었구나, 그래서 멈추고 싶었구나, 그래서 내 시간이 아까웠고, 내 노력과 내 젊음이 아까웠구나.
남들과 다른 상태의 내 모습에 공감과 위로를 받기보다는 주변 선생님들에게 유독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 되고, 조언을 받는다는 게 스스로의 목표를 낮추고, 꿈을 접고, 안일해지라는 말에, 맞나? 하고 흔들렸었던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나를 알아봐 준 나에게 또 한편으로는 고맙고, 대견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