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허리는 S 자다. 옆에서 볼 때가 아니라 앞에서 볼 때 그렇다. 할머니는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다.
할머니가 외쳤다.
"먹고 죽을래."
요 며칠 간식 시간만 되면 반복되는 일이었다. 할머니의 뒤틀린 허리가 더 삐뚤어지고 불룩 솟은 배는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했다.
350, 390, 410...
할머니의 당뇨 수치다. 정상인의 혈당 수치는 속이 비었을 때 100mg/dL 미만이다. 당뇨약을 복용하고 있었지만, 할머니는 요즘 들어 혈당 조절이 전혀 되지 않고 있었다.
당뇨라는 병은 음식을 끝없이 갈구한다. 갈증 또한 계속된다. 식사할 때면 할머니의 수저질이 급해지는 이유다.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솟구치는 할머니의 당 수치 때문에 당분간 간식을 드리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눈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이것저것 먹는 걸 본 할머니는 심사가 뒤틀렸다. 혈당 때문이라는 설명에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간식을 가져오라고 호통치는 할머니에게 나는 생뚱맞은 질문을 했다. 78세인 할머니 눈썹에는 짙은 문신이 있었다.
"할머니, 눈썹 문신 얼마 주고 하셨어요?"
내 질문에 잠시 당황한 눈빛을 보이던 할머니가 말했다.
"나는 돈 주고 안 했어. 사람들 몇을 소개해주고 그냥 했지."
나는 지체하지 않고 다음 질문을 던졌다.
"와! 공짜로요? 몇 명이나 소개하신 건데요?"
할머니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기억을 되살렸다.
"거, 한, 다섯 명쯤 되지."
나는 질문의 방향을 바꿔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아버지, 그러니까 할머니 남편 분은 어떤 분이셨어요? 할아버지 보고 싶죠?"
순간, 할머니의 색 바랜 눈썹이 위쪽으로 올라가며 씰룩거렸다.
"보고 싶긴. 보고 싶지 않아. 뭘 보고 싶겠어."
할머니의 태도는 단호박이었다.
할머니는 남편에게 스무 살에 납치를 당했다고 했다. 진짜 납치였는지 비유적인 표현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다만 할머니의 기억 속에 남편과의 첫 만남이 유쾌하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죽일 놈, 나쁜 놈, 더러운 놈."
할머니는 욕하고, 욕하고, 또 남편을 욕했다.
납치를 당한 후에 할머니는 감금 생활을 했다고 한다. 남편이 외출할 때면, 그는 할머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밖에서 문을 잠갔다고 했다. 남편은 그녀가 아들을 낳고 나서야 문 잠그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뭔가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경찰에 신고를 했어야지요."
할머니가 말했다.
"그런 걸 몰랐지. 다 그렇게들 사는 가 했지. 내가 멍청했어."
분위기 전환을 위해 시작한 대화가 너무 심각해진 듯해서 나는 할머니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럼 아이를 낳고 나서는 남편이 잘해 줬어요?"
"......."
할머니는 긴긴 숨을 내쉬었다. 나는 한숨이 어떤 것인지 그때 제대로 보았다. 그러고는 할머니는 남 얘기하듯 말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남편의 폭력이 시작됐어. 남편은 갖은 이유를 대며 나를 두들겨 팼는데, 남편이 퇴근할 때 아직 어린아이가 인사를 하지 않거나, 집에 소주가 떨어진 걸 깜빡한 날이면 어김없이 맞았지. 어떤 날은 이유도 말하지 않고 때렸어. 고아인 내가 도움을 청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지. 그렇게 매일 두들겨 맞으면서도 나는 아이 한 명을 더 낳았는데 딸이었어."
이 부분에서 나는 정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아니 도망이라도 가야죠. 그렇게 매일 맞고 어떻게 살았대요?"
"도망쳤지. 도망쳤는데......"
할머니는 몇 번 집을 나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매번 아이들이 눈에 밟혀서 제 발로 돌아갔는데 그런 날은 정말 죽을 만큼 맞았다고 했다.
"아마 그때 허리를 다친 거 같아. 이렇게 반 병신이 됐잖아. 다 그놈 때문이야."
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할머니는 묻지도 않은 결말을 말하고는 멀리 치악산을 넘어가는 노을처럼 붉은 얼굴로 허공을 노려봤다.
"어느 날 남편이 내게 헤어지자고 했어. 여자가 생겼다면서. 나는 아이들을 봐서라도 그럴 수 없다고 했지. 그러자 그의 폭력은 더 심해졌어. 남편은 대놓고 그 여자를 집에 데려오기도 했어. 더는 견딜 수가 없었지. 끝내 나는 남편과 이혼을 했어. 아이들을 데려올 수도 없었지. 나는 맨 몸으로 쫓겨났어."
온갖 험한 일을 다해봤다는 할머니였다. 나는 할머니의 뒤틀린 허리와 요 며칠 요동치는 혈당 수치를 생각했는데, 할머니의 평탄치 못했던 삶이 함께 떠올랐다.
"그래, 남편은 할머니 보내 놓고 잘 사셨대요?"
"잘 살기는. 그 여자랑도 얼마 살지 못하고 헤어졌지."
할머니 목소리 톤이 조금 높아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물었다.
"그럼, 남편 분은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데요?"
"죽었지. 술에 취해서 어디 길바닥에서 죽었다고 하더라고."
이 대목에서 할머니는 한껏 목소리를 높였는데 어쩐지 슬픈 기색은 없었다. 대신 삼종의 욕이 다시 이어졌다.
"죽일 놈, 나쁜 놈, 더러운 놈."
나는 할머니 옆에서 추임새 넣는 것을 잊지 않았다.
놈,
놈,
놈.
간식 때문에 언짢아진 할머니 기분이 조금 풀어진 것 같았다. 이때다 싶어 나는 본심을 꺼냈다.
"저기, 할머니 간식 문제는....."
말이 끝나가도 전에 할머니가 대답했다.
"아유, 됐어. 이유가 있으니까 안 주는 거겠지. 그거 못 먹어도 안 죽어."
할머니 얼굴이 환해졌다.
할머니의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가끔 그를 강제로 소환한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에게 실컷 욕을 하는데, 그 후의 할머니 표정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럴 때면 할머니 얼굴에 핀 검버섯이 바람도 없이 흔들린다. 먹든 지 안 먹든 지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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