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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Jul 30. 2023

양자역학은 그녀의 마음과 같다

고백하기 전까지 모르는 그녀의 마음, 측정할 때까지 알 수 없는 양자

양자역학은 그녀의 마음과 같다


유퀴즈 온 더 블록이라는 프로그램에 물리학 김상욱 교수님이 출연하셔서 요즘 핫한 키워드인 양자역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설명을 들어도 이해하기 어렵다며 조세호 씨가 이런 말을 했다.


양자 역학은 그녀의 마음과 같다.


재미로 하신 멘트 같았지만, 나는 순간 이것이야말로 양자역학의 성질을 관통하는 정말 좋은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양자 역학은 정말로 ‘그녀의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양자 역학, 그녀의 마음으로 쉽게 이해해 보도록 하자. 




그녀의 마음속에는 누가 있을까?


연애 프로그램에 '양자'라는 분께서 출연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녀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다. 그중, 상철과 영식이 양자 씨에게 호감을 보였다.


양자야 나 영식인데!


상철과 영식은 슈퍼 데이트권을 이용하여 양자 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어필하였다. 양자 씨도 그런 그들이 싫지 않았는지 맛있는 것도 먹고 데이트도 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양자 씨는 상철과 영식 중 누구를 선택할까? 그녀의 마음에는 누가 있을까?



선택의 순간이 오면 양자는 상철이나 영식 중 둘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하지만 선택을 하기 전까지 양자의 마음속에는 상철이도 좋아할 수 있고 영식이도 좋아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양자 역학이다.


양자가 A 위치에 있는지 B 위치에 있는지는 측정하는 순간 결정된다. 하지만 측정하기 전까지 양자는 A와 B 어디에도 갈 수 있고, 동시에 갈 수도 있다.


슈뢰딩거라는 학자는 이를 상자 속의 고양이에 비유하였다. 덮여 있는 상자 속에 고양이와 독이 든 컵이 있는데, 양자가 A 위치로 가면 상자 속 독을 서 고양이가 죽게 되고 B 위치로 가면 고양이가 산다. 따라서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 고양이는 죽어있을 수도 있고 살아있을 수도 있다. 이것이 많이 회자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다.


그런데 이게 왜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꼭 선택을 해야 하는 거지?


고전역학에서는 물체가 꼭 반드시 A 위치 아니면 B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시에 한 곳에 있는 게 불가능하다'라고 여겼는데, 이를 거스르는 양상을 보여준 것이 양자역학이다.


다시 그녀의 마음에 비유해 보자. 고전역학에서는 최종 선택을 하기 전 양자 씨의 마음속에는 반드시 상철과 영식 중 누군가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양자 씨는 이미 둘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아직 말을 안 해서 모른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양자 역학에서 양자 씨의 마음은 상철과 영식을 동시에 좋아할 수 있다. 그런데 방송에 나와서 최종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하나를 고른 것이다. 즉, 측정하기 전에는 두 군데에 동시에 있었는데 측정을 하는 순간 하나의 위치로 정해지게 된다.

그리고 양자 씨에게 선택을 10번 물어본 경우에는, 상철 5번 영식 5번을 고르게 된다.



이것이 이해하기 힘들었던 이유는 양자 역학은 아주 작은 전자나 광자 (빛 알갱이)에서만 적용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주변에서 의자나 침대 같은 물체가 이 방에도 존재하고 저 방에도 존재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과학자들이 아주 작은 빛 알갱이라던지 전자 같은 정말 작은 입자들을 연구하면서, 현실 세계에서 이해가 불가능한 두 경로를 동시에 지나가는 현상을 발견했다. (영의 이중 슬릿 실험) 그래서 많은 과학자들의 골머리를 썩게 한 것이다.  


선택은 엮여 있다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작년 노벨 물리학 수상자들의 연구인 '양자 얽힘 현상 quantum entanglement'까지 살짝 더 이해해 보자.


양자 씨가 상철을 선택한 경우에 영식이는 선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양자 씨는 영식이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상철이를 골랐다는 사실로 멀리 떨어져 있는 영식이도 자신이 선택받지 못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양자역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두 개 이상의 양자가 가진 상태가 얽혀 있다가 한쪽 양자의 상태를 측정해서 결정해 버리면 나머지 한쪽 양자의 상태도 자연스럽게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두 양자가 '얽혀있다 entanglement'라고 표현했는데, 이것은 신기하게도 두 양자가 떨어져 있을 때도 적용된다.


양자 얽힘 현상. 이를 규명한 과학자들이 2022년 노벨상을 받았다.

이러한 양자의 성질을 기반으로 한 것이 양자컴퓨터이다. 컴퓨터는 0이나 1로 존재하는 2진법으로 데이터를 처리하는데, 0과 1이 동시에 존재하는 양자 컴퓨터를 활용하면 더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다.


알고 보면 아는 이야기


양자가 핫하다. 뉴스에 양자 컴퓨터 내용이 연일 오르내리고 양자 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도 사뭇 높아졌다. 뉴스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도 양자가 뭐냐고 자꾸 물어보시는데 어떻게 하면 쉽게 알려드릴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됐었다. 그래서 아주 심도 있는 수식까지는 설명드리기는 어렵더라도, 대략의 느낌 정도만 알려 드려도 조금 더 재밌게 뉴스를 보실 수 있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유퀴즈에서도 소개됐듯이, 많은 과학자들이 양자에 대해서 어마무시한 얘기를 했다고 한다.


양자역학을 연구하면서 어지럽지 않은 사람은 그걸 제대로 이해 못 한 거다. -닐스 보어
양자역학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리처드 파인만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의 차이는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과 원숭이의 차이보다 더 크다. 양자역학을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머리 겔만


그런데 나는 (조금 오글거리는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양자역학'이라는 단어를 사랑이나 그녀(그)의 마음으로 치환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 않나 싶다. 사랑에 어지럽지 않은 사람은 사랑을 이해하지 못한 거다, 사랑을 완벽히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금붕어와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사랑에 관한 많은 고찰, 사랑에 관한 수많은 음악과 영화, 세상 사는 누구나 그녀와 그의 마음을 궁금해하지만 알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것.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야기 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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