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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들 Jul 22. 2024

정병러 일기 06

첫 입원

 내 병명이 우울증이라고 알던 시기에도 무조건 우울한 기분만을 안고 산 것은 아니다. 나는 뭔가에 꽂히면 꽤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복싱이 그랬고 글쓰기가 그랬으며 한 때는 그림도 그렸다. 그럴 때면 자신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이고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되돌아보면 가벼운 조증 증세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꾸준히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입원 치료를 한 날, 심리 검사를 포함한 여러 가지 검사를 한 의사가 말하길 내 진단명은 '양극성 정동장애, 타입 2형'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깊은 우울과 가벼운 조증이 반복되는 형태. 나는 내 열정이 우울의 순간에서 벗어 나온 내 원래 모습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까지 병리현상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도대체 병과 정상의 기준을 누가 그어 놓은 것일까? 그렇다면 여태껏 먹어온 우울증 약이 도움이 되긴 했던 걸까?


 정신 병동의 일과는 비슷했다. 내가 있던 병동은 그나마 안정적인 환자들이 많았다. 나는 일부러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서 일어나면 제일 먼저 샤워를 하고 책을 읽었다. 아침밥이 오면 식사를 한 후 약을 먹는데 매번 약을 제대로 먹었는지 검사를 받는다. 합격의 순간이 지나면 자유시간을 가지거나 격일마다 있는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대개 인지 능력 향상 프로그램이거나 그림 그리기 등의 프로그램이었던 것 같다. 그다지 재미가 있진 않았지만 지루한 시간을 때우기는 충분했다. 그러다 점심을 먹고 또 시간이 지나면 저녁 식사 시간이 된다. 아침과 점심, 그리고 저녁 시간 사이에 틈틈이 실습생들이 오곤 하는데 주로 이야기를 하거나 탁구를 쳤다. 당시 입원한 친구들은 나보다도  한창 어린 고등학생들이 많았고 퍼즐 맞추기에 재미를 들여서 같이 퍼즐을 맞추기도 했다. 체중 유지를 위해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2주가 지나 어렵지 않게 정신 병동에서 나오게 되었다. 병동에서조차 특유의 모범생 기질을 보였으니 의사나 간호사들 모두 내가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의료인이라도 겉으로만 보는 게 다인 줄 아나보다. 그러나 병원을 나와 한동안 나는 더 우울했고 더 멍청했으며 죽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다. 특히 퇴원 당일 직장 상사로부터 지금 보자는 문자를 받아 나간 자리에서 권고사직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는 정말 힘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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