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도 아주 오래되면 그만하고 쉬고 싶은 걸까? 기회를 기다렸다가 몸뚱이를 내던지고 마는 일이 생긴다.
내 차는 비싼 자동차는 아니지만 말썽 한번 안 부리고 가는 곳이 어디든 안전하게 나를 데려다주었다. 누가 치고 들어오면 받아줄지언정 가서 들이받은 적이 없었고 10년 15년이 되어가도 새로 구입했을 때처럼 나에겐 언제나 베이비였다.
그것은 퍼펙트 스토옴. 태양이 눈이 멀게 시야를 평정하는 아침이었다. 공사 중인 고속도로 입구를 직진하다 길가 바리케이드를 들이받고 말았다. 체감 충격은 크지 않았고 체감 파손은 순간의 몸서리로 흡수했다. 현장 점검을 미루고 침착하게 운전석을 지켰다. 40분 남짓 운전해 시내 주차장에 도착, 하차해서 보니 생각보다 많이 다쳤다.
순간의 충동을 삼키지 않고 모진 말로 상처를 줘 오랜 친구를 잃은 경험이 있다. 파괴본능일까. 우연이 아닐까. 아침 늦장을 부리고 늦어서는 눈이 멀고도 무데뽀로 돌진한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지켜준 게 기특할 뿐이었다. 가다가 멈춰버리면 어쩌나 고속도로에서 마음을 졸였었다. 그건 어느 액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웨스트 게이트 프리웨이를 만신창이 차와 함께 겉보기엔 무덤덤하게 질주했으니까. 무모함은 내 안에 있었다.
그렇게 차와 작별한 게 작년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니 정확히는 며칠 전, 수년을 함께 한 또 하나를 잃었다. 남들은 자기 핸드폰과 일심동체라지만 나에겐 핸드폰보다 친한 게 하나 있었다. 추울 때나 더울 때나 안에서도 밖에서도 그러고 보니 딱 일심동체였다.
정원에서 풀을 뽑다 앞마당인가, 꽃을 심다 뒷마당인가에 던져 놓았었는데 다시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무성한데 담날 깎으면 어쩐다고 어스름 녘에 잔디를 미는 부지런을 떨었었다. 그게 혹시 잔디에 섞여 쓰레기통에 들어갔나 들여다봐도 안 보이고 어디엔가 잊어먹고 놔둔 게 나오기만을 바랐다.
풀섶 사이에 숨어 있었다. 작은 조각으로 흩어져 있어서 눈에 띄지 않았었다.
이렇게 내 선글라스가 생명을 다 했다. 말년엔 정원에서 함께 하며 따가운 그곳의 햇살을 막아주다가 뼈 심듯 그 위에 알알이 드러누운 채. 10년도 훨씬 전에 동생이 해준 선글라스였다. 동그랗게 큼지막한 블랙 테두리가 멋스러웠다. 렌즈 색상이 밝고 플라스틱 몸통은 견고했다.
반면 주인은 견실하지 않았다. 가방 안에 마구잡이로 쑤셔 넣기 일쑤여서 렌즈에 난 상처는 도마 위 칼자국처럼 혼재했고 깨끗하게 닦아주는 일도 드물었다.
선글라스는 동행이었다. 그건 중경삼림의 임청하 같은 카리스마 컨셉을 잡았다거나 남다른 개성이 있어서가 아니다. 외출하면 왕가위처럼 실내에서도 선글라스를 끼고 산다. 안경으로 바꿔 쓰는 대신 선글라스에 안착해 버린다. 그 안에서 더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전에 쓰던 선글라스를 써 보았다. 예전보다 얼굴 살이 빠졌나 싶게 헐렁해져서 흘러내리는 게 곤혹스럽다. 선글라스도 시절을 타는구나. 남은 선글라스가 네 개 있었다. 오랫동안 모셔두어 있는 줄도 몰랐던 것들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왔다. 렌즈 사이즈도 색상도 제각각이다. 예전엔 애들도 나와 친했는데 내가 얼마나 변한 걸까.
선글라스를 챙겨 들고 차에 탔다. 주문하고 석 달 동안 차가 어서 조립되어 큰 배를 타고 지체 없이 도착하길 기다렸었다. 차가 안고 온 아기자기한 테크놀로지와 만나고 친해졌다. 나름 깔끔하고 산뜻한 환승이었다.
작년에 떠난 차는 그 와중에 아주 오랜 기억을 소환해 곰살궂게 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얹었다.
“I’ve gotta stick a Baby On Board sign at the back.”
조수석에 앉아 쉴 새 없이 쫑알대는 그를 저격해 한마디 던졌다.
“Huh?”
“Baby on Board sign at the back”
차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Hmm.. good sense of humour.”
베이비 유머에 기분이 좋았는지 드문 칭찬을 하는 목소리에 행복이 묻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