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봄 Jul 23. 2023

[책리뷰]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인생만사 새옹지마 (塞翁之馬)



새옹지마 (塞翁之馬).

'새옹'이라는 노인의 말 (馬).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되기도 한다.


중국 국경 지방에 '새옹'이라는 노인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노인이 기르던 말이 국경을 넘어 오랑캐 땅으로 도망쳤습니다. 이에 이웃 주민들이 위로의 말을 전하자 노인은 “이 일이 복이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태연자약(泰然自若)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말이 암말 한 필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주민들은 “노인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며 축하하였습니다. 그러나 노인은 “이게 화가 될지 누가 압니까?” 하며 기쁜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노인의 아들이 그 말을 타다가 낙마하여 그만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이 다시 위로를 하자 노인은 역시 “이게 복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오.” 하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북방 오랑캐가 침략해 왔습니다. 나라에서는 징집령을 내려 젊은이들이 모두 전장에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고사성어랑 일촌 맺기]


개인적으로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한 고사성어라고 생각해서 늘 마음에 품고 다니는 말이다. 새옹지마 (塞翁之馬). 이를 풀어낸 데에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보다 더 딱 맞는 표현이 있을까.


제목을 보자마자 구매해서 읽은 데에는 이런 이유였다. 아직은 많이 살았다고 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주 적지도 않은 나이인 30대. 고난이 약이 되어 돌아온 추억도, 행복이 독이 되어 돌아온 경험도 여러 차례 겪은 뒤라 더욱더 이끌렸던 책이다.


이 책은 류시화 시인이 여행 중 또는 일상의 에피소드에서 얻었던 깨달음에 관한 단편들을 담담하게 엮어낸 이야기 모음집이다. 마음에 와닿는 부분에 하이라이트 표시를 하거나 책갈피 표시를 했는데, 거의 모든 페이지를 마크하게 되어버렸다. 


인생이라는 소명


자신의 소명을 사랑하면 필시 세상도 사랑하게 된다. (...) 그런 시적인 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이 시인임을 기억할 때, 모든 예기치 않은 상황들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때 삶이라는 이 사건이 글을 쓰기 위한 선물로 바뀌었다.

 

 작가는 시인이라는 인생의 소명을 받아들여 삶의 밝고 어두운 매 순간들을 글을 쓰기 위한 선물로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생 본연을 오롯이 느끼는 길이었다고...

 나는 어떨까. 아주 어렸을 때 과학을 선택한 이후부터 계속하여 과학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으니, 이것이 나의 소명이라고 봐도 되는 것일까? 그간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려고 해도 자꾸자꾸 다시 이 길로 돌아오게 만드는 여러 순간들이 있었다. 사실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할지 지금도 자신은 없지만, 주체성을 가지고 꾸준히 해 나간다면 내 삶도 하나의 큰 선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이 삶에서 진실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축복할 수 있으므로. 당신과 나, 우리는 어차피 천재가 아니다. 따라서 하고 또 하고 끝까지 해서 마법을 일으키는 수밖에 없다.      


상처와 극복


모든 상처에는 목적이 있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가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우리를 치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상처는 우리가 자신의 어떤 부분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정확히 알려준다. 돌아보면 내가 상처라고 여긴 것은 진정한 나를 찾는 여정과 다르지 않았다. (...) 축복을 셀 때 상처를 빼고 세지 말아야 한다.


 한 때 나도 '왜 나에게만!'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나의 상처를 훈장처럼 떠들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고난이 경험이 되면 약이 되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그게 너무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었다. 하지만 버티고 돌아보니 그때 그러한 일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피부과에서 레이저 치료를 받는 것도 비슷한 원리라고 한다. 흉이 있는 자리에 레이저로 작은 상처를 내어서 새 살이 나는 것을 돕는 것이다. 너무 아팠어서 인정하기는 힘들지만, 이렇듯 상처는 정말 어찌 보면 축복처럼 다가와 나를 발전시키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인연

우리가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좋아지고 가장 나다워지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를 멀리하고 기피하는 이유는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나 자신이 싫어지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 삶이라는 여행의 한 구간을 그런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행운이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점점 더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하게 된다. 학창 시절에는 아무래도 같은 반에 배정되었다거나 사는 곳이 물리적으로 가깝다거나 하는 이유로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연이 많다. 그래서 학년이 올라가거나 이사를 가지 않는 한 peer pressure (또래집단에서의 압력)를 느끼며 견뎌내야 하는 관계도 꽤 있었다. 그러면서 사회성도 기르고 함께하는 법도 배우면서 말이다.

