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랄코튼 May 06. 2021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는 곳

휴직 일기 2. 수고 많았어 그동안

   여태까지 대수롭지 않게 당연하게 생각했던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을 직무 요인으로도 본다는 자료를 접하고, 내 상황을 예로 비교해 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큰 충격에 빠졌다.


   모든 이론이 정답만을 얘기하고 있진 않지만 매슬로우(Maslow)의 욕구 위계 욕구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다. 삶을 유지하는데 기초적인 욕구인 '생리적 욕구'로 시작하여 '안전욕구', '사회적 욕구(소속감, 애정 등)', '자아존중감의 욕구'는 [결핍 욕구]로써 인간으로 당연하게 충족하려 하는 욕구이다. [결핍 욕구]들이 충족되어야지만 [성장욕구]를 성취할 수 있게 되고 무엇보다 개인의 삶에 평온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지적 욕구', '심미적 욕구', '자아실현 욕구'와 같은 [성장욕구]는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나아가고자 하는 욕구이며, 완전하게 충족될 수 없는 무한한 욕구이다.


   이러한 매슬로우의 욕구 위계 이론은 직무에서도 적용된다고 보기도 한다. 가장 하위 욕구 단계인 생리적 욕구부터 적용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생리적 욕구(은신처, 물, 음식 등)

 : 기본 급여, 근무 조건 등

안전 욕구(안정, 안심, 안전 등)     

: 직업 안정, 특별 급여 등

사회적 욕구(친선, 수용, 애정 등)   

: 전문적 친선, 경쟁적 작업 집단 등

존경 욕구(인정, 자기 존중, 타인으로부터 존경 등)   

: 직책, 지위 상승, 승진

자아실현 욕구(진보, 성취, 성장 등)

: 도덕적 직무, 조직 내 발전, 일의 성취


   매슬로우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된 욕구는 약해져 동기유발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게 되며, 다음 단계의 욕구가 주 동기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고 한다. 더 나아가 궁극적으로는 자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휴직을 하게 된 수많은 이유 중 하나는 '지금 속한 학교에서 내가 더 이상 할 게 없어.'였는데, 이 말을 하고 있는 나 스스로도 충분히 설득을 할 수 없는 근거 모를 표현이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졌고, 그냥 나는 그렇게 느낀다고 했다. 그런데 매슬로우 욕구 위계 이론을 조직 요인으로 보았을 때, 난 충분히 그런 느낌을 받을만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할 게 없었다.


   내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동기에 충실한 편이다. 그런데 내가 속한 집단에서 내 동기를 다 이뤄버린 것이다. 충족된 욕구는 동기 유발을 하지 않기에 상위 욕구를 추구하려 하게 된다는데, 다 이뤄버려서 더 추구할 욕구가 없었다. 하던 것들보다 더 큰 실천을 하면 되지 않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립학교라는 환경적 틀이 그 이상을 불가능으로 막아두고 있었다. 이는 핑계일 수 있으나, 내 나이, 능력, 성격, 지위, 노력 등 모든 면에 최선을 다하고도 해쳐나갈 수 없는 벽과 같은 틀이 있었다. 나이에 비해 빠른 진급, 수많은 도전과제의 해결, 높은 스스로의 성취, 집단 내 영향력, 수많은 경험, 나만의 노하우 등은 그 틀 안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마치 말라버린 우물 안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바쁘면서도 답답했고, 재미없고, 뻔하고, 화가 나고, 허무하고 그랬었나 보다. 그렇게 성취하기 힘든 최상위 욕구를 해결했는데, 앞 단계 욕구들은 다 충족되어 있는데, 이를 어쩌나. 나 혼자 너무 감당하기 힘들고 지쳤던 게 이제야 위로가 된다. 그래서 쉬고 싶었구나, 그래서 멈추고 싶었구나, 그래서 내 시간이 아까웠고, 내 노력과 내 젊음이 아까웠구나.


   남들과 다른 상태의 내 모습에 공감과 위로를 받기보다는 주변 선생님들에게 유독 특이한 사람으로 낙인 되고, 조언을 받는다는 게 스스로의 목표를 낮추고, 꿈을 접고, 안일해지라는 말에, 맞나? 하고 흔들렸었던 과거의 나에게 너무 미안해진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게 나를 알아봐 준 나에게 또 한편으로는 고맙고, 대견함을 느낀다.

 

내 자신아,

그동안 정말 수고 많았다 정말.








작가의 이전글 각자가 선택한 절대적으로 가치로운 삶이 있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