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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봄 Apr 11. 2020

정상과 비정상, 아웃라이어?

자가 격리 중 비정상(abnormal)의 기준에 대한 괜한 생각

# 1

10여 년 전에 말콤 글래드웰 (Malcolm Gladwell) 작가의 아웃라이어 (Outlier)라는 자기 계발서가 발간되었다. 그 책에서 쓰인 '아웃라이어'라는 단어는 보통 사람의 범위를 넘어서는 비범한 사람들이나 천재들을 일컫는 말로, 책에서는 그들이 어떻게 노력했고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며 사회적 문화적 혜택을 받았는지에 대해 소개했다. 그 베스트셀러에서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아웃라이어'와는 달리, 오늘은 그저 '정상을 벗어난 범주의 것'이라는 아웃라이어의 사전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아웃라이어 (Outlier)의 통계적 의미는 이렇다.

 Outlier: a data point on a graph or in a set of results that is very much bigger or smaller than the next nearest data point.
아웃라이어: (그래프나 어떤 결과 세트에서) 바로 옆의 데이터보다 아주 크거나 작거나 한 데이터
또는, 평균치에서 크게 벗어나서 다른 대상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표본
요런 거**

# 2

 3년 전쯤인가 뉴욕에 있는 병원 연구실에서 뇌과학에 관한 프로젝트에 여름 인턴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소속된 팀은 환경의 변화가 쥐의 행동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 지를 알아보는 연구를 했는데, 네 개의 방에 불이 켜진 물체/불이 안 켜진 물체/파란 블록/ 초록 블록 등을 넣고 위치를 바꿔 가면서 쥐를 관찰했다. 쥐의 머리에는 모션 센서가 달려 있어서 쥐가 얼마나 빨리 또는 어떤 경로를 거쳐서 물체를 찾는지, 또 그때 뇌에 어떤 시그널이 변화하는지 추적이 가능하다.  


위의 사진과 같은 상자에 쥐들이 하나씩 들어가 있고, 쥐의 머리에 연결된 센서가 쥐의 움직임과 그에 따른 뇌 활동을 분석한다. (사진은 실험과 직접 관련 없음)***


 대학원생 참여자라고는 해도, 아무래도 단기 인턴 신분인지라 나는 그저 다른 연구자들이 하는 걸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거나 보조를 해주는 정도의 일을 맡았다. 

 본격적인 실험을 하기 이전에 실험 대상이 될 쥐를 선별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실험동물들을 보관하는 지하실에서 갓 데려온 10여 마리의 쥐들 중에 상태가 안 좋은 아이들을 걸러내고 최종적으로 실험에 참여할 4-5마리를 케이지로 옮기는 작업이었다. 동물 실험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나는 다른 연구자들이 씩씩하게 쥐를 잡는 동안 무서워서 구석에 쭈그려져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

 쥐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 있는 곳이 인위적으로 설치된 곳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등의 생각을 하면서 쥐를 보고 있는데, 그중에 한 마리가 이상 행동을 보였다. 다른 쥐들은 서로 냄새를 맡거나 바닥 충전재를 갉아먹거나 하고 있는데 그놈은 케이지 안을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다. 아직 쥐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마치 그 네모난 상자가 달리기 트랙이라도 되는 듯 하염없이 달렸다. 상자가 맘에 안 드는 건가 싶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는데도 그 속에서 계속 달렸다. 큰 케이지 안에 넣어 주어도, 작은 곳으로 옮겨 주어도 그저 마냥 마냥 달렸다.


 결국 그 쥐는 '실험에 적합하지 않은 상태가 안 좋은 아웃라이어'로 분류되어 대상에서 제외됐다.


# 3

 전에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사회적 거리두기 (social distancing)에 동참하고 있다. 한국은 거의 다 잡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여기 미국은 사망자와 확진자의 수가 정점에 다다르고 있다. 내가 있는 주도 예외 없이 자가격리 (stay-at-home) 오더가 내려져서 다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판데믹 초반에는 마스크도 쓰지 않고 손만 씻으면 된다던 미국 사람들도 이제는 다들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다니는 분위기이다.

  뉴스에서 연일 의료 시설이 부족하고 장비가 충분치 않아서 사망자가 늘어난다는 무서운 소식이 들려오는 바람에, 겁 많은 나는 장보는 것도 포기하고 배달만 시키면서 집에서 꼼짝도 않고 지내고 있었다. 움직일 때라곤 밥 차리거나 청소할 때뿐이고 가끔 요가 같은 홈 트레이닝을 깨작대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집에만 갇혀 있으니까 너무 좀이 쑤시고 답답했다. 

 그렇다고 밖에 나갈 용기는 없어서, 집에 가구들을 치우고 나름 걷기 트랙을 만들었다. 마루에서 시작해서 소파 앞을 지나 식탁 주변을 한 바퀴 돌고 현관문을 찍은 다음 방 침대 주변에 도착하면 약... 32 초 정도 걸리는 것 같다. 걷기 트랙을 돈다고 생각하고 음악 들으면서 한참 몇 바퀴를 돌았는데, 시계를 보니 고작 4분여 정도가 지나 있었다. 


 그러다 문득. 몇 년 전에 실험실에 본 그 쥐가 생각났다. 케이지 안을 미친 듯이 돌던 그 쥐. 밖에서 보기에는 대체 왜 이러지 싶던 그 '상태가 좋지 않은 이상한 개체'는 아마도 그냥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갇혀 있는 게 너무도 답답해서 집안을 막 뛰어다닌 거다. 

 자가 격리한다고 답답해서 집을 트랙처럼 걷고 있는 지금 내 모습하고 그 쥐 하고 뭐가 얼마나 다를까? 심지어 인간들은 고작 2-3주 집에 있다고 못 참겠다고 하고 있는데, 태어날 때부터 어둡고 좁은 상자 안에 갇혀 자란 그 쥐는 얼마나 답답했으면 그랬을지 가늠도 못하겠다. 

 

 인류를 내려다보고 있는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 각각을 본다면, 지금의 나는 이상행동을 하고 있는 아웃라이어로 분류될까? 나는 그냥 답답해서 걷고 있을 뿐인데... 얌전히 있는 다른 쥐와는 다른, 실험에 적합하지 않은 대상인 걸까? 

 사람들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 아웃라이어의 존재는 객관적으로 규정될 수 있는 걸까.


 괜한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What is the difference?


 그런데 이래서야 좋은 과학자가 될 수 있을까? 지금이야 다행히 안 하지만 나중에 또 동물 실험을 하게 되면 쥐 붙잡고 우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사진 출처

*Title image: Forbes.com "Staff Engagement & Black Swan Events" by Marti Fischer

** Matlab recipes for earth sciences, Prof. Martin H. Truth at University of Potsdam http://mres.uni-potsdam.de/index.php/2017/02/14/outliers-and-correlation-coefficients/

*** (위) Huda Akil et al., PNAS, 2016, 113 (아래) Andrea R. Hasenstaub et al., ENEURO, 201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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