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가을
정원에 한 알 두 알 무화과가 익어간다. 자줏빛 살갗 사이로 삐죽이 드러난 속살이 고 1 때 내 종아리만 같다. 나름 컸다고 표가 난다. 나고 크는 자연의 이치일까.
이사 와서 무화과나무를 만난 건 반가운 일이었다. 다리에 튼살이 나기 훨씬 전 우리 집 앞에도 무화과 한 그루가 있었다. 덜 익은 열매 밑 꼭지에서 흘러나온 진물이 우유처럼 하앴다. 종이 자루를 입은 포도송이도 석류 열매도 덩달아 물이 올랐다. 나무들은 추억인가. 무화과나무를 심고 기른 전 주인도 오, 내 무화과나무! 하며 아쉬워했었다. 이젠 달콤한 추억이 되었으면.
소프트 볼 몇 알을 따고 나니 손 닿지 않는 곳서도 토실한 자주색이 윙크한다. 키 큰 녀석과 따 볼까. 불현듯 무화과의 안부를 물은 적이 있지. 녀석의 두고 온 고향에도 무화과나무가 푸를까. 마음으론 쟁반 가득 무화과를 담아본다.
나무에 걸린 미니 스피커에선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가 경쾌하다. 클래식과 무화과의 조합이 꽤 그럴싸하다. 그도 그럴 것이 둘 다 오래되었다. 인류가 따먹으며 진화했을 정도로 무화과는 고전이니까. 이 에너지 과실로 인간의 두뇌가 커졌고 말랑함을 판단하는 도구로써 손이 진화한 셈이니까.
새들이 더 빨리 온다. 올망졸망 금세 쪼아 먹고선 푸더덕. 이제 내 빈속을 채울 차례이다. 배고플 때 차려진 밥상 같아서, 배불리 먹어 치워도 매일 풍성한 할머니의 곡간 같아서 무화과는 모성이랄까. 어느새 주름지고 새까매져 떵하니 떨어져 버리는 일도 드물다.
꽃은 언제 피고 사라졌을까. 그건 잠시 미스테리였다. 그러고 보니 꽃이 없어서 무화과였다. 열매 속에 들어앉게 된단다. 수없이 많은 꽃들이 열매 속에서 핀다. 속꽃들은 그 안에서 소박한 일상이 된다. 바람과 비와 햇살과 함께 한 따스한 날들이었을까. 그 변신이 고맙다. 내 안에도 속살 같은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