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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검 Aug 27. 2023

콜린스와 다아시가 어때서

오만과 편견


It is a truth universally acknowledged, that a single man in possession of a good fortune, must be in want of a wife.

이 첫 문장은 과연 진실일까요.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입니다. 스물두 살이던 1797년에 완성했지만 서른일곱이 된 1813년 익명으로 출판하게 됩니다. 소설이 세상에 나온 과정만 보더라도 소설 속 사회를 엿볼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여성이 책을 내는 것은 물론이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소설이라는 장르를 출판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나 봅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편지 쓰기가 일상의 루틴이 되었을까요. 저자도 독자도 한자리에서 만들어지는 편지를 그 시절엔 무던히도 쓰고 교환합니다. 오스틴은 언니 카산드라와 수많은 편지를 주고받았다고 합니다. 소설 속에서도 수십 통의 편지가 오고 갑니다.


18세기의 끄트머리, 갖가지 마차를 타고 편지와 산책이 대세인 풋풋한 시대입니다. 그것들은 다만 재산, 계급, 상속제도의 굴레 안에서 존재합니다. 결혼은 여성에게 신분상승이나 안정적인 삶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롱번이라는 시골마을에 사는 베넷씨 부부에게는 다섯 딸이 있습니다. 상류 계급에 속하지만 재산이 넉넉지 않은 데다 한정 상속이라는 당시의 제도로 인해 그나마 있는 재산도 딸들에게 물려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둘째 딸 엘리자베스의 러브 스토리와 결혼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요.



my dear Miss Elizabeth,
 

엘리자베스는 두 남자로부터 청혼을 받게 됩니다. 아버지 베넷씨가 사망하면 베넷가의 롱번 저택을 상속받게 되는 사촌, 미스터 콜린스와 이웃으로 이사 온 미스터 빙리의 부유한 친구, 미스터 다아시입니다. 목사가 된 콜린스는 결혼을 목표로 베넷가를 방문해서 즉각 상대를 정하고 청혼합니다. 다아시는 엘리자베스의 예쁜 눈과 발랄함에 반해 혼자서 좋아하다 이듬해가 되어서야 고백합니다. 출신과 계급, 지적 수준이 확연히 다른 그들에게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오만함이었습니다.



But before I am run away with by my feelings on this subject, perhaps it will be advisable for me to state my reasons for marrying -

콜린스는 사랑의 감정에 휩쓸려 자제심을 잃기 전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먼저 말해야겠다고 합니다. 미리 준비한 듯한 이유들은 나름 정의롭습니다. 성직자로서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를 목사직에 추천한 후원자 캐서린 드 버그의 충고를 받들어, 롱번 저택의 상속자로서 베넷가 딸들에게 어떻게든 보상하고자 하는 선의에서.. 그의 긴 모놀로그는 직접화법으로 노출됩니다. 청혼이라는 그릇에 내용물은 설교에 가까운, 호의를 가장한 기실 끈질긴 애걸에 다름없습니다. 그 자리에서 거절당하지만 처음 두세 번은 남자를 애태우기 위한 교양 있는 여자들의 내숭이라고 말합니다. 결혼 지참금이 너무 적은 그녀에게 또 다른 청혼자가 나타날지 모를 일이며 남편감으로서 자신의 조건이 얼마나 바람직한지를 스스럼없이 드러냅니다. 그의 진심 어린 오만은 그녀의 거절을 끝내 거절합니다.



In vain have I struggled. It will not do. My feelings will not be repressed. You must allow me to tell you how ardently I admire and love you.

몇 분의 침묵을 깨고 들려온 다아시의 고백이었습니다. 평상심을 잃은 듯 감춰둔 번민이 티 없이 묻어납니다. 이런 고백은 누구나의 로망일 것만 같습니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의 고백에 혼비백산합니다.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한 첫 만남부터 서로를 내심 비웃는 관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 틈을 타서 그간의 심정을 털어놓던 다아시는 자신에게 마이너스로 작용할, 자신보다 열등한 그녀의 신분과 가문 간의 장벽에 대해 열을 올리며 설명합니다. 사랑고백이 청혼이 되는 시대이고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녀를 향한 순수한 감정을 억누르려는 무의식의 작용일까요. 고백을 듣고 어쩔 줄 몰라하던 엘리자베스는 곧 모욕감을 느끼고 그녀가 받아줄 것을 확신하는 그의 표정을 보며 더욱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의 청혼은 내적 사랑이 외적 조건을 이긴 결과이지만 그의 오만함은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우월의식이 있고 거절에 익숙하지 않은 다아시는 놀라움보다 화로 일그러집니다.



Mr Collins was not a sensible man, the deficiency of nature had been but little assisted by education or society;

청혼에 실패한 두 남자는 각자 다른 이유로 오만합니다. 소설에 잠깐 언급된 그들의 성장 과정에 의하면 부모의 영향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콜린스는 문맹에다 인색한 아버지 아래서 복종하며 성장했습니다. 대학을 다니긴 했지만 도움이 될만한 지인을 만들지 못한 채 필요한 학기만 채웠을 뿐입니다.  은둔형에 머리도 좋지 않았는데 예기치 않게 이른 나이에 출세를 하게 됩니다. 운 좋게도 귀부인 캐서린 드 버그의 추천을 받아 교구 목사가 된 것입니다. 복종에 기인한 겸손한 태도는 신분 상승과 함께 자만심으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캐서린 드 버그에 대한 충성심과 성직자로서 부여받은 권위와 권리는 그를 아첨과 오만이 뒤섞인 존재로 만들었습니다.



