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교실
그 애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손끝 느낌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 궁금해졌다. 전에 해보았니? 아뇨.
쉬는 시간 교정에 피어있을 꽃을 찾아 나섰다. 분홍빛 히비스커스가 보인다. 수업에 쓸려고 찾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꽃송이들이 탐스레 매달려 있었다. 그중 몇 송이를 가위로 싹둑 자르자 주위에서 놀던 아이들의 눈이 동그레 진다.
지난주 결석한 제이드와 카리아, 꽃꽂이해보자. 나도요. 제네비브가 슬쩍 손을 들었다. 지난주 하지 않았니? 저 아직 안 했어요.
맞아 지각했지. 수업 중에 빼꼼히 교실문이 열릴 때가 있다.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살면서 지각을 한다고 함께 웃었었지. 등 떠밀리듯 출석해서 얼굴 정도 보여주던 그 애의 나도요 에 순간 움찔했다. 처음 보는 적극성이었고 꼭 하고 싶다는 절박함이 묻어나서.
교실 한편엔 침봉이 담긴 화병과 잘라온 꽃대들이 가지런하다. 우선 기모노를 입은 장인들의 이케바나를 감상한 후 각자 심플하게 디자인해본다. 그리곤 미적으로, 아님 손길 가는 대로 꽂는다.
제이드, 카리아에 이어 제네비브의 차례가 되었다. 어중간한 줄기가 댕강 잘려 꽃송이는 물 위에 뜨는 듯 히비스커스가 메인이 되는 듯 빙글 화병이 돌았다. 불과 30분 전 야생화같이 자유롭던 꽃들이 그 애의 손끝에서 순순해졌다. 길이와 각도의 비율은 본능적으로, 꽃 무게에 못 이겨 자꾸 넘어지는 침봉을 길들이며 작품이라면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어냈다.
앞서 두 소녀는 꽃 세 줄기 상중하로 꽂고는, 손 놓고 온 말하기 연습으로 뚝딱 돌아간 터였다. 제네비브의 이케바나는 자꾸 눈길이 가는 어여쁜 몸짓 자체였다. 마치 장인이라도 된 양 사진을 찍는데 작은 두 손을 슬며시 마주 잡는 포즈를 취했다.
일본인 제네비브는 교실에서 풀이 죽는다. 작년부터 출석부에 이름만 올렸지 일본어에는 관심을 주지 않았다. 일본에 몇 번 가봤고 집에선 일본 음식을 먹을 테지만 일본어 공부는 딴 세상 물건이다. 아빠의 당부로 가끔 교실을 방문하는 것 같다.
오늘처럼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건 180도 다른 모습. 보아하니 이미 안에 있는 거였다. 이께바나라는 전통이 피 속에 흐르고 있는지 몰랐다. 과장된 해석일까. 엉뚱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모두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작은 발견으로 우린 알게 된다. 스스로의 손짓에 위로받는다는 걸. 존재에 눈뜨는 순간이란 좀 사소한 데 있다는 걸. 그리고 오늘 마술처럼 우리 교실에 살짝 왔다 간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