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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J Mar 07. 2024

스티븐 디덜러스와 친구들

19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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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보이지 않는 내면

스티븐은 아침마다 더블린 시티를 가로질러 학교에 간다. 강북에 있는 집에서 리피강을 건너 가톨릭 대학이 있는 강남까지 걸어오는데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그 시간은 맘껏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이다. 비에 젖은 가로수 길을 걷다 보면 게르하르트 하웁트만의 희곡이 조용한 환희의 무드에 젖게 하고, 집 근처 페어뷰 연안을 지날 때면 수도원 분위기의 존 헨리 뉴먼의 산문이, 상점들 진열장을 보며 노스 스트랜드 로드를 따라 걸을 때는 귀도 카발칸티의 블랙 유머가, 탈봇 플레이스의 석재 공장을 지날 때면 고집 센 소년 같은 헨리크 입센의 영혼에 휩싸이고, 리피강 건너 거뭇한 선박거래상을 지날 때면 벤 존슨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아! 책벌레, 너무 많이 읽었다. 등굣길 머릿속 문학의 향연이라니. 루틴처럼 만나는 예술가들의 영감으로 언짢았던 기분을 금세 잊고 가볍게 걷는다. 강의에 또 지각할 거냐고 잔소리하는 부모를 뒤로 하고 쫓기듯 집을 나선 터였다.


Dublin City Map 1898


__가톨릭 대학 수업

시티 운하 근처에서 시계종이 열한 번을 때린다. 사색도 좋지만 오늘도 지각이다.

10시 ~ 11시 영어

11시 ~ 12시 불어

12시 ~ 1시 물리

이미 늦은 영어 강의는 멀리서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받아 적고 있는 강의실이 떠오른다. 용어 정의와 사례들, 생일 사망일, 주요 작품과 비평..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스티븐은 고개를 들어 학생들을 둘러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진다. 일률적이고 주입식으로 이뤄지는 강의에 넌더리가 나고 침울해진다. 스티븐의 전공은 영어, 불어, 이태리어이고 고등학교 때 배운 라틴어를 곧잘 구사한다. 지금 그의 열정은 문학과 미학, 시학이다.


__크랜리

학점에 초연한 인물이 또 한 명 있었으니 바로 크랜리이다. 크랜리는 스티븐의 친한 친구인데 겉보기엔 성질이 불같다. 젠체하고 맘에 안 드는 친구에게 망할 놈의 원숭이, 매매거리는 염소라고 대놓고 뇌까리고 독설을 해서 악동인가 했다. 크랜리의 이런 언동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이 없다. 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듯하다. 스티븐은 크랜리에게 고해성사하듯 속엣말을 털어놓는데 말없이 들어주는 친구의 얼굴은 마치 죄를 사해줄 수 없는 사제와 같았다. 독설과 포용. 내유외강의 인물이다. 크랜리는 조이스의 실제 대학친구 존 프란시스 버언을 모델로 한 인물이다. 스티븐은 물론 조이스 자신이다.


__다빈

또 다른 친구는 카운티 리머릭 출신 ‘농부 학생’ 다빈이다. 정직한 눈매에 단순한 성격의 다빈은 스티븐을 스티비라 살갑게 불러줬고 스티븐이 칭얼대는 시구들을 들어줬다. 스티븐은 다빈의 무딘 감성과 얕은 지식, 멍한 눈빛이 맘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의 타고난 정중함과 엘리자베스 시대 구식 영어 말투를 좋아했다. 시골 출신 친구 중 이렇게 정감 가는 애들이 한 명씩 있다. 다빈은 영국의 ‘영’ 자에도 저항하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로 모국어 아이리시 배우기에 앞장섰고 아일랜드 전통 스포츠 헐링(hurling, 하키와 비슷) 애호가였다. 시인과 농부의 우정에 보이지 않는 틈이 생긴 건 결국 이런 다빈의 열렬한 애국심 이었다. 다빈은 조이스의 실제 대학 친구 조지 클랜시를 모델로 한 인물이다.


__스티븐 디덜러스(제임스 조이스)

동급생들은 그를 시인이라 불렀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심취해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다. 한 운동권 친구(맥캔)는 그를 반사회적 인간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가계를 돌보지 못하는 무기력한 아버지, 깊은 신앙심으로 종교에 얽매이는 어머니와 아홉 명의 어린 동생들. 잦은 이사와 쪼들리는 가정형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 수업, 지저분하고 시끄럽고 침체한 도시 더블린. 그는 그를 둘러싼 침울한 환경에 상상의 세계를 가미해 사색에 빠지면서 아름다움과 고결함을 경험했고 그 순간들이 소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릴 때면 평범한 삶 속에 있는 자신이 또한 좋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더블린 시내를 거닐 수 있는 청년다운 기상이 있었다.


