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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Feb 19. 2020

[책리뷰] 람세스 Raméses, 크리스티앙 자크

빛의 아들 이집트 파라오 람세스 2세의 일대기

책리뷰 - 람세스 Rameses,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문학동네, 2002



 람세스 - 전 5권, 크리스티앙 자크 지음, 문학동네, 2002

그 누구도 믿지 말아라. 네게는 형제자매도 없을 것이다. 네가 많이 베풀었던 사람들이 너를 배반할 것이며, 네가 부유하게 만들어주었던 사람이 등 뒤에서 너를 칠 것이며, 네가 손을 뻗어 도와주었던 사람이 너에게 반기를 들도록 선동할 것이다. 너의 신하들과 측근들을 믿지 말아라. 너 자신만을 믿어야 한다. 불행의 날이 오면, 아무도 너를 돕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의 전설적인 통치자 람세스 2세의 일대기를 소설화한 작품이다. 5 권이라는 양이 많아 보일 수도 있지만, 정말 재밌어서 읽는 내내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다 읽고 나니 마치 장편 영화 한 편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


철없이 자신의 넘치는 활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우당탕탕 발랄한 청소년 시절부터, 시련과 우여곡절을 거쳐 많은 걸 배우고 나라를 통치하다가, 어느새 노년이 되어 삶을 되돌아보는 모습까지...

일다보면 나도 모르게 람세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람세스 1 권 빛의 아들 

 이야기는 람세스의 청소년기부터 시작된다. 람세스는 이집트의 둘째 왕자로, 혈기왕성하고 친구도 많으며 공부보다는 운동을 더 잘하는 리더 타입의 소년이다. 람세스를 중심으로 5명의 친한 친구들이 어렸을 때부터 같은 학교에서 함께 공부하며 자라는데, 후에 람세스 곁에서  요직을 맡으며 큰 도움을 주게 된다. 당시 파라오인 아버지 세티는, 그가 궁전에 사는 왕자 치고는 너무 활동적이고 산만한 면이 있다고 판단해 여러 가지 단련을 시켜 좀 더 진중하고 어른스러운 파라오답게 만든다. 가르침을 잘 따라 람세스는 주체할 수 없는 마음속의 열정을 잘 길들이는 법을 배워 유용하게 쓸 줄 아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게 되고, 결국 서열 1위였던 형 셰나르를 밀어내고 23세의 젊은 나이에 파라오 자리에 오르게 된다. 


람세스 2 권 영원의 신전 

 잘 자란 파라오는 람세스가 훌륭하게 나라를 통치하게 되며 이집트 파라오들의 가장 큰 사업인 신전 짓기도 시작해낸다. 그러나 형 셰나르와 마법사 오피르를 주축으로 하여 람세스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스멀스멀 나오기 시작한다. 

실제 람세스 2세는 '조숙한 천재' 이미지를 백성들에게 각인시키고 그의 힘과 위용을 과시하는 데에 큰 힘을 쏟기 위해 많은 신전을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람세스 3 권 카데슈 전투 

파라오로서의 자신의 권력을 안정시킨 람세스는 전쟁을 통해 슬슬 나라를 넓혀 나간다. 그러나 아무리 무적인 람세스라도 카데슈 전투에서는 매우 고전하게 된다. 특히 가장 강력한 적국으로 나오는 히타이트와의 외교전이 치열한데, 히타이트는 마치 우리나라 삼국 시대로 치면 고구려 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이다. 춥고 전투적이고 비옥한 땅이 필요한...

이때 외교관인 람세스의 친구 아샤가 이집트와 히타이트 사이에서 외교전을 치르는데 모두를 깜박 속이고 멋진 외교술을 보여준다. (반전이 재미있었던 아샤 스토리... 아샤가 실존 인물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람세스 4 권 아부 심벨의 여인 

 람세스에게는 아내가 두 명 있는데, 첫째 아내가 네페르타리, 둘째 아내가 이제트이다. 두 여인의 분위기는 매우 다른데, 네페르타리는 분위기 있고 고상하고 신을 공경하며, 취미로 미적분을 푸는 (...) 중전 스타일의 현모양처 여성상이다. 반면 이제트는 아름답고 화려하며 매력적인 여자이고 람세스의 정열에 해당한다. 

