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요즘도 스무 살의 그 꿈을 꾸나요? 밤새워 누군가의 시집을 읽고 울며 쓰지 못한 자신의 시 때문에 새벽까지 악몽에 시달리지는 않나요?'
글 위로 두둥실 향이 묻어났다. '곽재구, 이 아저씨 누구지? 나랑 동향이네!' 사투리 억양의 속 깊은 고향 아저씨를 만난 것 같아 내 두 눈이 반짝였다. 어느 맑은 날 오후, 집 근처 도서관에서 이 에세이가 실린 잡지 샘터를 만났다. 반갑고 흐뭇한 마음이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구름이라도 손에 담아본 기분이었다.
아주 오래전, 교실 한 귀퉁이에 앉아 말없이 시를 쓰던 소녀가 떠올랐다. 시인이 손짓을 하니 소녀가 중얼거린다. '내가 쓴 시에선 어떤 향기가 날까?' 처음 읽는 시인의 에세이 몇 편은 향기 없이 시드는 그녀의 화단에 이름 모를 꽃씨 한 줌을 흩어놓아 버렸다.
시를 쓰지 않는 동생이 있다. 고3 밤을 새워 책을 읽고 학교에 가서는 잠을 잤다는 내 막내동생은 시를 좋아했고 국문과를 희망했다. 몇 자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하던 소년은 결국 국문과에 가지 못했고 전공과 일이 달라서인지 그 후 시와는 멀어져 버렸다. 시를 잊고 사는 건 어떤 걸까.
시가 하루가 된 인생은 어떤 걸까. 곽재구 시인은 시에 매달리던 젊은 시절을 에세이에 털어놓았다. 젊은 날 미치도록 시를 썼다는 늙은 소년의 에세이는 시 한 편을 산문으로 풀어놓은 듯 향기로웠다. 왠지 사랑의 향기라고 말하고 싶다.
해오름달 어느 서점에서 손에 들린 시인의 시집에 가슴이 설렐 것이다. 예기치 않은 글 타령에 앞으로 펼쳐질 숙제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