그의 성, 디덜러스(Dedalus)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장인, 다이달로스(Daedalus)에서 따온 것이다.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미노스 왕을 위해 미로(labyrinth)를 지어 바쳤는데 일이 꼬여 아들 이카루스와 그 미로에 갇히게 된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밀랍과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탈출에 성공한다. 그의 이름, 스티븐은 최초의 크리스천 순교자, 세인트 스티븐에서 왔다. 스티븐 디덜러스는 조이스의 다음 작품, 율리시스(Ulysses)에서 주인공으로 재등장한다.   


__아일랜드

신이 버린 불쌍한 섬. 구린내 나는 똥무더기 같은 세상. 피 끓는 청년들이 내뱉는 절망과 무기력함이다. 국가는 청년의 운명이었다. 애국 애족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청년들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 정신을 숭상하는 순수한 영혼 다빈은 스티븐을 설득하려 한다.


— 우리와 함께 하자. 넌 가슴으론 아이리시맨인데 자존심이 너무 쎄.

— 우리 조상들은 모국어를 저버리고 다른 나라 말을 택했어. 그들은 몇 안 되는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권리를 허락했다. 너는 내가 내 인생을 바쳐 그들이 진 빚을 갚을 거라고 생각하니? 무엇을 위해?

— 우리의 자유를 위해.

— 톤(Wolfe Tone)의 시대부터 파넬(Charles Parnell)의 시대까지 명예롭고 진실한 자라면 생명을 걸고 너희 민족주의자와 함께 하지 않은 청춘이 없어. 그런데 너희는 그를 적에게 팔고 어려운 때 외면하고 비난하고 배신했어. 나더러 너희들 편이 되어 달라고. 난 너희들이 먼저 망하는 걸 보고 싶다.

—그들은 이상을 위해 죽은 거야, 스티비. 우리의 날이 올 거야, 날 믿어줘.

—영혼의 탄생이란 느리고 어두워. 육체의 탄생보다 더 신비하지. 한 영혼이 이 나라에 태어나면 던져지는 그물이 있어. 날지 못하게 방해하는. 넌 국가, 언어, 종교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난 그 그물들을 넘어 날아갈 거야.

—내겐 너무 심오해, 스티비. 그렇지만 국가가 우선이야. 아일랜드가 우선이라고, 스티비. 시인이나 신비주의는 나중에 할 수 있어.

—너 아일랜드가 뭔지 알아? 아일랜드는 제 새끼를 잡아먹는 늙은 암퇘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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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20,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by James Joyce, PENGUIN BOOKS


*Wolfe Tone (1763-98) 아일랜드 독립 혁명가

*Charles Parnell (1846-91) 아일랜드 민족주의 정치가


영국이 지배하는 아일랜드의 현실에 저항하는 것이 이미 무의미하고 무가치하다고 믿는 스티븐은 자기 신념을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개인주의자였다.



__아트 Art

예술이란 무엇인가. 스티븐은 고등학교 때 작가로서 예술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본격적으로 그 길로의 탐색을 시작한다. 마음속에 흘러넘치는 탐색의 여정을 공유하고 공감해 줄 친구가 옆에 있으면 함께 산책하며 얘기를 나누곤 했다. 스티븐은 린치라는 친구와 예술에 대한 얘기를 나누는데 말이 통한다는 친구 녀석이 골 빈 영혼이었는지 대화는 거의 스티븐이 강의하는 식으로 흘러간다. 린치에게나 나에게나 지루하지 않고 유익한 강의였다.


예술은 세 가지 형식으로 나뉘는데 서정적 형식, 서사적 형식, 그리고 극적 형식이다.


• 서정적 형식은 순간의 감정을 가장 단순한 말로 표현한 것이다. 고시적, 노를 젓거나 비탈 위로 바위를 끌어올리는 사람을 응원하는 리드미컬한 외침 같은 것이다. 그것을 입 밖에 내는 사람은 감정을 느끼는 자신보다 감정의 순간을 더 잘 기억하게 된다.


 가장 단순한 서사적 형식은 서정적 문학에서 태어난다. 예술가(작가)가 서사적 사건의 중심으로서 자신에 대해 오래도록 그리고 깊이 생각할 때이다. 서사적 형식은 감정의 무게 중심으로부터 예술가 자신과 다른 인물들이 같은 거리에 있게 될 때까지 진전한다. 이야기는 더 이상 사적이지 않게 된다. 예술가의 개성은 역동적인 바다처럼 인물들과 행위를 감싸고 돌며 이야기에 녹아든다. 이러한 진전은 일인칭으로 시작해서 삼인칭으로 끝나는 옛 영국 서사시 터핀 히어로 (Turpin Hero)에서 쉽게 볼 수 있다.


