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끼다 버리게 되는 것들

이사를 앞두고 물건 정리할 때마다...

by 봄봄

나는 물건을 잘 못 버리는 편이다. 이사를 앞두고 불필요한 물건을 정리할 때마다, 한 물건 한 물건씩 들고 꼭 여러 생각을 한다.

못 버리게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의 가격이나 물질적인 가치 같은 게 아니다. 거기에 담긴 추억, 그리워하는 마음...

이 옷을 처음에 샀을 때 어떤 기분이었었는지, 여러 가지 같은 색 원피스 중에서 굳이 이걸 고르기까지의 그 시간들, 처음 입고 나간 곳, 그때 만난 사람... 옷 하나 버리기까지 수많은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다가 결국 '에이 그래도 나둬 보자, 또 입을 수도 있지 뭐!' 하고 다시 옷장에 걸어둔다.

버릴까 말까

내 또 한 가지 안 좋은 버릇은, 특별히 고민하고 고민해서 산 옷이나 물건을 아끼느라고 잘 못 쓴다는 것이다. 특별히 신경 써서 샀으니까 나중에 꼭 특별한 날에만 입어야지. 오늘은 옷 더러워질 일 있으니까 편한 옷 입고 나가야지, 하다 보면 결국 몇 번 못 입기 마련이다.


이번 겨울이 오기 시작할 때, 예쁜 겨울 옷들과 초봄 옷들을 많이 샀더랬다. 친구들이랑 놀러 나갈 때 입으려고 아껴뒀었는데... 아무도 예상치 못한 코로나가 와서 전 세계가 자가 격리하는 덕분에 못 입게 되었다.


겨울도 다 지나고 봄이 오는 소리가 살살 들리는 요즘, 이사 갈 날이 다가와서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고 있다. 여전히 그 버릇 못 고치고 옷 한 벌 들고 버릴까 말까... 고민하는 중인데, 올해는 특히 한 번도 쓰지 못한 물건들이 눈에 많이 밟힌다. 아껴두느라고 한 번도 입지 못한 옷, 사놓고 한 번도 들지 못한 백, 신지 못한 구두...

곧 끝날 줄만 알았던 코로나는 아직도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결국 요새는 침실에서 거실로 나갈 때 새 옷을 찾아다 입는다.

입기만 해도 이렇게 기분이 좋아지는데 아끼지 말고 입을 걸, 뿌리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향수, 진작 아끼지 말고 쓸 걸.

아끼지 말 걸


그런데 비단 물건뿐일까? 혹시 말도 마음도 아끼고 있는 것 아닐까. 특별한 날 특별하게 전하려고 감추어 둔 마음, 쑥스러워서 차마 전달하지 못한 예쁜 말.

나중에 말해야지, 나중에 표현해야지. 그런데 세상은 참 한 치 앞도 모르는 거더라. '나중'은 언제 올까?

내가 새 옷을 살 작년 말에는 2020년 새해 밝자마자 듣지도 보지도 못한 바이러스가 창궐해 다들 회사도 학교도 못 가고 집에 들어앉아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내가 간직하기만 했던 그 말들도 '나중에'라는 시간으로 미뤄지고 미뤄져 결국 영영 빛도 못 보고 버려질 위기에 처한 내 옷들처럼 되는 건 아닐지...


괜히 잘 지내는지 궁금했던 친구들한테 또 가족들한테 안부를 물었다. 잘 지내냐고, 건강히 잘 있냐고... 별로 용건도 없으면서 연락하면 귀찮아 하진 않을까, 어색하진 않을까. 나중에 나중에, 특별한 날에... 를 위해 미뤄왔던 말들을 오늘 바로 표현해 본다. 나중에, 결국 전하지 못한 마음을 들고 버릴까 말까 고민하지 않기 위해서.

Desert Gold. Photograph by Jack Dykinga. Nationalgeographic.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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