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검 Nov 23. 2023

일단 씨이 유 레이터

점심시간, 차를 운전해 수퍼로 향했다. 평상시 즐비하던 꽃다발은 간데없고 함초롬히 핀 난초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꽃은 이게 다냐고 물으니 뒤에 더 있을지 모르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꽃은 금방 시들지만 난초는 못해도 한 달은 가겠다 싶던 차에 직원이 골판지 상자하나를 가져왔다. 웬 상자일까 했는데 밀봉된 상자 안에는 꽃이 들어있었다. 장미, 백합, 거베라, 소국이 색색이 조화로운 두 묶음이었다. 누군가 두 사람을 위한 꽃다발을 이미 완성해 놓았다. 줄기 적실 물을 담은 작은 통까지 들어앉아 있는 게 트럭을 타고 이제 막 도착한 모양이다.


이미 난초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터라, 망설이며 어느 게 좋겠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송별 선물인데요. 직원은 난초를 흘낏 보곤 앞에 놓인 꽃다발을 가리키며 이게 낫겠다고 했다. 그거야 니 맘이지 하는 (무책임한)말보다 나았다. 나는 꽃다발 두 개를 계산하고 차 안에서 다칠까 봐 상자 안에 다시 넣어 차에 실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 팀장은 혼자 앉아 샌드위치를 꺼내 들고 있었다. 점심시간 끝난 줄 알면서도, 다들 어디 갔냐며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고맙다면서 남자에게 꽃을 주냐고 했다. 남자는 몇 달 전 여자처럼 운 적이 있다. 갑자기 죽은 형이 한 살 터울이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엊그제 단체메일로 통보했다. 내년에 초등교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고. 오랫동안 부재인 것을 되찾으려 한다고. 무엇이 부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일한  얼마나 됐다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뻥쪄서 망언을 하고 말았다.  학기 지나면 돌아올 거라고 다른 교사들 앞에서 단언했다. 초등교사 경력  년에 근거 없이 나온 말은 아니었다. 예전에 중등교사였다던 팀장 본인 앞에선, 초등은 중등과 다르지만 학교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를  있다고 중립적이고 경험자적인 포즈를 취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다른 일터에서 올해 그런 일이 있었다. 1 학기 개학을 일 주 앞두고 크리스가 육 학년 교사로 전직한다고 했다. 편안한 동료로 의지하며 지내왔던바 후임을 찾을 시간도 안 주고 떠나다니 매니저 리디아는 얼마나 뻥쪘을까. 나는 돌직구를 날렸다. 육 학년, 곱지 않은 나이이니, 하다가 아니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새 학교에서 서포트해 줄 거라고, 이민가정(교사를 우러르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라 괜찮을 거라고 그는 낙관했다. 그러기를 바래봅시다.


1 학기 중에 우리  코디도 폭탄선언을 했다.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거라며 (학기 중에 그만두면서)들떠 있었다. 새로 생긴 학교라면 불안정할 거라며 나는 응원 같지 않은 응원을 했다. 불안정한 건 내 마음이었다. 이렇게 영영 이별인지도 몰랐다. 코로나 이후 하나  이직하는 교사들의 뒤를 이어 좋은 동료  사람이 그 대열에 합세했다. 우리 시스템에 붕괴가 시작된  아니냐는 나의 언급에 옆에서 듣고 있던 교사 왈 이미 붕괴됐다고  잘라 말했다. 유머인지 비꼼인지 피식 웃고 말았다.


두고 보자는 심산은 나뿐이 아니었던  통화로 메일로 전해진  사람의 근황이 직원실에 퍼졌다. 크리스는 반 아이들이 힘들게 한다고 솔직히 토로했고 코디도 안정되지 않은 학교에서 이 반 저 반을 떠맡은 모양이었다. 크리스는 1 학기가 끝나자 돌아와 있었다.  년도  채우고 돌아온 심정을 헤아려   벌려 웰컴 백을 외쳐 주었다. 우리 코디도 2학기 중간 즈음 보란 듯이 복직했다. 원하면 언제라도 그만둘  있는 초중등학교 시스템이 좋았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일할  있도록 배려하는 우리 학교는  좋았다. 이런 직장이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행복해졌고 나는 코디에게 작고 노란 국화를 선사했다. 정원 일은 거들떠도  본다 했는데 누가 심었는지 손톱만  사진을 보내왔다.


꽃다발을 선사한 또 한 사람은 같은 반을 맡았던 동료 교사였다. 내년에는 일을 안 할 거란다. 이틀 손녀 돌보랴, 이틀 학교 오랴, 저녁시간에 튜터 일하랴 매우 바쁜 한 해였단다. 여행도 하고 자기 시간을 갖고 싶단다. 자그마한 체구에 또렷한 발음으로 입담 좋은 그녀는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에 동의하고 같은 것을 불평하며 눈을 맞추고 서서 수다를 떨곤 했다. 우리만의 티키타카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서운한 마음을 희석하려는 심사인지 내겐 꽃을 사는 습성이 있다. 꽃을 줄 땐 설렌다. 씨이 유 레이터.


그들은  돌아온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집 실크 참나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