• 극적 형식은 각 인물 주변으로 흘러들었다 빠졌다 하던 생명력이, 모든 인물을 살아있는 힘으로 채워서 그들이 온전한 무형의 미적 생명을 가지게 한다. 예술가의 개성은 처음에는 외침, 운율, 기분이다가 (서정적 형식) 유동적이고 반짝이는 이야기가 되고 (서사적 형식) 마침내 자기 정제를 통해 사라진다. 즉 비개성화된다 (극적 형식). 극적 형식에서 미적 형상은 인간의 상상력에서 정화되고 거기서 다시 반사되는 생명이다. 예술가는 창조주처럼 그의 작품의 내부나 배후, 그 너머나 위에서, 자취 없이 정제되어 사라진 채 무심히 손톱을 깎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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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32-233,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by James Joyce, PENGUIN BOOKS



__크랜리의 팔

—크랜리, 할 얘기가 있어.

—지금?

—그래, 지금. 여기선 얘기 못해. 걸을까?

스티븐은 크랜리와 단둘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간절했다. 둘이서 산책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스티븐은 어머니와 말다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부활절 성찬을 받으라는 어머니의 바람에 스티븐은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스티븐은 신을 섬기려 했지만 그건 무척 어려운 일이었고 결국 종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이런 속사정은 크랜리도 전부터 알고 있는 터였다. 독설가답지 않게 크랜리는 형 같은 조언을 건넨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의혹이 있어도 극복하거나 타협하면서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고. 믿지 않아도, 힘든 일도 아니고 형식일 뿐인데 어머니 원하시는 데로 해 드리는 게 낫지 않겠냐고. 크랜리는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에 대해 차분히 피력한다.


그들의 우정이 끝나가고 있었다.


—나 떠나야 할 것 같아.

—어디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네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게 뭔데?

—구속 없이 자유롭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삶의 양식, 예술의 양식을 발견하는 것. 난 내가 더 이상 믿지 않는 것을 섬기지 않을 거야. 그게 내 집이든 조국이든 교회이든. 난 혼자가 두렵지 않아. 모든 걸 두고 떠나는 것도 두렵지 않고 실수하는 것도 두렵지 않아. 큰 실수, 일생일대의 실수, 영원의 실수라도.

—혼자, 완전히 혼자. 넌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아? 친구가 한 명도 없다는 것, 친구 이상이 되어줄,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고귀하고 진실한 친구 이상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 크랜리의 얼굴에 차가운 슬픔이 어려 있었다. 스티븐은 크랜리가 자신의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알았다. 외로운  영혼이 부딪힌다. 모든  털어놓고 얘기할  있는 친구를 잃는다 해도, 팔을 잡고 나란히 걸어    명의 친구를 잃는다 해도, 예술가로서 길을 가기로 결심한 스티븐은 두렵지 않다. 외롭지만 자유로 가는 .  길만이 세상에 있는 이유이고 숙명이라 믿었다.



        반항아 외톨이 배신자 이방인

                 가난한 시인 고독한 청년

              먼 길 떠날 작정하는 사무치게

                    사무치게 외로운 젊은 예술가



흐릿한 하늘 공간에서 둥글게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그가 찾아오던 전조가슴속에서 조용히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작은 탑 위로 날아오르는 처럼.


                떠남의 상징인가

                           외로움의 상징인가

                          자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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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5, A Portrait of the Artist as a Young Man by James Joyce, PENGUIN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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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조지 클랜시, 존 프란시스 버언, 제임스 조이스, 이들은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함께 불멸한다.


다빈, 조지 클랜시는 졸업 후 교편을 잡았고 민족주의자로 활동하다 투옥되기도 했다. 40세이던 1921년 리머릭 시장으로 선출되었으나 같은 해 암살당했다.


크랜리, 존 프란시스 버언은 1910년 미국으로 이민, 뉴욕에 정착해 언론사에서 일했고 1926년부터는 신문사 경제 칼럼니스트로 재직했다. 1953년 자서전을 냈고 1960년에 사망했다.


스티븐, 제임스 조이스는 1904년 아일랜드를 떠나 트리에스트(이태리, 당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에 정착,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썼다. 1차 세계대전 동안에는 스위스 취리히에 거주하며 율리시스를 집필했다. 1941년 위궤양으로 인한 복막염 수술 후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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