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차를 운전해 수퍼로 향했다. 평상시 즐비하던 꽃다발은 간데없고 함초롬히 핀 난초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꽃은 이게 다냐고 물으니 뒤에 더 있을지 모르니 잠깐 기다리라고 했다. 꽃은 금방 시들지만 난초는 못해도 한 달은 가겠다 싶던 차에 직원이 골판지 상자하나를 가져왔다. 웬 상자일까 했는데 밀봉된 상자 안에는 꽃이 들어있었다. 장미, 백합, 거베라, 소국이 색색이 조화로운 두 묶음이었다. 누군가 두 사람을 위한 꽃다발을 이미 완성해 놓았다. 줄기 적실 물을 담은 작은 통까지 들어앉아 있는 게 트럭을 타고 이제 막 도착한 모양이다.
이미 난초를 계산대에 올려놓았던 터라, 망설이며 어느 게 좋겠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송별 선물인데요. 직원은 난초를 흘낏 보곤 앞에 놓인 꽃다발을 가리키며 이게 낫겠다고 했다. 그거야 니 맘이지 하는 (무책임한)말보다 나았다. 나는 꽃다발 두 개를 계산하고 차 안에서 다칠까 봐 상자 안에 다시 넣어 차에 실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 팀장은 혼자 앉아 샌드위치를 꺼내 들고 있었다. 점심시간 끝난 줄 알면서도, 다들 어디 갔냐며 꽃다발을 건네주었다. 뜻밖의 선물에 고맙다면서 남자에게 꽃을 주냐고 했다. 남자는 몇 달 전 여자처럼 운 적이 있다. 갑자기 죽은 형이 한 살 터울이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엊그제 단체메일로 통보했다. 내년에 초등교사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다고. 오랫동안 부재인 것을 되찾으려 한다고. 무엇이 부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일한 지 얼마나 됐다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뻥쪄서 망언을 하고 말았다. 한 학기 지나면 돌아올 거라고 다른 교사들 앞에서 단언했다. 초등교사 경력 십 년에 근거 없이 나온 말은 아니었다. 예전에 중등교사였다던 팀장 본인 앞에선, 초등은 중등과 다르지만 학교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고 중립적이고 경험자적인 포즈를 취했다.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다른 일터에서 올해 그런 일이 있었다. 1 학기 개학을 일 주 앞두고 크리스가 육 학년 교사로 전직한다고 했다. 편안한 동료로 의지하며 지내왔던바 후임을 찾을 시간도 안 주고 떠나다니 매니저 리디아는 얼마나 뻥쪘을까. 나는 돌직구를 날렸다. 육 학년, 곱지 않은 나이이니, 하다가 아니면 언제든 돌아오라고. 새 학교에서 서포트해 줄 거라고, 이민가정(교사를 우러르는) 아이들이 많은 학교라 괜찮을 거라고 그는 낙관했다. 그러기를 바래봅시다.
1 학기 중에 우리 팀 코디도 폭탄선언을 했다. 가까운 고등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칠 거라며 (학기 중에 그만두면서)들떠 있었다. 새로 생긴 학교라면 불안정할 거라며 나는 응원 같지 않은 응원을 했다. 불안정한 건 내 마음이었다. 이렇게 영영 이별인지도 몰랐다. 코로나 이후 하나 둘 이직하는 교사들의 뒤를 이어 좋은 동료 두 사람이 그 대열에 합세했다. 우리 시스템에 붕괴가 시작된 게 아니냐는 나의 언급에 옆에서 듣고 있던 교사 왈 이미 붕괴됐다고 딱 잘라 말했다. 유머인지 비꼼인지 피식 웃고 말았다.
두고 보자는 심산은 나뿐이 아니었던 듯 통화로 메일로 전해진 두 사람의 근황이 직원실에 퍼졌다. 크리스는 반 아이들이 힘들게 한다고 솔직히 토로했고 코디도 안정되지 않은 학교에서 이 반 저 반을 떠맡은 모양이었다. 크리스는 1 학기가 끝나자 돌아와 있었다. 일 년도 못 채우고 돌아온 심정을 헤아려 두 팔 벌려 웰컴 백을 외쳐 주었다. 우리 코디도 2학기 중간 즈음 보란 듯이 복직했다. 원하면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는 초중등학교 시스템이 좋았다. 그들이 다시 돌아와 예전처럼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우리 학교는 더 좋았다. 이런 직장이 또 있을까 싶었다. 우리는 더 행복해졌고 나는 코디에게 작고 노란 국화를 선사했다. 정원 일은 거들떠도 안 본다 했는데 누가 심었는지 손톱만 한 사진을 보내왔다.
꽃다발을 선사한 또 한 사람은 같은 반을 맡았던 동료 교사였다. 내년에는 일을 안 할 거란다. 이틀 손녀 돌보랴, 이틀 학교 오랴, 저녁시간에 튜터 일하랴 매우 바쁜 한 해였단다. 여행도 하고 자기 시간을 갖고 싶단다. 자그마한 체구에 또렷한 발음으로 입담 좋은 그녀는 꽤 유쾌한 사람이었다. 우리는 많은 것에 동의하고 같은 것을 불평하며 눈을 맞추고 서서 수다를 떨곤 했다. 우리만의 티키타카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서운한 마음을 희석하려는 심사인지 내겐 꽃을 사는 습성이 있다. 꽃을 줄 땐 설렌다. 씨이 유 레이터.
그들은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