I have been a selfish being all my life, in practice, though not in principle.

두 번째 청혼으로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된 다아시는 그가 자라온 이야기를 합니다. 지우고 싶은 괴로운 기억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 그는 타고난 기질을 바로잡고 교만을 삼가도록 배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의 부모는 외아들인 그에게 필요이상으로 관대했는데 그가 이기적이고 거만하게 행동해도, 자신의 가족 외에 다른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의 판단이나 가치가 자신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해도, 인정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런 이기적인 인간으로 여태까지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무의식적인 태도에, 과도한 침묵이 오만으로 여겨질 정도의 숫기 없는 성격이 더해져 잘생기고 부유한 싱글남이 비호감으로 등극했던 것입니다. 반면 그는 그의 주의를 끌고자 끊임없이 꼬리 치는 여자들을 경멸했습니다.



Till this moment, I never knew myself.

지적이고 당찬 엘리자베스도 다아시 못지않게 오만했다는 걸 인정합니다. 엘리자베스의 감정의 흐름은 주된 플롯이기에 독자도 그녀와 함께 설레고 좌절하고 분노하고 기뻐하며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아시가 첫 고백을 했을 때 그녀는 상반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흐느껴 웁니다. 이튿날 산책길, 돌연 나타난 다아시는 그녀의 손에 편지를 쥐어주고 가버립니다. 그의 긴 편지는 이야기의 흐름을 바꿔놓습니다. 결국 다아시는 그녀가 아는 다아시가 아니었습니다. 감정이 결여된 인간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침착한 척 가장하기도 하고 자존심을 내려놓기도 했습니다. 그녀의 어떤 매력이 그로 하여금 태어나서 처음으로 겸손이라는 낯선 감정을 배우게 했을까요. 오만한 남자는 이제 주위사람들을 배려하는 섬세한 남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다아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걸까요. 성장한다는 것은 원래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니까요. 그의 내성적인 성격을 고려했는지 오스틴은 그가 겪었을 내적 갈등을 세세히 서술하진 않았습니다. 다아시에 끌리는 감정을 인정한 엘리자베스가 다아시의 마음이 돌아섰을까 조바심내고 그의 아름다운 저택 펨벌리를 동경할때 독자는 오만과 편견의 역전을 그 아이러니를 감내합니다.


미스터 콜린스는 영문학사상 가장 사랑받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진지하고 올곧은 매너로 자신이 남들을 웃기고 있다고 상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분별없고 오만할지언정 악인은 아니었습니다. 다아시와 엘리자베스의 결합을 축복하고 베넷가에 보낸 편지들을 보면 오지랖을 너머 순진함을 엿볼 수 있습니다. 고기를 안 먹어본 사람이 고기 먹는 걸 겁내는 것처럼 소설책 읽기를 겁내는 그가 소설책 한 권 안 사준 아버지를 원망했을까요? 그의 신부, 샬롯이 말한 것처럼, 부부는 시간이 갈수록 가까워지기도 멀어지기도 하기에, 그들 아니 샬롯의 결혼이 내내 불행하리라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캐서린 드 버그를 신봉하듯이 지인이 된 다아시를 본받아 그 역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콜린스라고 자괴감에 뒤척이며 남몰래 눈물을 훔치는 일이 없었을까요. 누구나 성장을 꿈꿀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현주소에 만족하는 단순한 콜린스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통스럽게 곱씹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이런저런 편지를 쓸 것 같습니다.



나름 답을 내보았습니다.

세상에 넘쳐나는 것이 연애소설인데 오만과 편견은 세기를 넘어 어떻게 고전이 되었을까요? 작가 박완서는, 스토리만 꺼내서 보면 대동소이한지라 사람의 마음에 스미게 하는 것은 문장의 힘이라 했습니다. 오스틴의 문장은 어떤가요? 군더더기 없이 직진하다가 아이러니로 독자를 곁눈질합니다. 독자는 글자 그대로 믿고 따라갔다가 ‘아차’ 하기 일쑤입니다. 실제 의미는 달랐기 때문입니다. 베넷씨는 세상사에 냉소적이고 가정사에 소극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둘째 딸 엘리자베스가 결혼하자 펨벌리를 즐겨 깜짝 방문하는 딸바보의 면모를 보여줍니다. 조카 다아시의 결혼 소문을 듣고 롱번가로 달려온 캐서린 드 버그와 그녀에 맞서는 엘리자베스의 다이얼로그는 오스틴의 불같은 성격을 보여주듯(사실이라면) 스파크가 일었습니다. 다아시와 콜린스는 별난 남자들 같아 보이지만 보편적인 인간상을 오스틴은 그려낸 것만 같습니다. 나도 그 둘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좋은 마음을 가지고도 소외됐다고 느낄 때, 엉뚱한 행동으로 비웃음이 되었을 때, 나는 다아시고 콜린스였습니다.


Illustrations by HUGH THOMSON 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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