그런데 너도 나도 나이가 들어가며 자신의 삶을 사는 데에도 에너지가 부족한 시기에 들어서면, 차 한잔 마실 시간도 겨우 내어야 하는 시기가 오면, 굳이 서로 안 맞는 사람과 만나서 맞춰갈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게 된다. 그래서 더욱더 함께 있을 때 나다워지는 사람이 귀하다.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가지치기가 안된 나무가 과수원을 망가뜨리듯 정리되지 않은 관계는 인생을 고갈시키고 불만족과 고통의 원인이 된다. 관계의 가지치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관계가 순수한 기쁨을 주는가? 서로에 대한 존중과 존경이 자리하고 있는가? 자기희생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결과와 성장을 가져다주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 관계와 작별하는 것은 잘못이거나 이기적인 일이 아니다. 전생의 빚을 갚는 중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 수달로 살아갈 이유가 없다.


오래된 인연일수록 또 내가 당장 너무 외로울수록 끊어내지 못하는 관계가 있다. 분명 만나면 만날수록 기분이 안 좋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마음으로는 멀리해야 하는 사람임을 알지만, 그간 함께한 추억이 발목을 잡는다. 또 이렇게 하나하나 멀리하다간 결국 혼자 남는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그래서 관계의 가지치기에 '용기'가 필요하다고 표현한 것 같다. 비워내야 그 자리에 더 유익한 사람이 들어오는 데 말이다. 나에게도 상대방에게도.


모든 일은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일어나며, 모든 만남에는 의미가 있다. 누군가는 내 삶에 왔다가 금방 떠나고 누군가는 오래 곁에 머물지만, 그들 모두 내 가슴에 크고 작은 자국을 남겨 나는 어느덧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당신이 내 삶에 나타나 준 것에 감사한다. 그것이 이유가 있는 만남이든, 한 계절 동안의 만남이든, 생애를 관통하는 만남이든.


저스틴 비버가 아내를 생각하며 쓴 곡인 Lifetime이라는 노래 가사에도 이런 부분이 있다.

Some people come in your life for a reason
Others they come in your life for a season
Baby, you are a lifetime

어떤 사람들은 이유가 있어서 인생에 찾아와요
어떤 사람들은 한 계절동안에만 찾아오죠
Baby, 당신은 제 인생이에요

저스틴 비버와 헤일리 비버 https://youtu.be/vxfIM13HZ20?t=66


이렇듯 수많은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글이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일을 겪고 공감했다는 것 아닐까. 내 인생에도 여러 사람들이 왔다 갔는데, 또 어떤 사람들이 뭘 남기고 뭘 가져가면서 내 인생의 부분 부분을 함께할지 궁금하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만약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수 있다면, 전체 이야기를 안다면, 지금의 막힌 길이 언젠가는 선물이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게 될까? 그것이 삶의 비밀이라는 것을.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은 지나간 길이 아니라 지금 다가오는 길이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의 여정에서 막힌 길은 하나의 예시이다. (...) 삶이 때로 우리의 계획과는 다른 길로 우리를 데려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길이 우리 가슴이 원하는 길이다. 파도는 그냥 치지 않는다. 어떤 파도는 축복이다.


파워 J였던 예전의 나는 매일의 계획, 매주의 계획, 매달의 계획과 매년, 10년 단위, 평생의 계획을 세웠으며 계획을 세울 시간을 계획했다. 그런데 삶이 여러 차례 나의 계획을 쓸어버리고 전혀 다른 길로 데려다주었다. 처음 겪을 때는 심장이 찢어지는 (!) 고통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안다. 세상이 데려다주는 길이 내 계획보다 훨씬 좋은 경우도 많다는 것을. God's plan is bigger than my dream (신의 계획이 나의 꿈보다 크다)라는 구절도 있지 않은가.


유명한 인생 기찻길 인터뷰


책에는 이 이외에도 인상 깊은 구절이 더 많이 있는데, 그걸 다 옮기다간 전권을 필사해 버릴 것만 같다. 지치고 힘들 때마다 꺼내 읽어서 5번 넘게 읽은 것 같은데, 같은 부분이라도 크게 다가오는 날도 있고 이게 이런 뜻이구나 하는 걸 뒤늦게 깨달은 날도 있었고... 요즘 내 삶의 큰 위로가 되는 영양제 같은 책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리뷰] 람세스 Raméses, 크리스티앙 자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