 람세스는 네페르타리를 향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건물 이곳저곳에 네페르타리의 석상이나 벽화를 많이 남겼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선물은 실제 이집트에 남아 있는 피라미드 아부 심벨 (Abu Simbel)에 새겨진 네페르타리 신전 (Temple of Nefertari)이다.

Temple of Nefertari (출처- Wikipedia)


무엇보다도 4권의 하이라이트는, 람세스의 5명의 친구 중 하나였던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데리고 이집트를 떠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성경에도 기록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데, 구약성서의 출애굽기에는 이집트인들에게 박해받던 히브리인들이 하느님께 계시를 받은 모세를 따라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고 소개된다. 이 이야기를 담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에서는, 이집트의 왕족인 줄 알고 자란 모세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어서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다가 자신을 추적하는 이집트 인들에게 쫓겨 바다 앞에 도착하니 물이 갈라져 길을 터주는 것으로 그려진다.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 (The Prince of Egypt, 1998, 드림웍스). 당시 최고 가수였던 머라이어 캐리와 휘트니 휴스턴이 OST에 참여했다.

람세스 소설에 나온 줄거리는 이와 조금 다르게 이집트 인들의 관점에서 쓰여 있다. 이집트인은 여러 신을 믿고 히브리인은 유일신을 믿었기 때문에 종교적 갈등이 쟁점이 되어 있다는 배경으로 소개된다. 

람세스의 친구 모세는 마법사 오피르의 말에 흔들려서 점점 유일신을 믿게 되어 이집트를 떠나겠다고 람세스를 계속 설득하고, 이에 이집트 시민들 사이에 큰 혼란이 오게 된다. 결국 사태를 보다 못한 람세스가 괴로워하며 보내준다.

현재까지 남아있는 여러 증거들로 보아 모세가 히브리인을 이끌고 이집트를 떠난 일은 사실인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한 가지 이야기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이게 역사의 묘미 같은 것일까? 


람세스 5 권 제왕의 길 

노년의 람세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러나 늙은 왕이라고 해서 이빨 빠진 호랑이 마냥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점점 물이 올라서 중후하고 노련한 멋진 파라오의 모습을 보여준다. 히타이트 제국과는 평화 협정을 맺고 적들은 하나하나 다 제거된다.

 5권에서는 마지막 권 답게 웬만한 등장인물들이 다 하늘나라로 떠난다. 람세스가 워낙 오래 살아서 그런 것도 있지만... 아무튼 적이건 아군이건 거의 다 죽고, 결국 아들 메렌프타에게 이집트를 넘겨주고 람세스 2세도 89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게 된다.  

(이후 메렌프타 시절부터 이집트는 점점 기울기 시작한다고 한다.)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

한 편의 영화를 보듯,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미있게 뚝딱 읽은 시리즈였다. 전형적인 영웅 서사의 스토리라인이라 읽기에도 재미있었지만,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답게 중간중간에 실제 이집트 인들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한 부분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파라오가 이가 아픈데 무슨 나무를 이용해서 이러저러하게 치료를 했다던지, 아내가 아이를 낳을 때 어떤 향약을 이용했다던지 하는 세세한 이야기들이 자주 나왔다. 

알고보니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 Christian Jacq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이집트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집트학 학자시라고 힌다. 이집트에 대한 심도있는 지식을 바탕으로, 이 소설 이외에도 이집트에 관한 여러 다른 책을 출간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끄신 분이라고 한다. 

그 덕분에 소설은 이집트의 당시 현실 고증서로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찬사를 받는 반면, 책 속 람세스의 영웅 에피소드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이야기처럼 조금은 극적으로 과장되었다는 평이 있다고도 한다. 


 당시에 책을 읽고 갑자기 이집트가 너무 흥미롭게 느껴져서 창해 ABC 북에서 출판된 '고대 이집트'라는 책도 추가로 읽은 기억이 있다. 사전처럼 용어 설명 위주로 나와 있는 책이라 얇고 주로 생생한 사진이 많이 나와 있었다. 


소설을 읽고 나서 이집트에 대한 설명을 보게 되니, 마치 영화 보고 그 세트장을 방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의 우리 모습은, 현재 우리가 지은 건물들은, 후대에 어떻게 기록되고 기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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